서양음악사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미뉴엣♡ 2015. 7. 10. 19:08
♡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    2010/05/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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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or Abraham(1935) - F l o w e r G a r d e n 1 9 7 0 ●

 

                                

                       ●★ 15세기 영국과 부르고뉴 지방의 음악 ★●

 

  

15세기 음악은 점차 국제적인 양상으로 변모해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곡가들을 배출해 내지 못했지만 영국 작곡가들은 15세기 중반에 국제적인 음악양식에 큰 기여를 하였다. 여전히 세속음악 중심의 작곡이 계속되었다. 칸틸레나의 텍스쳐가 점차 선호되기 시작하였고 모테트(준세속적이고 의식적인)나 미사곡에 그 영향을 주기도했다.

  

                                       ■ 영국의 음악 ■

 

일반적 특징들 : 대부분의 북유럽 음악과 마찬가지로 영국음악 역시 처음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즉 민요양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대륙의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추상적인 이론에 극단적인 실체화를 기피하였다. 영국음악에는 항상 장조 조성(선법체계와 대립되는 것으로)의 경향, 호모포니(프랑스 모테트의 독립적인 선율과 서로다른 가사, 그리고 화성적인 불협화음에 대립되는 것으로)의 경향, 음향을 보다 충실하게 하려는 경향, 그리고 대륙음악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3도와 6도를 사용하려는 경향등이 존재해왔다. 병행3도에 대한 12세기의 예는 오크니 제도(Orkney Islands)의 수호성인 <성 마그누스를 위한 찬미가-Hymn to St. Magnus>에서 찾아볼 수 있다. 13세기 영궁의 다성음악의 실제에는 병행 3도나 병행 6도의 즉흥연주 및 작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노트르담 악파의 작품이 영국 제도에 알려져 있엇다는 것은 이 악파의 작품을 실은 중요한 원천적 사본의 하나인 볼펜뷔텔(Wolfenbuttel 677,W1 이라고 불리움)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복사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 사본에는 노트르담 악파의 악곡 외에 한 때 영국이 그 기원이라고 생각되었던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이 2성부 트로푸스와 시퀀스로 이루어져있다. 실래빅한 콘둑투스와 비슷하지만 상성부가 테너보다는 좀 더 멜리스마적이다. 테너는 대개 전례적이거나 준전례적인 선율로 되어있으며 종종 자유롭게 편곡되어져있다. 영국에서 3성부 콘둑투스와 모테트가 작곡된 것은 13세기로서 이 곡들은 대륙에도 알려져있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모테트로 추정되는 <Alle psallite-Alleluia>는 몽펠리에 사본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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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mmer is icumen in (ca.1250). 2성부 페스(pes) ●

 

                                   Summer is icumen in (ca. 1250). 2성부 페스(pes)에 대해 노래하는

                                   4성의 로타(rota) 혹은 끝없는 카논이다. 2성부 페스에서 성부들은

                                   짧은 악구들을 서로 교환한다. 상성부에는 또 하나의 라틴어 가사가

                                   붙어있다. (London, British Library, MS Hsrlerian 978,fol.11v)

 


14세기 : 영국 성가의 기본적인 레퍼토리는 세럼 전례(Sarum, 솔즈버리 대성당 교회의)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선율은 우리가 리베르 우즈알리스(Liber usualis0,혹은 다른 현대판 성가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로마 전례의 성가들 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15세기에는 영국 작곡가뿐만 아니라 많은 대륙의 작곡가들도 로마의 평성가보다는 오히려 솔즈버리의 것을 악곡의 정선율(cantus firmi)로 사용하였다. 14세기 영국음악에 관해 알 수 있는 원천은 우스터(Worcester)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의 악파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는 많은 필사본의 단편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 미사 통상문의 여러 부분들의 트로푸스와 미사 고유문에서 선택된 것 모테트와 콘둑투스로 구성되어 있다. 논의되어질 론델루스에 나타난 영국음악의 특징은 유명한 <여름이 오다-Summer is icumen in>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곡은 로타(rota)로 알려져있는 범주에 속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윤창(round) 또는 카논이다. 영국적인 기원을 가지며 1250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는 이 작품은 중세 영국음악의 많은 특징을 보여준다.특히 그 풍부한 조성적 텍스쳐, 협화음으로서 3도의 자유로운 사용 그리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조 조성 등이 그러하다. 4성부 카논하에서 두 테너는 계속 성부를 교체하며 페스(pes;'발'이라는 뜻, 하나의 반복되는 베이스의 동기)를 노래한다. 콘둑투스와 미사 통상문의 콘둑투스적인 몇 곡의 트로푸스는 13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15세기 초기음악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새로운 양식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선율선은 대체로 병진행하는 두개의 서로 다른 성부에 의해 반주되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종종 3도, 6도의 연속을 이루었다. 이러한 작법은 3도와 6도, 그리고 충만하여 잘 어울리는 음향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국민적 편애를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론델루스같은 형식이 나오개 된 13세기 영국음악에서의 빈번한 성부교체 연주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 이것은 데스캔트(discanting)에 대한 규칙이 수립됨으로써 이론적, 실제적으로 인정되었다. 데스캔트는 정선율에 대해 기보되지 않은 성부를 노래하는 것으로 그 추가된 부분은 주어진 선율과 똑같은 리듬으로 1음표 대 1음표로 진행했으며 항상 협화음을 형성하였다. 13세기 후기까지 데스캔트에 대한 규칙은 연속적인 완전 5도와 8도를 금지하였으나 제한된 수 의 연속적 병행 3도나 6도는 허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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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WM 27 Rondellus motet from Worcester ■

                     Fulget coelest curia-O Petreflos-Roma gaudet

 

영국모테트의 가장 특징적인 기법중 한 가지는 론델루스(rondellus)이다. 이 기법은 성부 교환(이따금 Stimmtausch로 언급됨)을 작곡의 한 방법으로 이용하는기법이다. 이런 기법을 사용하여 작곡한 이 3성부 모테트는 우스터 단편중 하나에 포함되어있다. 론델루스는 도입부와 종지부(coda) 사이에 들어있는데 도입부는 두 성부에서 현저하게 동형 진행과 카논적인 모방을 이용하며, 종지부는 론델루스의 음악에서 이끌어낸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부는 두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각각의 성부나 연주자가 차례로 취하게 되는데 세 개의 선율이 동시에 울림으로써 구성되어있는데 그 구도는 다음과 같다.

