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다성음악의 시작과 13세기 음악

미뉴엣♡ 2015. 7. 10. 19:18
♡ 다성음악의 시작과 13세기의 음악 ♡    2010/03/0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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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L A I R E O' H E A R - S o l a r ●

 

 

 

                                          ●★ 초기 다성음악의 역사적 배경 ★●

 

 

 

11세기는 서양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서기 1000년에서 1100년에 이르는 동안 서유럽의 전역에서 경제상태가 회복되었고 인구가 증가했으며 황무지가 개간되었고 근대적인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노르만인의 영국정복 회교도로부터 스페인을 되찾기 위한 노력, 제1차십자군 그리고 그리스어와 아라비아어 첫번째 번역 사업과 함께 문화의 부흥, 개학과 스콜라철학의 시작 그리고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생성등이 이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이다. 서방의 문화적 독립은 자국어 문학이 성장함에 따라서 주목을 끌게되었고 1054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사이의 최종적인 분열로 상징화되었다. 11세기는 음악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많은 변화들은 나중에 결실을 맺어 서양음악에 여러가지 기본적인 부여하는 결과를 낳게되었다. 이 특징들은 서양음악을 세계의 다른 음악과 구별시켜주는데 그 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작곡은 음악작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서 서서히 즉흥연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방식의 즉흥연주는 대부분의 음악문화에있어서 통상적인 방법이며 9세기경에 이르기까지 서양에서 사용한 유일한 방법이었을듯하다. 점차적으로 전통적인 선율형의 구조위에서 매번 즉흥적으로 선율을 새롭게 꾸미는 대신 한번만 선율을 작곡해 놓으면 된다는 생각에 생겨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 편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연주법과 관계없이 오늘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2. 작곡된 악곡은 구전으로 전수되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쉽게 변경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 기보법의 발명은 정해진 형태로 음악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것은 악보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악보는 작곡자가 있든 없든 연주될 수 있도록해주는 일련의 지시였다. 이리하여 작곡과 연주는 이전처럼 한 사람에게 겸비되는 대신 별개로 구분되게 되었다. 그리고 연주자는 자곡가와 청중사이의 중재자로서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3. 음악은 도 의식적으로 구조화되었고 일정한 질서의 원칙 - 예를 들면 여덟가지 선법이론, 혹은 리듬과 화성에 관한 규칙 - 을 지니게되었다. 이러한 원칙들은 마침내 여러가지 체계로 공식화되었으며 여러 논문에 기술되었다.


4. 다성음악이 단성음악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성음악이 서양음악에만 국하된 것은 아니나, 그 어느 문화의 음악보다도 이 기법을 발달시킨것은 서양음악이었다. 서양음악은 인도와 중국같은 고도로 문명화된 다른 민족들의 음악적 특징인 리듬과 선율의 정교함을 희생하기는 했지만 다성음악 작법을 독특한 경지로까지 발전시켰다.


위에 열거한 변화가 모두 매우 서서히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과거와의 갑작스럽고 뚜렷한 단절은 없었다. 단성음악은 계속되었으며 안티폰과 찬미가, 그리고 시퀀스 등을 포함한 가장 뛰어난 몇몇 단성성가들은 12세기와 13세기에 만들어졌다. 11세기 이후에도 즉흥연주는 계속되었으며 새로 자곡된 많은 형식적 세부는 - 언제나 그랫듯이 - 즉흥적인 연주 관례에서 취해온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전체적으로 돌이켜보면 새롭고 전혀 다른 음악체계의 첫단계가 나타나기 시작한것이 11세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후 1000년 동안 서방교회는 고대와 동방의 음악에서 받을 수 있었던 모든것을 흡수하고 이를 자신의 고유한 용법에 맞게 변화시켰다. 서기 600년경까지 이러한 흡수 및 변환작업이 실제로 완성되었고, 그 다음 400년 동안에는 소재가 체계화되고 책으로 편찮되어 서유럽 전체에 보급되었다. 이러한 유산은 내버려지지 않았다. 16세기말까지와 심지어 그 후의 다성 종교음악곡들은 단성성가를 다른 것에서 빌어온 음악소재들 중에 포함시켰다. 그러는 동안 다성음악은 이러한 빌어온것들과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발전하기 시작했다. 16세기까지에는 작곡가들이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발전하고 그것을 지배할 새로운 기술을 창안해내었고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살고있는 음악사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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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오르가눔(EARLY ORGANUME) ■

 

다성음악은 처음으로 분명히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유럽에 존재해 있었다는 것을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다성음악은 아마도 비전례적 종교음악에 주로 쓰였을것이다. 또 민속음악에도 쓰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다소 체계적인 헤테로포니(heterophony)의 사용과 함께 3도.4도.5도에서 선율을 중복시킴으로써 생겨났을 것이다. 즉, 동일한 선율을 장식이된 것과 되지않은 두 가지 형태로 동시에 연주함으로써 생겨났을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초기 유럽 다성음악에 관한 기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2성부 이상의 음악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9세기말경의 것이며 이것은 분명히 이미 행해지고 있던것에 관한 기록이지 어떤 새로운것에 대한 제안은 아니다. 작자미상의 논문인 음악안내서,「무지카 엔키리아디스-Musica enchiriadis」와 그에 관련된 대화체의 교과서인 학습지침서, 「스콜리카 엔키리아디스-Scolica enchiridis」에는 두 가지 종류의 '함께 노래부르기' 혹은 diaphony가 기록되어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는 오르가눔이라는 이름으로 일컬러어지고있다. 이 초기오르가눔의 한 종류에서는 평성가의 선율, 즉 주성부(vox principal)가 5도, 혹은 4도 아래의 제2의 성부(vox organalis)에 의해 중복된다. 또한 각 성부나 양성부 모두가 옥타브로 중복될 수도 있었다. 이 논문들에서 실제와 이론이 결합되어있는 정도가 다음의 오르가눔 기법을 독특한 방법으로 설명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예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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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 Deum - Musica Enchiriasis, ca 900 XVIII ●

 

 

무지카 엔키리아디스(Musica Enchiriadis, ca 900) 18장에 있는 테 데움(Te Deum)성가의 같은 부분을 두 가지로 이조한 것이다. 다지아기보법(casecian notation)으로 되어있다. 왼쪽에 있는 기호들은 여백에있는 음절들의 음고를 나타낸다. 아래쪽의 예는 성가 밑의 오르가눔 성부를 즉흥적으로 노래할때 어떻게하면 증4도(tritone)를 피할수있을지를 예증한다. 11세기 사본(Einsiedeln,stiftsbibliothec,Cod.79)

 

 

              ■ NAWM 13 무지카 엔키리아디스에 있는 오르가눔의 예들 ■

 

이 논문에 실려있는 오르가눔 중 가장 단순한 종류는 평성가-주성부-밑에 병행4도 간격을 두고 낮은 성부-오르가눔 성부-가 진행하는것이다(13a 예3.1참조) 이것을 좀 더 장식한다면 2성 오르가눔(two-part organum)의각 성부를 중복하는 두 개의 성부를 추가할수도 있을것이다.(13b:예3.2)

 

그림 3.1 병행오르가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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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행 오르가눔-4성부개작 병행오르가눔-사진행 오르가눔 ●

 

                                          그대의 겸손한 종들이 경건한 곡조로 경배하며 온갖 병으로

                                          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도록 명하기를 그대에게 간청하도다.