 

                            트리플룸         abc        def
                            두플룸           cab        fde
                            테너             bca        efc

 

예 5.1은 본래의 제시부와 전반부에 나타나는 성부 교체의 하나를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론델루스에서 모든 성부들은 음악과 가사를 교체하지만 이 모테트에서는 단지 외성부 만이 가사를 교체한다. 세 성부는 같은 음악에 있기때문에 그 각가의 반이 세번씩 반복되는 것으로 들리게 된다. 모든 선율선의 신선하고 민요적인 특질과 모든 성부가 잘 어울리게 섞여져있는 점 역시 이 시기 영국음악의 특징이다.

 


           ■ 론델루스:Fulget coelest curia-O petre flos-Roma gaud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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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론델루스:fulget coelestis curia - Opetre flos - Roma ●

 

                                 하늘의 궁전은 앞에서 빛나고.
                                 베드로는 하늘의 왕자아래서 파수꾼으로 앉아있구나.
                                 로마는 그런 주교를 기뻐한다네.
                                 오, 베드로 사도의 꽃이시여 하늘나라 궁전의 목자이시여,
                                 그대는 그대의 양을 상냥하게 키워 보다 높은 데로 인도하십니다.
                                 로마는 하느님의 은혜로 부여받은 그런 주교를 기뻐한다네.

 

                                 출처 : 루터디트머(Luther Ditumer)편, <우스터 단편-Worcester Fragments>

 


                        ■ NAWM 28 캐럴 : Salve, sancta parens ■

 

이 캐럴의 두번째 버든, 즉 반복구는 즉흥적인 이글리쉬 데스캔트 스타일로 쓰여져있다. 외성부들이 6도로 움직일 때 중간 파트는 아랫성부의 3도 위를 채워서 결과적으로 윗성부와는 4도를 이루게된다. 16째와 19째 마디들은 6도와 3도를 탈피하여 옥타브와 5도를 이룸으로써 종지를 만들고 그 후에는 다음 종지가 있을 때까지 다시 병진행을 계속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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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럴(carol) : Salve, sancta parens - b u r d e n ●

 

                                                     찬양하라 거룩한 부모를...

                                                     John Stevens편 <Mediaeval Carols>,

                                                     Musica Britanica. 4(London. 1952)p.71.

 

 

                                  ■ 포부르동(Fauxbourdon) ■


포부르동 : 15세기초에 대륙에 알려지기 시작한 영국음악은 6도-3도의 연속적 예를 제공하여 대륙 작곡가들을 매료시켰다. (예 5.2 마디 18-19 참조) 1420년부터 1450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작법은 모든 작곡양식에 영행을 미쳤다. 보통 이것을 '포부르동(fauxbourdon)'이라 부른다. 엄밀한 의미에서 '포부르동'은 병행 6도로 진행하고 종종 옥타브가 들어가는, 그렇지만 항상 악구의 끝은 8도로 끝나는 2성부 악곡이었다. 연주시에는 이러한 기보된 성부들에 기보되지 않은 제 3성부가 추가되었는데 이것은 최상성부가 4도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므로 포부르동의 실제적인 음향은 영국의 데스캔트 악구의 음향과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포부르동의 주요 선율이 최상성에 있는 반면(NAWM 30 참조) 영국악곡의 성가 선율은 대개 중간성부나 최저 성부에 있다는 점이다. 포부르동의 기법은 보다 단순한 성무일과의 성가(찬미가와 안티폰), 그리고 시편과 마니피카트나 테 데움과 같은 시편과 비슷한 가사를 가진 악곡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 수법의 중요하고 실질적인 결과는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당세기 중엽에 3성부를 쓰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양식에서는 주요 선율선이 상성부에 있다. 이런 점에서 14세기의 칸틸레나 양식을 닮았으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전의 칸틸레나 형식에서는 두 개의 낮은 성부가 떨어져 있었으며 리듬은 느렸고 선율에 대해 다소 중립적인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제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상 성부와 테너는 2중창처럼 짝지워졌다. 이러한 두 개의 성부는--그리고 결국 콘트라테너--역시 중요성이나 선율의 성격과 리듬에 있어서(물론 최상성부는 장식적인 음으로 활기를 띠게 할수도 있겠지만) 한층 더 비슷하게 된다. 그리고 전(前) 세기와 비교할 때 3성부 모두 더욱 협화적인 음향과 한 악절 안에서 더욱 잘 어울리는 진행의 음향에 동화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양식은 모든 악곡형에 강한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호모포니적(또는 호모리듬적) 텍스쳐, 협화음적인 화성 화성적인 어휘에 있어 강력한 요소로서의 3도-6도 화음의 인정과 같은
측면에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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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드 홀 필사본(Old Hall Manuscript) ■

 

올드 홀 필사본 : 15세기초의 영국음악을 모은 주된 곡집은 올드 홀 필사본(Old hall Manuscript)이다. 여기에는 1370년경 부터 1420년 사이의 씌여진 147곡의 악곡이 실려있는데 그 중 약 4/5가 미사 통상문의 여러 부분을 작곡한 것이다. 이밖의 것은 모테트와 찬미가, 그리고 시퀀스들이다. 미사곡은 대부분 최상성부의 선율에 보다 많은 활기를 준 변형된 영국 데스캔트 양식이었는데 때때로 내성에 평성가 선율을 삽입시키기도 하였다. 라이오넬 파워(Leonel Power)가 쓴 한곡의 '상투스'는 종종 콘트라 테너 위에 오는 테너 성부에 정선율을 두는 4성부 작법으로 되어있다. 4성부 구조 중 밑에서 두 번째 성부에 평성가 선율이 오게 하는 이러한 작곡형식은 작곡가가 화성적 처리를 훨씬 자유롭게 하도록 해줄뿐 아니라 15세기 후기와 16세기 초기의 미사곡에서 평성가의 테너를 사용하는 방법의 선구자로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올드 홀 필사본에 실려있는 다른 미사 부분들은 주요 선율을 최상 성부에 두는 칸틸레나 양식으로 되어있다. 또 다른 것들은 평성가 선율이 한 성부에서 다른 성부로 옮겨다니는 '이동하는(migrant)' 정선율을 사용한다. 미사곡과 다른 가사로 된 작품을 포함하여 이 곡집에 수록된 악곡을 사용한다. 미사곡과 다른 가사로 된 작품을 포함하여 이 곡집에 수록된 악곡 중 1/7가량은 아이소리듬적 모테트 양식으로 씌여지고 있다. 영국음악 양식의 특징적 면모들은 대륙의 많은 필사본에 복사된 15세기 전반의 많은 영국 작품들을 통해서 대륙에 알려졌다. 그들의 영향은 1440년에서 1442년 사이에 씌여진 한 편의 프랑스 시에 의하여 입증된다. 이 시는 동시대의 대륙 음악을 그토록 '놀랄만한 즐거움'으로 즐겁고 밝은 협화음으로 만드는 일에 공헌한 바 있는 'contenance angloise(영국적인 면모 혹은 자질)'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인용문 참조) 아래에 인용된 시에서 martin Le Franc은 특히 당대 영국의 지도적 작곡가였던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 1385-1453)에 관해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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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 1385-1453) ■