                                          (연작 시「천상의 왕」중에서)

 

 

어떤 선율들은 4도로 병행하다가 증4도를 만나게되는 경우도 있었다."Tehumiles"의 'les'같은부분이 그 예(13c;3.3 참조)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오르가눔 성부가 G 혹은 C음 아래로 진행하는것을 금하는 규칙이 생겨나게되었다. 오르가눔 성부는 병행4도로 진행하는것이 안전해질때까지 한 음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렇게하여 오르가눔 성부는 원래의 단선성가와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또 다양한 동시적 음정이 쓰이게되었으며 물론 그 음정 중에는 협화음정이 아닌것도 있었다.


10세기 이론가로서 오르가눔에 관해 말한 사람은 없으며 11세기에는 단지 귀도 한 사람만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동안 오르가눔은 분명히 '즉흥연주'로 불려지고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는 독립된 두 성부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인기를 끌게되었던 것 같다. 오르가눔은 그 첫단계 - 부가된 성부가 고정된 음정 간격을 두고 원래의 성부를 단순히 중복하는 - 에서 거의 발전할 수 없었으며 지침서에 나타난 이에 대한 언급은, 동시대의 음악작품에 사용되고있는 몇 가지 예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그리고 세 가지 협화음정인 옥타브, 5도, 4도를 예시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남아있는 11세기 음악의 예들은 선율이 독립하게 되고 두 성부가 점차 동등하게되는 중요한 단계들을 보여준다. 즉, 반진행과 사진행이 규칙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예가 예3.4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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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세기의 오르가눔(The 11century's organum) ●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오르가눔 성부가 보통 주성부 위에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 두 성부는 종종 서로 교차되기도 한다. 주성부의 한음에 대해 종종 두 음을 노래하는 오르가눔 성부에 초보적인 리듬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11세기의 모든 오르가눔에서는 협화음정이 동음(同音), 8도, 4도, 그리고 5도였으며, 이외의 모든 음정은 부수적으로만 나타나고 해결을 요하는 불협화음으로 취급된다. 리듬은 항상 작품의 기초가 되는 평성가의 리듬과 같다.
오르가눔 양식의 작품을 수록한 가장 오래된 방대한 모음집은 운체스터 트로퍼(Winchester Troper;트로푸스를 모은 전례서)라알려진 11세기의 두 사본에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윈체스터 대성당에서 불렸던 트로푸스찬가를 모아놓은 것이다. 2성부로된 이 음악은 보표선이 없는 음높이 네우마(heighted neume)로 기보되어있기 때문에 정확한 음정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보다 더 정확한 기보법으로 후에 기록되어 보존된 선율이 있을 경우에는 복원될 수도 있다. 11세기의 다성작법은 전례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지 않고 주로 미사 통상문의 트로푸스 부분(특히 키리에, 글로리아 혹은 베네디카무스 도미노)이나 고유문의 몇 부분 (특히 그라두알레, 알렐루야와 영송, 그리고 시퀀스), 또는 성무일과의 레스폰소리에서 사용되었다. 이 때에도 원래의 성가에서 독창자들이 부르는 부분만 다성적으로 작곡되었다. 그러므로 다성적 부분은 단성적 부분과 교대로 연주된다. 즉, 어려운 다성부분은 독창자들이 불렀고 단성가는 합창단 전체가 동음(同音)으로 불렀다.

 

                    ■ NAWM 14 ORGANUM : Alleluia Just ut palma ■


이 예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 있는 약 1100년경의 필사본(MSM,17sup.)에 보존되어있는 「오르가눔 작성법-Ad organum faciendum」이라는 논문에서 발췌한것이다. 이 예는 Alleluia Justus ut palma에 대부분 한음 대 한음 양식으로 오르가눔 성부를 덧붙인 것이다. 오르가눔 성부는 대체로 성가 위에 있지만 종종 교차하기도 한다. 당양한 진행들이 사용되었다. 8도나 동음으로부터 4도나 5도로의 진행들이 특히 악구 시작 부분에 많이 쓰였고 이 반대의 진행들은 악절  끝부분에 많이 쓰였다. 악절 안에는 병행4도 병행5도 또 이런 음정들이 혼합되어 쓰였다. 6도에서 8도로의 진행 3도에서 동음으로의 진행은 단어의 끝부분 뿐아니라 오르가눔의 한 부분(section)을 끝맺는 종지로서 사용되었다. 11세기 말경에 다성음악은 작곡자들이 사진행과 반진행을 사용함으로써 두 개의 '선율적으로'독립된 선들을 조합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보표에 정확한 음높이를 표현하는 기보법이 발명됨으로써 화성적 음정은 안정성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두 가지 본질적인것 - '리듬적으로' 독립된 두 가지 이상의 선율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과 리듬을 기보하는 정확한 방법 - 은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들이다. 기보법의 발전은 다성음악이 성장함으로써 촉진되었다. 오직 하나만의 선율이 있을때 음높이와 리듬에 있어서 어느정도 자유재량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한 페이지에 기보되어있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선율을 함께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경우에는 음높이를 명확히 표시해야만 했을 뿐 아니라 그 리듬 관계를 표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고안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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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urtesy - Peter's Photo Odyssey ●

 

 

                            ■ 장식 오르가눔(Florid Organum) ■

 

오르가눔의 새로운 형식은 12세기초에 나타난다. 그 예는 스페인 북서부지방에 있는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수도원에 잇는  한 사본과 프랑스 남중부 리모쥬에 있는 성 마르샬수도원에서 나온 몇 가지 사본에 보존되어있다. 이러한 종류('장식적' '멜리스마적' 혹은 '아퀴타니아' 오르가눔 또는 '성 마르샬' 오르가눔이라 불린다)에서 원래의 단선성가의 선율은, 연주되거나 혹은 노래불려지거나 간에 항상 하성부에 놓여있다. 그러나 상성부(독창)가 갖가지 길이의 악구를 노래할 수 있도록 각음의 길이가 확대된다. 상성부가 자유로운 비리듬적 방법으로 불려졌는지 아니면 명확한 리듬 패턴으로 불려졌는지, 기보법으로 보아서는 분명하지않다. 그러나 어떠한경우에든 이런종류의 새로운 오르가눔은 분명 작품의길이를 크게 확대시킬뿐 아니라 하성부에서 분명한 선율로서의 그 본래 특징을 빼앗아갔다. 이리하여 하성부는 그 뒤에 선율적인 정교함을 지닌 동유럽의 민요 몇 곡과 비서구적 음악 체계의 대부분에 공통적으로 통하는 방법이었다. 한음의 연속, '지속음(drone)'과 같이 되었는데 이는 분명히 즉흥연주에서 비롯된 양식이었을 것이다. 필사본에 나타나는 음악들은 처음에는 즉흥적인 연주를 기록함으로서 얻어졌을 것이다. 하성부는 주선율을 보유하므로 테너(tenor)라 불려지는데 이 말은 '유지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tenere'에서 유래되었으며 15세기 중엽까지 다성음악 작품의 가장 낮은 성부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오르가눔이란 용어는 원래 하성부가 긴 음표를 가지는 형식에만 해당된다. 후에 12세기와 13세기 초에처럼 두 성부가 서로 비슷하게 정량화된 리듬으로 진행할때 이에대한 중세의 일반적인 용어는 디스칸투스(discant)였다. 꾸밈 오르가눔이 먼저 2성부 구조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명칭을 오르가눔 두플룸(prganum duplum)또는 purum('2중' 혹은 '순수한 오르가눔')이라 했다. 오르가눔은 확충된 다른 의미도 가지게되었다. 즉, 13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기원을 둔 모든 다성음악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로도 종종 사용된 것이다. 또 오늘날의 용어인 '소나타(sonata)'와 같이 악곡의 유형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작곡가의 '오르가눔' 혹은 '오르가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또, 오르가눔은 라틴어로 악기를 의미하며 또, 특별히 오르간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른 의미들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들어 동시대의 사람들이 레오냉을 'optimus organista'라고 불렀다면 그들은 그를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라고 부른것이 아니라 '훌륭한 오르가눔 작곡가' 즉,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작품들과 같은 악곡의 '작곡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 NAWM 15 베르수스, Senscente mundanto fil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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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수스(versus), Senscente mindano filio ●