 

존 던스터블 : 존 던스터블은 1422년부터 1435년까지 프랑스를 섭정했으며 잔다르크(1412-14)와 맞서 싸운 영국 출신의 영국군 사령관 베드포드 공작을 섬기면서 생애의 일부를 보낸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의 프랑스에 영국이 막대한 재산과 청구권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던스터블을 포함한 많은 작곡가들 역시 대륙에 건너와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 음악의 전파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 시대 음악에 대한 마르땡 르 프랑크의 기술<Le Champion des dames> 1440-42에 수록

 

타파시어, 카르멘, 케자리스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얼마전까지도 노래를 앚 잘 불러                                  생기있는 협화음을 만들었네
온 파리를 놀라게 하였네                                            장대하고 조용한 음악을
그들의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들도 모두,                       장식하고 쉬기도하고 변화도 주네.
그러나 그들이 노래하지않는 날이 왔었네                      그들은 영국식 면모를 취하여
그렇게도 멋있게 잘 만들어진 곡조들--                         던스터블의 뒤를 따르니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었지--         놀라운 유쾌함이
뒤파이나 뱅슈아처럼.                                                그들의 음악을 즐겁고도 뛰어나게 만드네.


불어 가사는 C. Van den Borren.<Guillaune Dufay : son importance dans i'evolution de la musique au XVe siecle>(1926) pp.53-54. C. Palisca 영역.


던스터블의 악곡은 대략 70여곡이 알려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살아있는 동아 존재했던 다성음악의 모든 중요한 유형과 양식의 예들이 포함되어있다. 즉, 아이소리듬적인 모테트와 미사 통상문의 부분, 세속가곡, 그리고 갖가지 전례에 사용되는 가사를 작곡한 3성부 곡들이었다. 그의 12곡의 아이소리듬적 모테트는 이러한 오래된 유서깊은 악곡형식의 생명력이 15세기 초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것은 모테트-찬미가 <창조주인 영이여 오소서-Veni Creator Spiritus>와 시퀀스 <성령이여 오소서-Veni Sancte Spiritus>를 조합해서 만든 4성부 악곡은 아이소리듬적인 구성으로 된 훌륭한 하나의 본보기일뿐 아니라 완전한 3화음을 가지는 충실한 음향에 대한 영국인들의 선호를 구체화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알려져있는 던스터블의 작품 중 1/3을 이루고 있는 미사 통상문의 몇 곡도 테너에 들어있는 아이소리듬적으로 작곡된 전례용 선율을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 던스터블의 것으로 추측되는 세속적인 노래는 몇 곡 되지않는다. 그중 <오 아름다운 장미여-Orosa bella>와 <나의 사랑이-Puisquem;amour>는 그 당시 영국음악의 표현적인 서정적 선율과분명한 화성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례이다.

 

 

                                  ■ 던스터블의 3성 종교작품 ■

 

던스터블의 3성 종교작품 : 던스터블의 작품 중 가장 수가 많고 또 역사학적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3성부 종교음악들인데 이들은 안티폰, 찬미가 그리고 그밖의 전례적인 내용이나 성경의 내용을 가사로 작곡된 곡들이다. 이 악곡들은 여러가지 수법으로 작곡되어 있다. 어떤 곡은 테너 성부에 정선율이 있고 또 어떤 곡은 최상 성부에는 화려한 선율을 가지고 있으며 중간 성부에는 차용한 선율을 가지이있는것도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테너위에서 3도와 6도로 진행한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최상 성부에 장식된 전례용 선율을 두고있다.(예 5.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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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던스터블 : 모테트-Regina caeli loetare의 최상 성부 ●

 

 

소재를 빌려오지않고 자유롭게 작곡된 것도 몇 곡 있다. 안티폰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Quam pulchra es>(NAWM 29 참조)는 마지막 유형의 곡으로서 던스터블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뿐 아니라 몇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전상을 보여준다. 던스터블 이후 대룩에 있던 영국 음악가 중에는 미사곡과 모테트 그리고 샹송을 쓴 월터 프라이(Walter Frye, 1450-75년경에 활약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애를 루카등 이탈리아의 여러 지방에서 활동했던 존 호스비(John Hothby ?-1487)등의 이름이 거론되어야할 것이다.

봉헌 안티폰 : 특별히 영국에서 양성되었던 음악 장르는 봉헌 안티폰이었다. 이것은 특정 성인이나 특히 '동정녀 마리아'께 드리는 교회음악이었다. 5성부 내지 9성부로 작곡된 정교한 다성 악곡들을 수록한 방대한 모음이, 이튼 칼리지에 있는 15세기 후반의 합창성가곡집(choirbook)에 보존되어 있다. 이 작품들이 지니는 충실한 음향과 크고작은 성부 그룹들의 교대, 완전타임과 불완전 타임의 부분으로 나누는 대규모 분할법 등은 16세기 전반까지 영국에서 발달했던 봉헌 안티폰과 미사곡의 특징이 된다.

 


                       ■ 존 던스터블, 모테트 ; Quam pulchra es ■ 

 