 


이 베르수스는 대부분의 레퍼토리처럼 1음 대 1음의 형식과 장식 오르가눔 형식의 혼합으로 구성된다. 두 성부 모두 활기차며 음역이 비슷하지만 하성부가 상성부보다 더 뚜렷한 선율적 초점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먼저 착상되어진 듯하다. 반면에 상성부는 하성부보다 더 장식적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반진행이지만 병행 음정으로는 3도와 6도가 많이 쓰인다. 이 음정들(3도와 6도)은 자유롭게 쓰여지지만 선율의 시작과 끝에는 거의 항상 5도, 8도, 同度가 쓰인다. 2도와 7도는 전과음처럼 장식음으로 쓰일수있으나 두 개의 성부가 함께 만나는 지점은 확실치않다. 리듬을 표기하는 당시의 기보법이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 마르샬 오르가눔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3.5에서 보이듯이 병진행과 반진행 모두에서의 선율적 동형진행의 사용이다. 성 마르샬 오르가눔의 가사는 주로, 베네디카무스 도미노(benedicamus Domino)트로푸스의 압운, 운율(scanning), 악센트가 있는 베르수스(versus)라 불리우는 라틴시로 구성된다. 대체로 트로푸스 부분의 2성부는 동일한 가사를 갖는다. 경우에 따라 하성부가 원래의 단선성가 가사를 노래한 반면 상성부는 트로푸스의 가사에 붙은 선율을 노래한다. 한편 베르수스는 새로 작곡된 가사이므로 이러한 다성음악의 일부는 성가에 기초하지 않은 가장 초기의 것이다. 성 마르샬 레퍼토리의 가장 전형적인 오르가눔 양식은 상성부가 하성부에 있는 1음에 대해 많은 음을 가지는 멜리스마 또는 장식 오르가눔 양식이다. 이런 종류의 오르가눔은 두 성부 음들의 상대적 시가를 규정하지않는 기보법으로도 노래불려질 수 있었다. 이 두성부는 한 성부 위에 다른 한 성부가 놓이며 - 총보 기보(scire natation) - 수직으로 꽤 잘 정렬되어 있었고 보표 위에는 악구를 구분하기 위한 수직선이 그어져있었다. 가수 두 사람 또는 독창자 한 사람과 작은 합창단은 자기들의 성부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리듬의 구조가 더 복잡한 작품에서는 - 예를들면 한 선율 또는 두 선율 모두가 정확한 상대적 음가를 지니는 긴 음표와 짧은 음표로 된 규칙적인 리듬 패턴으로 쓰여진 경우 - 긴 음표와 짧은 음표를 구분하고그들의 상대적인 음가를 표기하는 어떤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평성가의 중세 후기(그리고 현대의)의 성가 기보법은 이것을 나타내지 못하고있다. 12세기까지의 성가는 가사의 리듬과 결부되거나 자유로운 리듬으로 불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것을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않았다. 투르바두르와 투르베르의 선율 역시 이 기보법으로 기록될 수 있었는데 이는 만약 연주시에 길고 짧은 음가 사이에 어떤 체계적인 구별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기보상의 음표형태가 아니라 시의 운율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곡들도 성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할 선율선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창이나 단성음악을 노래할 때에는 실질적으로 그리 중요하지않던 음가와 리듬의 불확실함은 동시에 소리나는 두 개 이상의 선율이 함께 있을때에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실래빅(syllabic)한 가사가 사용된 경우라도 그것은 대개 규칙적인 리듬 패턴이 없는 산문 가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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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Y TWOMBLY - F O U R S E A S O N S - SUMMER ●

 

 

                                          ■ 리 듬 선 법 ■

 

11세기와 12세기의 작곡가들이 리듬을 기보하려고 창안해낸 체계는 13세기까지의 모든 다성음악에 적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쓰고있는 기보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칙에 근거를 두고있었다. 다른 음표기호를 써서 고정된 상대적인 음가를 나타내는 대신 음표들 특히 음표군들의 조합으로 다른 리듬패턴을 표기하였다. 1250년경까지 이 형태들은 여섯가지 리듬선법으로 정리되었고 단순히 번호로 구별을 하게되었다.

 

  I. ♩♪        IV. ♪♩♩.
 II. ♪♩         V. ♩.♩. 
III. ♩.♪♩     IV. ♪♪♪

 

위에서 볼수있듯이 이 패턴들은 프랑스어와 라틴어 시구의 운율과 상응한다. 예를 들어 제1 리듬선법은 트로키(trochee)에 제2 리듬선법은 이암브(iamb), 제3 선법은 닥틸(dactyl),제4 선법은 아나페스트(anapest)에 각각 상응한다. 그러나 리듬선법과 시의 박자간의 관계는 우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제1선법과 제5선법은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제2선법과 제3선법도 흔히 쓰인다. 제6선법은 종종 제1선법이나 제2선법의 음가들을 세분한것으로 쓰이며 제4선법은 잘 쓰이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이 체계에 따르자면 제1 리듬선법에 의한 선율은 ♩♪패턴의 불특정한 반복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각 악구는 아래와 같이 이 패턴의 두번째 음표를 대신한 쉼표로 끝나야만 한다.

 

♩♪♩♪ㅣ ♩♪♩,ㅣ ♩♪♩♪ㅣ etc.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선율의 리듬은 이것보다는 한층 더 융통성이 있었을 것이다. 음표들은 각각 더 짧은 단위로 나뉠수도 있으며 또는 두 음표가 하나로 조합될 수도 있었다. 또, 변화를 주기 위하여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제1 리듬선법에 의한 선율은 엄격하게 정량화 되지 않은 긴 음표나 혹은 제5선법 패턴으로 정리된 테너 위에서 불렀을 수도 있다.

 

♩.♩.ㅣ ♩.§ㅣ ♩. ♩.ㅣ♩. §ㅣetc.

 

제1 리듬선법으로 볼 수 있는 실제 선율을 예3.7의 상성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리듬체계의 기초는 이론가들이 완전(perfect)이라고 부르는 세 박자 단위였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리듬 선법이든 다른 리듬선법들과 결합될 수 있게해주는 것이었다. 선법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한 후에도 14세기까지의 모든 중세 다성음악은 - 적어도 정량적 리듬으로 되어있다면 현대의 6/8박자나 9/8박자와 같은 효과를 내는 박(beat)의 3분할법에 의해 지배되었다. 요구되는 리듬선법은 음표의 선택과 순서에 의해서 가수들에게 지시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복합 네우마에서 파생된것으로 둘, 셋, 혹은 그 이상의 음군(郡)을 나타내는 복합기호인 리가투라(Ligature)는 이러한 지시사항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선율이 예3.6a에서처럼 - 하나의 세 음 리가투라 뒤에 두 음 리가투라들이 계속된다. - 기보된다면, 가수는 현대기보법으로 표현된 예3.6b의 리듬으로 이것을 불렀을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3.6a의 일련의 특정한 리가투라는 가수가 제1 리듬선법을 사용해야한다는 신호였다. 다른 리듬선법들도 이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리듬형에서 벗어나거나 선법이 변화되는 경우, 또는 리가투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반복음이 나오는 경우에는 - 너무 복잡하고 길어서 여기에선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 기보법의 변경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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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듬선법을 나타내기 위한 리가투라(Ligatrue)의 사용 ●

 

 

                                 ■ 노트르담 악파의 오르가눔 ■

 

리듬선법의 체계가 어떤 한 순간에 갑자기 발명되었다거나 그 체계가 먼저 생겨나고 그에 맞추어 음악이 쓰여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 체계와 그 기보법은 12세기.13세기 초반 동안 천천히 발전해서 파리.보배.상스 그리고 그 외의 북중부 프랑스의 중심지에서 활약하던 다성음악 작곡가들의 필요를 채우게 되었다. 이 악파의 두 작곡가들 - 은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레오냉(Leonin, ca1159.ca1201)과 페로땡(Perotin,ca.1170.ca.1236)이었다. 레오냉은 이들의 음악은 동시대의 무명 프랑스인들의 것들과 함께 노트르담 악파의 음악이라고 총칭되어진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참사회원(canon)이었으며 페로땡 역시 같은 성당에서 일했다. 12세기에서 14세기 중반까지의 다성음악 예술전체는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차츰 다른 유럽지역에 전파되었다. 오르가눔에 있어서 최고의 업적은 역시 노트르담 악파의 작품들이었다. 물론 오르가눔은 프랑스의 다른 지방,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도 불리워졌다. 그러나 파리에서만큼 광범위하게 그리고 또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파리에서는 종종 축제행사에서 가수가 즉흥적으로 오르가눔을 노래하기도 했었다. 미사와 성무일과에 쓰이는 대부분의 음악은 여전히 단성성가였으며 오르가눔과 다른 다성적 작품을 담은 필사본에서도 새로이 작곡된 단성적 노래들이 발전된다.

 

                           ■ 레오냉-Leonin(ca.1159-ca.1201) ■

 

레오냉 : 노트르담 악파와 그후 13세기의 음악을 보면, 세 가지 주요한 작곡양식 혹은 유행이 있음을 알 수있다. 오르가눔(organum), 콘둑투스(conductus), 모테트(motet)가 그것이다. 레오냉은 일련의 2성부 그라두알레와 알렐루야 그리고 레스폰소리가 담긴 교회력 전체를 위한 <오르가눔 대전집-Magnus liberorgani)을 썼다. 오르가눔 대전집은 그 본래의 형태로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 내용은 피렌체와 볼펜뷔텔, 마드리드 그리고 이 밖의 여러곳에 있는 여러
사본에 남아있다. 이 중 몇 가지는 현대판이나 영인본으로 구해볼 수 있다. 레오냉의 오르가눔은 미사와 성무일과의 응창적 성가의 독창 부분에 맞춰 작곡된것이다. 알렐루야는 바로 이런 종류의 성가이며 부활절 미사때의 알렐루야(Alleuia Pascha nostrum)는 레오냉과 그 이후의 작곡가들이 정교하게 가다듬어 이런 종류의 성가에 부과된 다성음악적 장식의 여러 층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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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냉<Alleluia verse Pscha nostrum>오르가눔두플룸 ●

 


레오냉<Alleuia verse Pascha nostrum>의 오르가눔 두플룸. 오르가눔 푸룸인 Pascha부분은 모호하게 - 아마 자유로운 리듬으로 기보되어 있으며 디스칸트 클라우슐라인 nostrum 부분은 두 파트 모두 리듬선법으로 되어있다. 한가지 가능한 해독법은 NAWM16b에 수록되어있다(Florence.Biblioteca Medicea.Laurenziana MS Pluteus 29.1)

 

 

   ■ NAWM 16 a.c Alleluia Pascha nostrum:평성가와 그에 기초한 다성음악 ■

 

원래의 성가(16a)와 레오냉의 악곡(16b)를 비교해보면 합창 부분은 단순한 평성가로 남겨져있는 반면 독창 부분은 다성음악적으로 확장되어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Soli                                   Chorus                       Soli
        Organum        duplum          Plainchant                  Organum duplum             Discant
        Alleluia           ......             Alleluia    ........           Pascha ........                 nostrum(meslima)

        Soli,cont.                                                                                                Chorus
        Organum        duplum          Discant                                                           plainchant
        immo.la.                             (melisma).tus(melisma)est                                Christus

        Soli                                   Chorus
                             Discant         Chant
        Alle.lu.ia                             .....

 

응창적 성가 연주에 이미 나타났던 형식적인 음향적인 대조는 이처럼 확대되었다. 다양한 악곡 형식을 통한 이 이상의 대조가 다성음악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Alleluia Pascha nostrum의 첫부분인 영창 Alleluia(예3.7)는 처음에는 그 이전의 멜리스마적 즉, 장식오르가눔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 단선성가의 선율은 정량화되지 않은 긴 음으로 확대되어 테너(tenor)를 형성한다. 이것을 실제로한 사람의 독창자가 노래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현악기나 오르간으로 연주되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몇 명의 가수(이들은서로 번갈아가며 호흡할 수 있었다)에 의해 노래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아보인다. 이러한 긴 음위에서 독창자는 종지나 쉼표에 의해 불규칙적으로 나뉜 가사없는 멜리스마적인 악구를 노래한다.

 

 

           ■ 레오냉-Organum Duplum;First Section of Pascha nostr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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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냉 오르가눔두플룸-First Section of Pascha nostrum ●

 

                          Florence,Biblioteca Medicea-Laurenziana,MS Pluteus 29.1 fol,109r.