세 개의 성부는 성격적으로 비슷하며 거의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고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같은 리듬으로 진행하며 같은 음절을 동시에 발음한다. 즉, 음악적인 구성이 콘둑투스와 같으며 '알렐루야'라는 단어 끝에 오는 짧은 멜리스마는 장식적인 콘둑투스 양식과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악곡은 정선율의 제한을 받지 않았으며 아이소리듬적인 모테트에서와 같이 규정된 어떠한 구조에도 속박되지 않았고 비를레나 론도와 같은 고정 형식에서처럼 어떠한 반복구나 각 부분의 패턴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따라서 작곡가는 가사에 의한 형식적 윤곽을 추구함에 있어서 자유로웠다. 던스터블은 이 작품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제1부분(제1마디-38마디)은 아가서(The Song of Solomon)의 제7장 제6,7,5,4 및 11절을 단축시킨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제2부분은 'et videamus(그리고 보라)'로 시작하는 제12절에 바탕을 두며 '알렐루야'가 추가되어있다. 제2부분보다 긴 제1부분은 'veni(오소서)'라는 단어에 긴 음표를 씀으로서 끝부분을 강조한다. 제1부분의 분할 패턴은 9+9+11+8마디로서 C.C.D 그리고 G음에 종지한다. 제2부분은 (4+3)+(6+3)+4마디로 대칭적으로 세분되며, F.D.C.D 그리고 C음에서 종지한다. 제1부분의 음악적 분할은 가사를 절(verse)로 나누는 분할법과 일치한다. 제2부분의 음악적 분할은 제1부분만큼 명확하지 못한데 이는 가사의 세분이 제1 부분에서보다 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알렐루야'는 그 멜리스마와 마지막 종지형에 접근함에 따라 보다 활기있는 선율적 화성적 리듬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구별된다. 음악형식의 주요한 윤곽은 가사에 의해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악구의 윤곽이 또는 말의 리듬에 따라 형성된다. 특히 statura tua assimilata est(당신의 자태는 닮았다), 'mala Punica', 그리고 'ibi dabo tibi(거기서 당신께 바치리)'의 반복 음들의 낭독 부분을 보라, 이밖의 주목할 만한 것은 최상 성부에 있는 현저한 3도의 선율적 음정과 선율안에서 때때로 3화성의 윤곽을 그리는 것(예를 들어 제43,46,55마디) 그리고 포부르동 양식을 특히(제12-15마디에서처럼)마침꼴 가까이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 캐럴(Carol) ■

 

캐럴 : 15세기에 유행했던 영국 악곡의 또 한가지 형식은 '캐럴(carol)'이었다. 원래 캐럴은 롱도나 발라타와 같이 독창부와 합창부가 교대하는 단성 무용노래였다. 15세기까지 이 형식은 대중적 양식의 종교시의 2성부 3성부(때로는 4성부)곡으로 양식화되었다.이것은 종종 'Incarnation(하느님의 독생자가 인간이 됨)'을 주제로 삼기도 했으며 때로는 영어와 라틴어를 혼합한 운율시로 쓰여지기도했다. 형식면에서 볼 때 캐럴은 모두 동일한 음악으로 불려지는 다수의 절(stanza)과 후렴(burden), 즉 자체의 후렴은 악곡 처음에 불려지고 각 절의 뒤에 반복되었다. 민요는 아니었으나 캐럴의 신선하고 절도있는 선율과 생기있는 3박자 리듬은 분명 민속적인 성격과 틀림없이 영국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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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WM 28 캐럴 : Salve sancta parens ■

 

이곡은 영국 데스캔트의 예로서 언급햇던 바 있다.(예 5.2) 후렴의 가사는 두 번 붙여져있다. 첫번째는 상성부가 대개 병행 6도로 진행하는 두 개의 성부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전같으면 즉흥연주로 중간을 채우는 6도-3도 연속을 이루었으며 제3의 성부에 붙여졌다.시절(stanza)을 위한 음악은 자유로운 2성부 대위법으로 작곡되었다.


15세기 모테트 : 던스터블의 작품들이 실린 표준곡집(standard edition)에는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모테트'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가 13세기 프랑스 양식과 14세기, 15세기 초의 아이소림듬적 양식을 가리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사용하여 온 이 단어는 14세기가 되면서 부터 더 넓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원래 모테트라는 것은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전례적인 가사에 곡을 붙인 악곡이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13세기 후기까지 이 용어는 테너 정선율로 사용했던 세속적인 선율을 사용한 작품을 포함하여 세속적인 가사를 지닌 작품에도 적용되었다. 14세기와 15세기 초의 아이소리듬적 모테트에서의 테너는 대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이었다. 이러한 모테트는 전통적인 성격으로 전례적인 '정선율'과 여러개의 가사, 그리고 확고한 대위법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소리듬적인 모테트는 보수적인 형식으로 14세기 후기와 15세기 초기 음악양식의 일반적인 발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1450년에 이르자 이것은 시대에 뒤진 형식이 되었으며 곧 사라져 버렸다. 그후에 평성가의 '정선율' 테너를 지닌 모테트가 몇 곡 씌여졌으나 그외에는 오래된 중세적 유향을 닮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는동안 15세기 전반기에 이르러 '모테트'라는 용어는 전례적인 가사 혹은 심지어 세속적인 가사에 당시의 보다 새로운 음악야식으로 작곡한 작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의 이러한 보다 넓은 의미는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용법에서 볼 때 '모테트'라는것은 미사 통상문 이외의 라틴어 가사를 다성적으로 작곡한 모든 악곡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안티폰과 레스폰소리같은 갖가지 형식과 함께 미사 고유문과 성무일과에서 뽑은 다른 가사를 가진 작품들도 포함하게 된다. 16세기부터는 라틴어 이외의 언어로 된 종교적 악곡도 '모테트'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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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고뉴 지방의 음악 ■

 