 

원래의 기보법은 p.108에 실려있다. 단음을 표시하는 음표에는 '롱가 longa(또는 long)'■ㅣ와 '브레비스 ■ㅣbreve)'의 단 두가지가 잇다. 롱가와 브레비스를 조합한것이다. 이런종류의 기보법에서 롱가와 브레비스는 그 음의 길이가 정해져 있지않다. 각 음의 시가는 전후 관계와 패턴 내에서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악보에 나타나있는 ( )는 원본에 있는 리가투라를 가리키기도하고 하나의 롱가에 붙은 '콘융투라 conjunctura-currentes)' 라는 조그만 다이아몬드형의 하행 음표군을 가리키기도 한다. 리가투라에 붙어있는 콘융투라는 이음줄(slur)로 표시되어있다. ♪/는 '플리카(plica)'를 뜻하는 것으로 한 음표 또는 리가투라의 마지막 음표에 부착된 짧은 상향 혹은 하향 대시(dash)를 나타내고있다. 원래 장식음이나 경과음을 표시하는데 쓰인 플리카는 선법기보법(modal notation)에서는 상대적으로 긴 음표를 두 개의 짧은 음표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음가는 이것이 붙어있는 음표의 음가에서 빌어온다.


현대의 기보법으로 표기된 이 상성부(duplum)의 정확한 음가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것이다. 선법기보법(modal notation)의 몇 가지 세부 사항에 대한 해석은 아주 확실치 못하다. 게다가 기대되는 효과는 천천히 변화하는 일련의 '드론(drone)' 음 위에서의 표정이 풍부한 즉흥연주의 하나인것 같다. 이 상성부가 기보법이 제시하는대로 규칙적인 선법적 리듬패턴에 따라 불려졌는지, 아니면 자유롭고 비정량적인 리듬에서 불려졌는지는 여전히 학자들간에 노쟁거리로 남아있다. 선율은 대체로 즉흥적 연주 관습에서 파생된 양식임을 보여준다. 비주기적이며 다소 느슨하게 짜여진 흐름을 가지는것이 보통이다.
'Alleluia'란 가사의 제창 합창이 끝나면 독창으로된 2성부 구조가 시편 시와 함께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곧 'nostrum'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완전히 다른 양식이 들린다.(예3.8) 이제 테너는 엄격하게 정량된 리듬으로 노래한다. 더 빠른 음표로 진행하는 상성부는 더욱 명확한 리듬적인 성격을 지닌다. 두 성부 모두 앞부분의 비교적 융통성있는 리듬과는 대조적으로 명확하게 정량음가의 음표로 노래한다.이미 말한바와 같이 모든 부분이 정량된 리듬 안에 있는 양식을 디스칸투스(discant)라 부르게 되었다. 물론 특히 종지부분에 임시적인 짧은 멜리스마가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성부는 리듬선법에 따라 진행하였다. 순수 오르가눔과 디스칸투스 모두, 새로운 테너 음은 대체로 협화음, 또 긴 음일수록 완전 협화음으로 시작된다. Alleluia'의 'lu'와 'la', nostrum의 'nos', 또는 'est'에서와 같이 긴 부분의 종결부에서 현대의 전과음 음형처럼 제2도와 제7도는 각기 同度와 8도로 진행한다. 디스칸투스 부분에는 또한 쉼표들이 있어서 선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악구로 나누어진다.

 

 

                        ■ 레오냉의 Alleluia Pascha nostrum 중 ■ 

                            (시편의 시작및 nostrum 클라우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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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냉의 Alleluia Pscha nostrum-'nostrum' clusula ●

 

                                       여기 수록된 'nostrum' 클라우술라는 NAWM 16b에 스록된  W2로

                                       학자들에게 알려진 사본(Wolfenbuttel, Herzog August,

                                       Helmstetd.1099)의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오르가눔 양식을 사용할것인가 디스칸투스 양식을 사용할것인가의 선택은 아무렇게나 결전되는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과같은 일반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었다. 즉, 원래의 성가가 실래빅하거나 약간만 장식적 부분--에서는 다시 말해 한 음절에 대하여 비교적 적은 수의 음표가 붙는 부분--에서는 테너 음이 길게 지속되는 오르가눔 양식이 적당하다. 그러나 원래의 성가 그 자체가 매웅 멜리스마적인 부분에서는 곡 전체가 지나치게 연장되지 않도록 테너가 더욱 빨리 진행될 필요가 있었다. 성가의 멜리스마적인 부분에 기초하여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씌여진 이러한 부분을 클라우술라(clausula)라고 불렀다. 각 클라우술라는 명확한 마지막 종지를 가지고 있어서 구분이 뚜렷했다. 3.7과 3.8을 발췌한 피렌체의 출처에서 'Alleluia'는 세 개의 클라우술라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가 보았던 'nostrum'에 'immolatus'란 낱말의 'latus'에 그리고 마지막 'Alleluia'의 'lu'에서 이다. 이 클라우술라들 사이에는 오르가눔 양식으로된 대조적인 부분들이 있다. 마지막 디스칸투스부분 다음에는 합창이 이 오르가눔의 기초를 이루는 단선성가 Alleluia의 마지막 몇 악구를 부르면서 이 곡을 끝낸다. 레오냉 양식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옛 요소와 새로운 요소 즉, 리듬이 더욱 생생한 디스칸투스의 클라우술라와 그와 대조되는 장식적인 오르가눔 악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13세기가 진행함에 따라 순수 오르가눔은 디스칸투스로 이하여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과정 속에서 클라우술라는 처음에는 거의 독립된 곡이 되었다가 마침내 모테트(motet)라는 새로운 형식이 되었다.

 

 

                   ■ ANONYMOUS IV의 레오냉과 페로탱의 업적 비교 ■

 

대가 레오냉은 흔히 말해지듯 최고의 오르가눔 작곡가였다. 그는 예배를 장식하기위해서 그라두알레와 안티포너리로부터 오르가눔 대전집을 만들었다. 이것은 페로탱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사용되었다. 페로탱은 이를 편집하고 또 수많은 클라우술라, 퐁타(poncta)를 작곡하였다. 그는 최고의 디스칸투스 작곡가였으며 이점에서는 레오냉을 능가했다. 그러나 오르가눔의 미묘함이나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페로탱 자신도 훌륭한 4성 오르간--예를들면 'Videnunt'나 'Sederunt'--들을 작곡하였다. 이 곡들은 화성적 기교의 색채가 매우 풍부하다. 또한 'Alleluia Posuiadiutorium', 'Naivitas'등의 몇몇 고상한 3성 오르가눔도 작곡했다.그는 또 3성 콘둑투스인 'Salvatoris hodie', 2성 콘둑투스인 'Dum sigillum summi partris'와 심지어는 'Beata visceta' 등의 몇몇 단성 콘둑투스도 작곡하였다.