부르고뉴 공작들은 비록 프랑스 역대 왕들의 봉신들이긴 했지만 세력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14세기 후기와 15세기 초기에 그들은 일련의 정략적인 결혼과 백년 전쟁에서 왕들이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용한 외교정책을 이용하여 오늘날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동북부, 룩셈부르크, 그리고 로렌(프랑스의 동북 지방)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영토 소유권을 얻어냈다. 그들은 이러한 지역을 그들의 원래 봉인 프랑스 중동부에 있는 부르고뉴의 중세적인 공작령과 백작령에 덧붙였고 1477년까지 사실상 독립 군주로서 전체를 다스렸다. 그들의 명목상의 수도는 디종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거주했던 주요 도시는 고정되어있지 않았으며 때때로 자기들 지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체류하였다. 당세기 중기 이후 부르고뉴 순회 궁중의 주요범위는 릴(Lille), 부르주(Bruges), 강(Ghent)과 특히 브뤼셀, 즉 현재의 벨기에와 프랑스의 동북부 지역을 포함했다. 15세기 후기의 북부 출신의 작곡가 중 지도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왔다. 그들 중에는 음으로 양으로 부르고뉴 궁정과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베르(Hubert)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도 그들의 보호를 받는 화가들이었다. 14세기 후기와 15세기 초기의 전유럽에는 정교한 음악적 자원을 지닌 예배당이 생겨나고 있었다. 교황, 황제, 왕 그리고 군주들은 훌륭한 작곡가나 가수들을 고용하려고 경쟁했다. 플랑드르의 이론가인 팅크토리스(Tinctoris)는 1475년경에 쓴 그의 저작물에서 명예와 재산의 형태로 제공된 보수가 얼마나 재능의 성장을 고취시켰던지 그 당시의 음악은 '던스터블을 머리로 하는 영국 사람들과 그와 동시대 프랑스 사람인 뒤파이와 뱅슈아를 원천으로 하는 새로운 예술' 같이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부르고뉴 공작들은 채플(chapel)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교회 예배용 음악을 위한 작곡자, 가수, 연주자들의 집단이 부속되어있었다. 이들은 아마 궁중에서의 세속적인 오락에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며 귀족 주인의 여행에 동반하기도 했을 것이다. 1419년부터 1467년까지 부르고뉴를 통치한 필립 더 굿(Phillip the Good)의 궁중과 예배당은 유럽에서 가장 찬란했다. 부르고뉴의 채플은 필립 더 볼드(Phillip the Bold)가 사망한 1404년 당시에는 28명에 달하는 음악가가 있었다. 한동안의 침체기가 지난 후인 1445년경에는 재조직되어 17명의 신부(chaplain)로 구성되었다. 15세기 초반 음악가들은 주로 북프랑스로부터 고용되었다. 필립 더 긋과 그의 후계자인 샤를 더볼드(Charles the Bold 1467-77)는 부르고뉴 지방의 수도인 디종에서는 거의 살지 않았고 북부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이 고용했던 음악가들도 대부분 플랑드르나 네덜란드(Low Countries)출신이었다. 필립 더 긋은 채플 외에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그리고 포르투갈인들이 포함된 음유시인 악단--트럼펫주자.드럼주자. 비엘주자. 류트주자. 하프주자. 오르간주자 그리고 백 파이프 숌 주자 등의--을 거느리고 있었다. 외국 음악들의 방문이 잦았고 또 예배당의 단원들이 보다 좋은 조건의 제의에 따라 이리저리 계속해서 이동했기 때문에 15세기에 있어서 이러한 궁중의 국제적인 분위기는 한층 강조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음악양식은 국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부르고뉴 궁정에서 발전된 음악은 대성당 합창단 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과 독일 황제, 프랑스와 영국의 왕 그리고 이탈리아의 여러 궁중과 대성당 성가대들 같은 유럽 음악의 다른 중심지에 영행을 줄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했다. 다른 곳에 있는 많은 음악가들 역시 한 때 부르고뉴 공작 밑에서 일을 했든가 아니면 언젠가 거기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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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고뉴의 필립 더 긋(Phillip the Good) 궁정에서의 여흥 ●

 

                            부르고뉴의 필립 더 긋(Phillip the Good 1396-1467)궁정에서의 전원풍 여흥.
                            음악가들은 중앙(공작과 그의 일행을 위해)세레나데를 연주하고있다. 배경에는
                            사낭꾼들이 짐승을 쫓고있다. 1430-1431년에 그려진 이 회화는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 기욤 뒤파이(Guillum Dufay) ■


기욤 뒤파이 : 기욤 뒤파이는 공작의 에배당에 소속된 정식 단원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부르고뉴 궁정과 관련되어 언급되어지고 있다. 그느 1400년경 캉브레 근처에서 태어나 1409년에 성가대 단원이 되었다. 1420년경 그는 이탈리아로가서 1426년까지 페사로의 말라테스타가(家)를 위해 봉사하였다. 1428년부터 1433년까지 그는 로마 교황청 예배당 소속으로 일했다. 2년동안 사부아(savoy)공작(그당시 그의 영토는 프랑스의 사부아는 물론 오늘날 이탈리아의 서북부와 스위스의 서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밑에서 일을한 후 뒤파이는 1435년부터 1437년까지 피렌체와 볼로냐에 있는 교황의 예배당에 다시 들어갔다. 적어도 1439년부터 1450년까지의 뒤파이의 주무대는 캉브레였다. 그곳의 성당에서 뒤파이는 교황 유진 4세로 부터 성당 참사 회원과 수급 성직자의 칭호를 얻었다. 1452년 그는 사부아공작의 합창지휘자로 돌아가 아마 1458년까지 일한 듯하다. 그 후 그는 캉브레로 돌아와서 1474년 사망했다. 그는 상당한 교육을 받았었다. 즉, 성당학교에 다녔었고 볼로냐 대학에서는 교회법 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교회에서 영향력있는 지위를 수여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음악때문이 아니라--물론 작곡가로서 존경받았었지만--그의 학식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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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탱 르 프랑의 시집 -「Champion de dames」●

                                         ((기욤 뒤파이 & 질 뱅슈아 - 초상화))


                                마르탱 르 프랑의 시집「Champion de dames」(1440-42 인용문 참조)
                                (파리 국립도서관 MS fr.12476)중의 초상화에서 기욤 뒤파이가 오르간
                                옆에 서있고 질 뱅슈아가하프를 들고있다.


뒤파이와 그 동시대 사람들의 작품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나온 많은 필사본에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필사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옥스포드와 보들리언 도서관에 있는 필사본으로(Canonici mic.213), 1460년경 이탈리아 북부에서 복사되었으며 1400년부터 1440년경에 이르기까지의 325곡을 수록하고있다. 그리고 오늘날 트리엔트의 키스텔로 델 부온콘실리오(Castello del Buonconsiglio)의 국립박물관 도서관에 소장된 7권의 '트리엔트 사본들(Trent Codies)' 이 있다. 여기에는 1400년과 1475년 사이에 쓰여진 1600곡이 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위에 말한 사본들과 그 시대의 다른 필사본들에서 발췌하여 현대 악보로 옮긴 것은 오늘날의 곡집들에 많이 들어있다. 부르고뉴 악파의 중요한 작곡 유형은 미사곡. 마니피카트. 모테트. 그리고 프랑스어 가사가 붙은 세속적인 샹송이었다. 가장 유행했던 성부 조합은 프랑스 발라드와 이탈리아 발라타에서와 같은 것이었다. 즉 테너와 콘트라 테너는 모두 c음에서부터 g'음까지의 음역 안에서 진행하며, 최상성부 즉 데스캔트는 보통 10도(a음에서 c"음까지 혹은 c'음에서 e"음까지)의 음역을 넘지 않았다. 14세기와 마찬가지로 주선율로서 데스캔트를 지배적으로 사용하여 연주시 각 성부의 음색을 명확히 구별되게 하고 전체 텍스쳐를 투명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양식은 일반적으로 포부르동의 호모포니적인 유력함과 때때로의 모방기점(points of imitation)을 포함하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선율과 대위법적 독창성을 조합시킨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것이다. 전형적인 데스캔트 선율은 부드럽고 표정이 풍부한 서정적 악구로 흘러가다가 중요한 마침꼴에 가까이 가면 우아한 멜리스마로 바뀐다. 선호되는 종지형은 대부분 아직까지 14세기의 것과 같았으며(예 3.13) '란디니풍의 장식형'이 일반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되었다.(예 4.3) 그러나 이런 구식 마침꼴과 함께 다른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성부 작법에서 장6도-옥타브 진행의 변형이 나타났다. 이런 진행에서 최하 성부는 옥타브로 도약하여 사실상 청자는 6도-8도 진행 밑에 4도를 듣게 된다.(현대의 딸림화음-으뜸 화음 종지에서와 같다. 예 5.4 b와 c 참조)
부르고뉴 악파 시대의 악곡은 ♩♩♩과 ♪♪♪ ♪♪♪패턴의 조합에서 생겨나는 교차리듬이 작은 3박자 계열로 되어있는 것이 대다수였다.(예 5.4 b와d 참조) 대조를 나타내기 위하여 긴 작품 중 일부분에는 2박자 계열의 박자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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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욤 뒤파이 - 모테트(m o t e t) : 종지형들 ●

 


                             ■ NAWM 45 기욤 뒤파이 - 발라드 ■

                             Resvellies vous et faites chiere lye

 

이 작품은 세련된 발라드의 전통에 따라 론도보다 훨씬 더 많은 장식적인 요소를 지닌다. '잠깨고 기뻐하라'는 연인

을 위한 메시지이다. 이 작품은 뒤파이가 리미니와 페자로의 통치 가문에서 봉사하고 있던 1423년 당시 카를로 말라테스타와 교황 마르틴 5새의 조카딸인 비토리어 콜론나의 결혼식을 위해 작곡되었다. 신랑에게 보내는 '고귀한 카를로'라는 외침은 페르마타가 붙은 밀집화음으로 작곡되었다. 반면에 가문의 이름인 말라테스타 부분은 빠른 셋잇단음표가 잔치를 차린듯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이것은 최상 성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양식의 진정한 예이다. 비록 '친절한 샤를'을 노래할 때는 연주자들이 독창자와 합세하긴하지만 나머지 두 성부의 그 어느 쪽도 성악 연주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부르고뉴 악파의 샹송 ■


부르고뉴 악파의 샹송 : 15세기에는 '샹송(chanson)'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된 세속적인 시를 다성적으로 작곡한 모든 것을 말한다. 부르고뉴 악파의 샹송은 사실상 반주가 달린 독창곡이었다. 거의 항상 연애시였던 가사는 대부분이 론도 형태로 되어있었으며 때로는 2형의 반복구를 가진 전통적인 형식일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각각 4 또는 5행의 절과 반복구를 지닌 4행 론도 또는 5행 론도처럼 확대된 형식일때도 이있었다. 샹송은 부르고뉴 악파의 가장 특징적인 산물이었다. 그러는 한편 전통적인 aabC형식의 발라드로 지속적으로 작곡되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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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욤 뒤파이-론도:Adieu ces bon vins de lannoys ■


1426년경 작고된 뒤파이의 <안녕 리누아의 맛있는 포도주여>는 5행 론도(rondeau cinquain)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ABaAabAB의 표준적인 형식을 따랐다. 이 작품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한 성부에서 한마디가 때때로 3분할이 2분할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4/3박자에서 6/8박자로 변화한다. 테너 성부의 음표가 가사의 모든 음절에 해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테너 성부는 기악 부분이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 질 뱅슈아 : 샹송의 또다른 거장은 질 뱅슈아이다. 그는 1400년경 몽에서 태어났으며 젊었을 때 그는 음악활동과 군대생활을 함께한것 같다. 1420년경부터 1453년 수아니(Soignies)에서 은퇴하기까지 그는 필립 더 긋(Phillip the Good)의 예배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뱅슈아의 샹송은 감각적인 동경이 가미된 민감한 우울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율의 매력적인 진행과 앙상블의 맑고 밝은 색갈의 음향 그리고 곡 전체의 세밀한 균형은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분계점에 서있는 멀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환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 부르고뉴 악파의 모테트 ■

 

부르고뉴 악파의 모테트 : 이러한 부르고뉴 악파의 음악양식이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 전통은 독립된 정치적 권력으로서의 부르고뉴 공작령이 몰락한 후에도 오랫동안 유럽에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어떠한 독특한 종교음악 양식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샹송과 같은 방식으로 모테트와 미사곡이 쓰여지게되었다. 이들은 보통의 3성부 구조로서 콘트라테너 성부에 의해 지지받으며 테너와 짜기지워지는 자유로운 선율적 독창의 최상 성부를 가진다. 최상 성부는 새로 작곡될 수도 있엇으나 대부분의 경우 성가의 선율을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이다. 그 일례로 뒤파이의 <은총같은 구세주의 어머니-Alma Redemptoris Mater>를 들수있다. 전례적인 정선율의 이러한 사용은 13세기와 14세기의 옛 모테트의 테너에 이러한 주제가 사용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여기서 전례선율은 구조에 대한 기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한 리듬이 아무리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또 듣는 사람이 그것을 분간할 수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그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르고뉴 악파의 모테트에서는 그레고리아 성가의 선율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되어있어었다. 이 선율은 전통과 이어지는 상징적인 연결일뿐 아니라 악곡을 구체적이고 음악적으로 표현한 성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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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욤 뒤파이 - 찬미가 : conditor alme siderum ■


부르고뉴 악파의 모테트에 끼친 포부르동 양식의 영향은 뒤파이의 모테트 특히 찬미가에 붙인 음악에서 자주 사용되는 지배적인 호모포니 구조와 6도-3도 화음 음향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찬미가의 예로 <별들의 너그러우신 창조주>를 들 수 있다. 여기서 평성가는 칸투스(cantus) 성부에 위치하여 테너는 주로 6도와 8도로 이것에 화음을 붙인다. 영국 데스캔트에서처럼 즉흥연주되는 중간 성부가 화성을 채운다 찬미가의 세행들은 평성가와 포부르동으로 번갈아가며 부르는것이 관례이다.