 

제리머 유드킨의 「The Music of Anonymous IV : A New Translation」MSD41(노이하우젠-슈투트가르트:AIM/한슬러출판사,1985),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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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L B E R T I R V I N - S T A R S E T II 1993 ●

 

 

                         ■ 페로탱 오르가눔(Perotin's Organum) ■

 

페로탱 오르가눔  : 페로탱과 그와 동시대인들의 업적은 레오냉의 세대에 이루어진것에 대한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페로탱은 오르가눔의 기본적인 형식구조--유니즌 성가의 다성음악 부분의 교체--를 유지하면서도 다성부분의 리듬을 더 정확하데 만들려는 경향을 보였다. 더 오래된 장식 오르가눔의 자유로운 부분이 간혹 디스칸투스 양식의 클라우술라로 대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오래된 많은 클라우술라(substitite clausula)라 불리는 명확하고 양식화된 패턴의 악장으로 대치되기도 했다. 페로탱 오르가눔의 테너는 보통 제5 리듬선법이나 제3 리듬선법의 반복적인 일련의 동일한 리듬동기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테너는 현대의 악보에서 2혹은 2의 배수의 마디로된 분명한 둘씩 모아놓은것같은 효과를 낸다.(예3.8) 더구나 페로탱 양식의 테너 선율은 전형적인 레오냉 양식의 테너보다 짧은 음가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작곡자가 원하는 길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반복되어야 했다. 이러한 종류의 두 가지--리듬적 동기와 선율--반복은 모두 13세기 후기 모테트의 형식적 특징이기도 했다. 테너가 동일하게 반복되는 리듬패턴으로 이루어져있는 예는 예3.9의 제7번과 제8번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다음장에서 배울 14세기 아이소리드믹 모테트(isorhythmic motet)의 기법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 NAWM 16d 페로탱(?), Subsitute Clasula on nostrum ■


아마도 페로탱이 작곡한 대용 클라우술라는 피렌체 판 사본(NAWM 16d)의 'nostrum'의 멜리스마에서 발견된 것이다. 페로탱은 리듬패턴을 이루는 두 구성요소를 뒤집어 놓았고(♩.♩. , ♩. ♩. , 를 ♩. ♩. ♩. , ㅇ. ♩. , 로 바꾸어놓음), 상성부에서 제1 리듬선법 대신에 제3 리듬선법을 선택했다. 본래의 클라우술라에서처럼 테너 선율이 두 번 반복된다.(2개의 제시부가 I과 II로 표시되어있는 예3.8참조) 그러나 대용 클라우술라에서 반복이 리듬패턴 첫음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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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탱과 그 동시대인들에 의한 중요한 혁신은 오르가눔이 2성부에서 3성부 혹은 4성부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제2성부가 두풀름(duplum)이라 불려졌기 때문에 이와 비슷하게 제3.4 성부는 각각 트리풀룸(triplum)과 콰드르플룸(quadruplum)이라고 불렀다. 3성오르가눔 혹은 트리플룸은 페로탱시대에 표준이 되었으며 오랫동안 즐겨 사용되었다. 그 예는 13세기 후반의 사본에서 발견된다. 긴 오르가눔 트리플룸에는 보통 뚜렷한 두 가지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혼합되거나 또는 교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트리플룸은 테너가 길어진 성가의 음표로 시작하고 그 위에서 두 성부는 정량된 악구로 진행된다. 이 양식은 레오냉 오르가눔의 지속음(오르가눔 양식부분, organum purum)부분과 유사하지만 상성부는 리듬이 정확하다는 점에서 디스칸투스와 유사하다. 노트르담 악파의 리듬 용법에 관한 논문인「De Mesurabili musica」를 쓴 요하네스 드 갈란디아(Johannes de Garlandia)는 이러한 중간적 양식이었음을 인식하고 이를 코풀라(copula)라고 불렀다. 이것은 디스칸투스와 같이 상성부들이 선법적 리듬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또 순수 오르가눔(organum purum)과 같이 하성부에 긴 지속음을 갖는다. 또한 그는 코풀라의 중요한 특징으로 음악이 선행, 후행 악구로 조직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전형적인 페로탱의 오르가눔에서는 이와같은 순순 오르가눔의 개시부 뒤에 하나 또는 둘 이상의 디스칸투스 부분이 이어지고 이 부분의 테너는 정량화되어있다. 물론 상성부보다는 느리게 진행하지만말이다. 악곡이 진행됨에 따라서 지속음 양식부분은 디스칸투스 양식의 부분과 혼합되기도하고 교대로 나타나기도한다. 일반적으로 후자(디스칸투스부분)는 원래 성가의 멜리스마적인 부분에 상응하고 지속음양식의 부분은 성가의 실래빅한 부분에 상응한다.


                                ■ Haec dies 중 'Domino'의 테르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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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ec dies 중 'Domino'의 테노르(tenor)들 ●

 

 

                      ■ NAWM 17 페로탱 4성 오르가눔 : Sederunt ■


이것은 성 스테판 날에 불리는 그라두알의 레스폰드 중 영창, 즉 첫번째 단어를 위한 음악이다. 아마도 약 20분에 걸쳐 연주되는 긴 음악 중 일부일 것이다. 가사가 작곡자에게 음악을 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순수한 음악적 기법에 의지하고있다. 그중 하나가 성부 교차이다. 13-18마디까지 두플룸과 트리플룸은 두 마디의 동기를 서로 교환한다. 따라서 낮은 성부들은 세번에 걸쳐 똑같은 패턴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오스티나토(ostinato)처럼 말이다. 트리플룸과 콰드루플룸도 24-29마디까지 이와 유사하게 성부. 교차를 한다. 반면에 13-23마디까지의 콰드루플룸과 24-34마디까지의 트리풀룸 사이에서는 더 긴 선율들이 교환된다. 동시에 13-23마디까지와 똑같이 소리나게 된다. 이러한 대규모의 성부교환은 가수에게는 매우 흥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청자에게는 단순히 11마디의 반복일 뿐이었다. 더 짧은 규모의 성부 교환<Sederunt>이 부분 전체를 통해 일어나며 한 성부 내에서도 동기 반복이 사용된다. 갈란디아의 언급에 따르면 특별히 주목할만한것은 131-34마디와 135-38마디같은 악구의 짝지음이다. 이들은 마치 전후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109-12마디와 113-16마디도 마찬가지의 관계라고 불 수 있지만 여기에는 성부 교환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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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로탱 - 4성부 오르가눔<sedrunt principes -1p.> ●

 

                                        페로탱의 4성 오르가눔<sederunt principes> 중 한 페이지,
                                        피렌체 판(Biblioteca Medicea - Laurenziana, MS Pluteus

                                        29.1, fol 6r) 테노르의 지속음 위에서 진행하는 세 상성부의

                                        리듬이 선법적 리듬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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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ude Monet - Artist's Garden at Giverny 1900 ●

 

 

                                 ■ 다성 콘둑투스(conductus) ■

 

페로탱과 그 동시대인들의 트리플룸과 콰드르플룸은13세기 초기의 순수종교 다성음악의 정점을 이루었다. 1250년경까지 그 예가 많이 남아있는 콘둑투스는 찬미가와 시퀀스처럼 준(準)전례적인 근원에사 발전했지만 후에는 세속적인 작품을 포함할 수 있도록 혹대되었다. 그 가사는 11세기와 12세기의 다성 콘둑투스그리고 성 마르샬 베르수스의 가사와 비슷했다. 즉, 운율적인 라틴어 시로서 전례적은 아니었지만 종교적인 주제에 관한것은 많았다. 그리고 세속적인 가사라면 도덕적인 문제나 역사적인 사건 등을 진지하게 다루고있었다. 페로탱과 노트르담악파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이 쓴 다성 콘둑투스는 양식에 있어서 오르가눔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다성 콘둑투스의 음악은 2성, 3성, 혹은 4성으로 씌어졌으며 오르가눔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부들이 상당히 좁은 음역에서 교체하며 진행하였다. 주로 8도, 4도, 5도의 협화음 중심으로 쓰여졌으며, 3도는 아직 완전한 협화음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몇몇 콘둑투스에서는 상당히 많이 쓰였다. 성부의 교체는 꽤 자주 일어난다.