현대적인 샹송양식으로 작곡된 모테트 외에 뒤파이와 그 동시대 작곡가들은 아직도 이따금씩 엄숙한 공공행사에 아이소리듬적 모테트를 쓰는 관습--베네치아에서의 치코니아와 14세기 후기 작곡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을 따랐다. 고풍스런 문학양식과 같이 이러한 상황에는 고풍스런 음악양식이 적합했다. 이러한 작품으로 뒤파이의 4성부 아이소리듬적 모테트(Nuper rosarum flores>를 들 수 있는데 이 곡은 1436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대성당의 봉헌식을 위하여 쓰여졌다. 교황 유진 4세가 몸소 집전한 봉헌식에 참석했던 한 목격자는 색갈이 선명한 옷차림을 한 트럼펫과 비엘, 그리고 다른 악기 주자들의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청중들을 놀라게 한 합창단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그 결과 보는 사람들은 음악과 분향의 향기, 아름다운 장식의 모습에 의해 열정으로 가득 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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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 부르넬레쉬 설계 ●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건축가(이) 부르넬레쉬가
                                      설계한 돔의 비율은 뒤파이의 모테트 <Nuper rosaraum flores>
                                      (NAWM 31)의 형식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436년의
                                      성전봉헌식을 위해 기욤 뒤파이(G. Dufay)에 의해 쓰여진것이다.

 


                     ■ 기욤 뒤파이 - 모테트;Nuper rosaraum flores ■

 

뒤파이의 4성 아이소리드믹 모테트<Nuper rosaraum flores - terriblllis est locus iste, [최근에 장미가 피었다]--이곳은 무시무시하다>의 세부적인 부분들과 또한 전체적인 리듬적 비례가 대성당의 둥근 천정의 비례와 정확히 일치하고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 둥근 천정은 유명한 르네상스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쉬가 고대 논문의 '음악적 균형'에 맞추어 설계했던 것이다. 이 모테트의 색다른 특징은 교회 봉헌 미사때의 입당송인 <Terribillis est locus iste>의 '정선율'이 서로 다른 음가를 가지며 엇갈려 들어가고 5도 간격으로 노래하는 두 개의 테너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브루넬레쉬가 설계한 아치형 천장에 이용된 이중 아치형 천정 공사에 비견되었다. 7이란 숫자는 중세 교회의 상징체계에서 그러하듯이 이 모테트에서 신비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여기서는 교회의 일곱 기둥을 상징한다. 가사는 각 절이 7행, 각행은 7음절로 구성된다. 4개의 아이소리듬적인 악절은 각각 상성부들의 자유로운 이중창의 7개 이중 롱가 또는 막시모디(maximodi;현대 악보의 14마디)를 가지며 역시 7의 아이소리듬적 테너들도 합쳐진다. 더우기 이중창은 각각 3+4롱가(6+8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테너는 서로 다른 멘슈레이션으로 같은 음악을 네 번 반복한다. 그러나 최상 성부는 두 번째부터 네 번째 악절에 걸쳐서 첫번째 악절의 음악을 변화시킨다. 유일하며 중요한 비대칭은 각 연이 아이소리듬적인 악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첫번째 악절은 13행으로 끝나며 그 이후로 계속해서 멜리스마가 첨가되기 때문이다.

 


● Gianozzo Manetti가 '두오모' 대성당 헌당예배에 참석하고 음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있다.

 

모든 사람들의 감각은 고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체거양(the elevation of the Most Sacred Host)때는 온 성전이 화음을 이루는 합창과 각각 다른 악기의 합주로 가득차 마치 천국의 교향악과 노래가 하늘에서 들려와 믿어지지않는 천상의 감미로움을 우리 귀에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이렇게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나는 이지상에서 축복받은 사람의 생활을 즐기는 것같이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거기에 참석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는 이렇게 증언할 수 있다.

 

Dufay, <Opera ommnia>, de Van과 Besseler편, 2:xxvii에 인용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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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 부르고뉴 악파 시대의 작곡가들이 특별히 종교적인 음악양식을 발전시킨것은 미사곡의 작법에서였다. 이들은 작곡가들의 발상과 노력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우리는 14세기 후기와 15세기 초기의 다성적 미사곡의 작곡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이미 보아왔다. 1420년경 이전에는 미사 통상문의 여러 부분이 독립된 악곡으로서 작곡되었다.(마쇼의 미사곡과 다른 몇곡은 예외이다)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독립된 악곡이 편집자에 의해 하나의 통일된 악곡으로 합쳐진 예도 있었다. 15세기의 주된 성과는 음악적으로 통일된 전체로서의 미사 통상문을 다성적으로 작곡하는일이 정규적인 관습으로 확립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두 부분(예를 들어 글로리아 크레도)만이 인식할 수 있는 음악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점차 통상문의 다섯 부분에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발전이 있었던 동기는 크고 복잡한 음악형식에 통일성을 주려는 음악가들의 바램이었다. 게다가 이와 유사한 미사 통상문의 평성가들을 순환적으로 그룹짓는 방식은 이미 14세기 초기에도 있었다. 물론 미사 통상문 다섯 부분 전부가 동일한 일반적인 양식으로 작곡되었을 때 생겨나는 어떤 음악적인 일치감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것으로 15세기 초에 대륙에서는 발라드나 샹송의 양식이 보통 사용되었다. 이 밖에 각 악장이(최상 성부에서 보통 장식된 형식으로 나타나는)적절한 정선율을 그라두알레로부터 취했다면 통일감은--음악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전례적인 연관성으로 인하여--더욱 강해졌다. 평성가의 선율은 반드시 주제적으로 연관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이러한 방법으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주제를 사용하는 미사곡을 '미사 코랄리스[Missa Choralis]'또는 '평성가 미사곡(plainsong Mass]'이라 한다) 미사곡의여러 부분을 확고하고 인지할 수 있게 상호 연결시키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각각 주제가 동일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연관성이 동일한 선율적 동기를 가진 각 악장의 시장에서만 나타났는데 대개는 최상 성부에서였다.(이런 방법을 사용한 미사곡을 간혹 모토 미사곡{moto mass}이라 부른다) 그러나 영국사람으로 루카에 가있던 존 호스비가 <마니피카트-Magnificat>에서 사용한 바 잇는 이 기법은 곧 다른 방법--각 악장에 동일한 정선율을 사용하는--으로 바뀌거난 이와 함께 사용되었다. 여기서 생겨나는 순환적 음악 형식은 '정선율 미사곡(cantus firmus mass)'이나 '테너 미사곡(tenor Mass)'이라고 알려져있다. 이런 종류의 연작미사(cyclical Mass)중 최초의 것들은 영국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었으나 그 형식은 곧 대륙으로 건너가 15세기 후반에는 통례적이것이 되었다. 중세 모테트의 전통에 따르면 빌려온 선율은 테너에 놓아두어야 했다. 그러나 15세기 음악에 관한 새로운 개념에 의하면 최저 성부는 특히 마침꼴에서 바람직한 화성적 진행을 하는 기초로서의 기능을 자유롭게 발휘해야만 했다. 본질적으로 수정될수없는 어떤 선율을 최저 성부로 이용하는것은 자곡가의 자유를 제한 했을것이다. 테너 아래에 또 하나의 성부를 놓아 테너를 아래에서 두 번째 성부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 최저 성부를 콘트라테너 바수스(contra tenor bassus)라고 하다가 후에는 간단히 바수스(bassus)라고 불렀다.또 테너 위에는 콘트라 테너 알투스(contra tenor altus)--후에는 알투스라 불린--라고 하는 제2의 콘트라 테너가 놓여졌다. 맨 위의 제일 높은 성부(treble part)는 칸투스('선율'), 디스칸투스(discant), 수페리우스('최상 성부')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4성부는 15세기 중기에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성부 배치는 오늘날까지 별다른 변화없이 표준적인 것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중세 모테트에서 물려받은 다른 하나의 유산은 정선율 미사곡의 테너를 다른 성부보다 긴 음표로 그리고 아이소리듬적 방식으로 작곡하는 관습이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평성가 선율에 어떤 정해진 리듬형을 부과시킨 후 같은 리듬형으로 그것을 반복하고 혹은 주어진 세속 선율의 본래 리듬을 유지하되 다른 성부와의 관계에서 리듬을 더 빠르게 하거나 더 느리게 함로써 선율의 연속적인 출현을 변화시켜 작곡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이소리듬적인 모테트에서와 같이 빌려온 선율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선율이 14세기처럼 최저 성부가 아니라 내성부에 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곡의 다섯 부본을 통일시키는데 있어서 그 선율의 조정력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정선율로 사용된 선율은 미사 고유문이나 성무일과의 성가에서 빌려온 것도 있고 혹은 세속적인 원천 즉, 샹송의 테너 성부에서 빌려온 것이 제일 많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미사 통상문과는 전례적인 관계가 없었다. 빌려온 선율의 이름은 정선율로서 역할을 한 미사곡에 그대로 붙여졌다. 유명했던 노래 'L'homme arme(무장한 남자 : 그 선율이 예5.5에 나타나있다)'에 기초한 수많은 미사들은 이러한 작품들이었다. 뒤파이에서 오케겜과 팔레스트리나에 이르는 15세기 후반과 16세기의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이 노래에 기초한 미사를 한 곡 이상씩은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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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한 남자 - L'h o m m e a r m e 」●