콘둑투스의 특징 : 이 시대의 다른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콘둑투스 리듬의 기초는 3분할에 있었다. 그러나 콘둑투스에서는 대체로 모든 성부가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오르가눔에서의 다양한 리듬과는 대조적으로--현대용어를 써서--화음적(chordal) 효과를 낳았다. 이런 방식의 작법을 간혹 '콘둑투스양식(conductus style)'이라고 부르며 때로는 콘둑투스 이외의 다른 악곡에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찬미가.시퀀스.발라드 그리고 론도의 2성 혹은 3성곡들은 12세기와 13세기 내내 이런 양식으로 씌여졌으며, 또 13세기초의 모테트도 마찬가지였다. 13세기초의 다성적 콘둑투스의 특징의 동일리듬적 텍스쳐(homorhythmic texture) 뿐이 아니었다. 두가지의 뚜렷한 특징이있는데 그 첫째는 가사의 대부분이 실래빅하게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콘둑투스의 시작과 마지막, 그리고 때로는 중요한 종지 앞이나 그 밖의 곳에 '카우다(cauda)'라고 하는 매우 길고 가사가 없는 악구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 기존 클라우술라를 혼용한 이러한 카우다, 말 그대로'꼬리'를 의미한다.(cauda라는 용어와 비교..)--는, 오르가눔의 리듬적 대조와 비슷하게 여러 성부에 다양한 리듬을 도입하는 일이 간혹 있으며
이렇게해서 콘둑투스 양식과 오루가눔 양식이 혼합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 NAWM 18 Condudtus : Ave virgo virgium ■

 

수많은 라틴 시처럼 콘둑투스(예3.10)도 성모마리아에게 기원하는 것으로 아마 특별한 봉헌이나 행렬 때에 사용된 듯하다. 3개의 절에 동일한 음악이 사용되며, 게다가 처음 2개의 쌍연구(couplet)의 모든 파트에는 동일한 음악이 쓰인다. 각행은 현대악보의 6/8박자 마디 2개에 해당된다. 단, 'O radio(그대의 빛에서는)'라는 감탄사는 예외인데 나머지부분이 7음절이나 6음절로 구성되어있는 데 반해서 이것은 단지 4음절만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짧은 선율적 악구는 필사본에 스트로크(stroke)로 분명히 나뉘어 있어서 제1선법이나 제2선법으로 옮겨져야 됨을 시사해준다. 비록 테노르 밑에만 가사가 쓰여져있지만 세 성부 모두 같은 가사로 불리워졌다.

 

 

                               ■ Early Thirteenth Century;Ave virgo virgi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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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하나이다 동정녀중의 동정녀이시며 하느님의 말씀이 육체로서

                                       나타남을 담으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젖과 꿀이 흘러나오게

                                       하신이여. 그대는 주님을 잉태하셨느니 모세의 갈대상자와 같으

                                       시나이다. 
                                       피렌체, Biblioteca Medicea - Laurenziana, MS Piuteus 29.1.

                                       fols240r-240v.

 

 

13세기 다성적 콘둑투스의 두 번째 특징은 테너를 종교적 성가난 다른 어떤 기존의 출처에서 빌어오지 않고 정선율(cantus firmus)로 쓰일 선율이 한 특정한 악곡을 위해 새로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콘둑투스와 그 선조적인 베르수스(NAWM 15)는 서양음악사에 있어서 선율적 소재를 차용하지 않고 완전히 창작적인 다성작품이라는 개념의 첫번째 발현이라 할수있다. 물론 이 새로운 선율은 다른 정선율과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필사본에서는 콘둑투스가 오르가눔과 동일한 방법으로, 총보배치(score arrangement)로 기보되었다. 즉, 각 성부의 대응하는 음들이 수직으로 배열되었고 가사는 가장 낮은부분(테너) 아래에만 씌여졌다. 이로부터 알수있는 것과 같이 콘둑투스는 다음과 같이 노래되었을 것이다. 즉, 모든 성부는 노래불려졌으며 멜리스마는 오르가눔의 멜리스마와 같은 발성으로 불려졌을 것이다. 오르가눔에서와 마찬가지로 악기는 또한 성부의 일부 혹은 전부를 중복시켰을지도 모른다. 몇몇 학자는 테너만이 노래되었으며 상성부는 악기로 연주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작과 끝에 있는 멜리스마는 모두 순전히 기악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오르가눔과 콘둑투스는 모두 1250년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13세기 후반에는 모테트가 다성악곡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 되었다.

 

 

                                         ■ 모테트 - Motet ■

 

기원과 그 일반적 특징 : 이미 살펴보앗듯이 레오냉은 디스칸투스 양식의 명확한 부분(클라우술라)을 그의 오르가눔에 도입시켰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 세대의 작곡가들을 매혹시켰다. 그래서 페로탱과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은 수 백개의 디스칸투스적인 클라우술라를 만들어냈다. 그중 대부분의 것들이 레오냉과 그 이전 다른 작곡가들의 것에 대한 대체나 대용으로 의도된 것이다. 이러한 '대체 클라우술라'는 교체될 수 있었으며 다섯 개 내지 열 개까지 동일한 테노르 위에서 씌여졌으며 합창 지휘자는 경우에 따라 이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첨가된 상성부(혹은 상성부들)에는 원래 가사가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13세기 중반 이전에는 종종 라틴어 운율시로 된 테너가사의 트로프(trope)나 페러프레이즈(paraphrase)가 가사로서 붙기시작하였다. 이리하여 클라우술라는 그것들이 묻혀있던 더 큰 오르가눔으로부터 잘려나와 독립된 악곡으로서의 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는 시퀀스가 알렐루야의 부가곡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독립된 악곡이 된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마 가사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새로 독립된 대용 클라우술라를 모테트라 불렀을것이다. 이 용어는 '말(word)'란 뜻의 프랑스어 'mot'에서 왔으며 클라우술라의 두풀름에 붙은 프랑스어 가사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모테트'는 의미가 확대되어 곡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라틴어형 'motetus'는 보통 모테트의 제2성부(원래의 두풀름)를 지칭하는것으로 사용된다. 성부가 셋 이상으로 늘어났을 때 제3성부와 제4성부는 오르가눔에서와 동일한 명칭(트리풀룸, 콰드로플룸)을 가진다. 13세기에는 수 천개의 모테트가 작곡되었다. 그 양식은 파리에서 시작하여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현재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사본 중 세가지 역주와 영인본을 실은 현대판으로 출판되었다. 주로 모테트인 336곡의 다성악곡을 수록한 몽펠리에 사본(Montpellier Codex)은 그 대부분이 13세기 중기의 것이다. 비교적 후기의 3성 모테트 108곡, 1곡의 콘둑투스, 7곡의 클라우술라를 수록한 밤베르크 사본(Bamberg Codex)도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부르고스 근교의 한 수도원에 보존되어있는 라스웰가스 사본(Las Huelgas Codex)은 비록 14세기에 씌어지긴 했지만 수록된 141곡의 다성음악 중 많은 13세기 모테트들이 포함되어있다. 대부분의 모테트는 각 성부마다 가사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모테트를 표시할 때는--예3.11과 예3.12에서처럼--제일 높은 성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각 성부의 인치피트(incipit,역주:가사의 첫번째 단어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명칭을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모테트는 작가 미상이며 각각 다른 사본 다소 다른 형태로 발전되는 모테트도 많이있는데 그중 어떤것이 가장 오래된 것인지를 알아내는것은 불가능할때가 많다. 옛날 음악에 새로운 가사가 붙기도하고 새로운 음악에 옛날 가사가 붙기도했다. 한 선율이 종교적인 가사에도 세속적인 가사에도 붙여졌다. 동일한 테너가 서로 다른 사본에서 발견될 수도 있었는데 이 때마다 테너위에는 다른 두플룸이 기록되어있었다. 원래 3성으로된 모테트가 그 상성부 중의 하나를 잃고 2성부 악곡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이전의 2 혹은 3성부 모테트에 3성부 혹은 4성부가 부가되는 경우는 다 많았을 것이다. 혹은 다른 부분들은 변화되지 않은 채, 새로운 상성부가 그 이전의 상성부를 대신할 수도 있었다. 어떤 때는 모테트의 테너가 빠지고 두 상성부만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모테트의 선율은--테노르나 상성부 모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작곡가와 연주가들은 아무런 사전 승락도 없이 선임자들의 음악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으며 통고없이 수정하였다. 상성부에 라틴어 가사를 붙인 대용 클라우술라 근거를 둔 최초의 모테트 형식은 곧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형이 가해졌다 :