 

 

무장한 남자는 두렵게 여겨진다.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쇠사슬로 만든 갑옷으로 무장하여야 한다고 선포되어졌다. L'homme arme에 기초한 뒤파이의 미사중 아뉴스데이 I부분이 예 5.6에 나타나있다. 미사의 기사가 테너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성부가 하나나 그 이상의 악기로 연주되었다고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이것은 베이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 부분에서는(14-15마디) 베이스가 테너를 미리 모방한다. 두 개의 상성부는 가사에 맞추어 부르기가 좀더 쉽지만 필사본에 나타난 음절들의 위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수가 알아서 노래해야 한다. 22-23 마디에서의 알토와 베이스의 북잡한 리듬이 특기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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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몰튼 - 샹송 : L'homme arme ■

 

L'homme arme의 많은 편곡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중 어느 곡도 다른 곡들의 확실한 원천은 아니다. 이 곡에서 노래의 선율(예 5.5)은 테너에 들어있다. 이 노래는 작곡가가 다성음악으로 편곡하기 전에는 원래 단성음악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행 5도는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마을지기의 호른소리를 암시한다. 로버트 몰튼의 이 편곡은 그가 이전에 작곡했던 3성부 편곡에 베이스를 더한 것으로서 기악으로 연주될 때 더 충만한 효과를 얻으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 기욤 뒤파이 - Agnus Dei I from the mass L'homme ar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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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죄를 지고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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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욤 뒤파이 - 3성부 발라드 『Se la face ay pale』●

 

 

뒤파이의 3성부 발라드<Se la face ay pale>의 칸투스의 테너 성부들(NAWM 39a에 현대 악보로 옮겨져있다.) 둘째 절 가사가 칸투스 다음에 써있다. 이 필사본에는 52곡의 뒤파이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Oxford, Bodleian library,MS Canonici misc.213, fol.53v)

 


                     ■ 기욤 뒤파이-미사:Se la face ay pale Gloria ■

 

이 미사에서 그 자신의 발라드의 테너를 정선율로 사용하였다(NAWM 39a) 여기에 정량비례(proportional) 체계를 적용함으로써 각 악장마다 혹은 각 부분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하게 만들었다. 글로리아에서(그리고 크레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선율은 세 번 들려진다. 첫번째는 원래 음가의 3배의 음가로 들리고 두 번째는 2배의 음가로 들리며 세 번째에서야 원래 음가대로 들린다. 따라서 세 번째 들려질 때 비로소 처음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19-118마디까지의 테너 각 마디는 다른 성부의 세 마디에 해당되며 125-128마디에서는 다른 성부의 두 마디에 해당되고 165-198마디에서야 다른 성부의 한 마디에 해당하게된다. 따라서 계산된 선율의 반복이 글로리아의 형식을 이루게된다. 이 형식은 정선율이 나올 때마다  그 앞에 이중창이 나옴으로써 더 뚜렷해진다. 미사 전체를
통해 발라드 선율을 반복하는것 외에 또 하나의 통일수단은 소위 헤드 모티브(head motive)의 사용이다. 매 악장의 주요 부분들의 최상성은 글로리아에서 'Et in terra pax'라는 가사가 붙은 모티브로 시작된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악장 내에서도 종종 들려진다. 글로리아를 예로 든다면 40, 88, 119, 165마디 그리고 184마디 등에서이다.


뒤파이의 4성부 정선율 미사곡은 대부분 1450년 이후의 것으로 후기 작품들이다. 이러한 악곡들은 이제 당세기 초기의 샹송과 샹송풍의 모테트나 미사곡 양식과 구분되는 작곡기법으로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뒤파이의 정선율 미사곡에 나타나는 몇 가지 새로운 특징은 1450년 이후 지배적인 위치로 발전한 '학구적인' 음악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1430년경 이후의 발전 과정은 르네상스의 음악양식을 중세 후기의 것으로부터 구별해주는 특징들--즉, 불협화음의 통제와 6화음을 포함하는 주로 협화적인 음향, 성부들의 동등한 중요성, 선의 선율적이고 리듬적인 일치, 4성부 구조, 그리고 모방법의 이따금씩의 이용 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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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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