1. 기존 선율에 가사를 붙이는 대신에 원래의 상성부를 버리고 테너만을 그대로 두면서 이러한 테너에 어울리는 새로운 선율을 하나 또는 그보다 작곡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단계였다. 이렇게하여 작곡가들은 더욱 자유롭게 가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기존 음악에 들어맞는 가사를 선택하거나 쓰지않고도 어떤 시의 가사든지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리듬과 선율 플레이즈의 다양성에 대한 훨씬 큰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2. 모테트는 교회 예식 이외, 세속적인 경우에도 불려질 수 있도록 작곡되었다. 이러한 모테트의 상성부에는 보통 자국어의 세속적인 가사가 붙여졌다. 상성부가 프랑스어 가사로 되어있는 모테트들은 여전히 단선성가의 선율을 정선율로 사용하였으나 정선율이 정례적인 기능을 하나도 가지지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라틴어 가사를 노래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아러한 테너들이 아마 악기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3. 3성부 모테트에서 두 성부에 서로 다른 가사--비록 의미는 관련되어 있더라도--를 사용하는것은 1250년 이전에 관행처럼 되어있었다. 가사는 둘 다 라틴어이거나 또는 둘 다 프랑스어로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드물긴해도 하나는 라틴어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였을 경우도 있다. 상성부가(반드시 다른 언어일 필요는 없지만) 서로 다른 가사로 된 이러한 3성부의 모테트는 13세기 후반기에는 표준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러한 다가사성(多歌詞性)의 원칙은 14세기의 발라드와 베를레(virelai)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13세기 초반에는 사실상 모테트의 테너가 <Magnus liber(117p 참조)의 클라우술라 테너 레퍼토리에서 뽑아낸 라틴어 가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클라우술라는 원래 성가의 멜리스마적인 부분을 기초로해서 씌여졌기 때문에 그 가사는 대부분 몇 개의 단어만으로, 때로는 오직 한 단어나 한 단어의 일부분만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모테트의 테너는 가사가 매우 짧았다.--어떤것은 <Alleluia Pascha nostrum>에서의'[immo]latus'나 'nostrum' 또는 부활주일의 그레두알레인 'Haec dies'나 'Domino', 'Quoniam'또는 'In secutum'같이 한 음절, 한 단어, 또는 한 구가 쓰였다. 실제의 가사가 한 악구보다 길다고해도 모테트의 필사본에는 테너 성부 밑에 인치피트가 나와있을 뿐이다. 이것은 이 악곡이 교회에서 사용될 것이라면 가수들이 가사의 나머지 부분을 알고있을 것이며 그밖의 곳에서 쓰일 것이라면 가사가 필요없으리라는 가정에서였을 것이다. 테너는 예3.9(nos. 5,7,8)와 예3.11의 테너에서 보여지듯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리듬패턴으로 진행하는 경향이 있었다. 13세기 중반 이후 특히 1275년 이후에는 모테트의 테너를 노트르담 악파의 악곡집 이외의 다른 원천에서 빌려왔다.즉, 키리에와 찬미가 그리고 안티폰이 사용된것이다. 1250년 이후 작곡가들은 동시대의 세속적인 샹송과 기악의 에스탕피에서 나온 테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레퍼토리 확대와 병행해서 리듬선법형을 사용하는 방식이 점차로 완화되었으며 여기서부터 리듬의 융통성이 증가되었다. 13세기가 지남에 따라 작곡가들은 모테트 전체를 한 흐름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더욱 세련된 감각을 익히게되었다. 따라서 모테투스와 트리플룸의 종지악구가 테너의 쉼표와 항상 일치하지 않도록 하고 성부마다 다른 지점에서 악구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배움으로써(예3.11과 같이) 몇몇 모테트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같이 시작하고 멈추는(start-and-stop)'효과를 피했다.(예컨대NAWM 16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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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WM 16b.g 레오냉-오르가눔 두플룸;Alleluia Pascha nostrum ■

                                   ((파 생 된 클 라 우 술 라))                        

 

magnus liber에 수록된 Pascha nostrum(NAWM 16b)의 본래 클라우술라와 대용 클라우술라에 라틴어 가사, 프랑스어 가사, 또는 프랑스어와 라틴어dml 두 가사가 부가되면서 모테트로 개작되었다. 예컨대 latus의 클라우술라(NAWM 16f)는 두플룸에 라틴어 가사 Ave Maria, Fons letitie가 붙여져서 동정녀 마리아를 기리는 모테트가 되었다. 두플룸 악구의 간결성은 시인으로 하여금 두 번째 행마다 각운을 창안하도록 했다. Nostrum에 적용된 대용 클라우술라의 하나는(NAWM 16d 참조) 약간 수정되고 제3의 성부 즉, 트리플룸이 부가되면서 모테트 Salve saus-O radians stella precereris-Nostrum(NAWM 16e참조)이 되었다. 두 개의 시적 가사는 Alleluia의 시구와는 관련이 없으나 성모 마리아께 기원을 드린다는 점에서 서로를 보완해준다. 음악이 이 가사에 붙여진것이 아니라 가사가 음악에 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시행(詩行)의 길이는 불규칙적이 되고 두플룸에서 'is'와 'ia', 트리플룸에서 'um'와'ie' 각각 두 음절씩을 교체시키듯이 운율구조는 극단적으로 단순해진다. 트리플룸에서의 제3리듬선법은 두플룸에서의 제3리듬선법에 들어맞지만 악절의 길이가 잘 계산되어서 동시에 쉬지는 않는다. 이 모테트는 또한 각 성부에 프랑스어 가사--Qui d'amors veut bien - Qui longuement perroit - Nostrum(NAWM 16g참조)를 대입시켜 세속적 용도에 맞게 개작되기도 했다. 라틴어 모테트에서처럼 이 두 가사는 각자 서로를 강화하고 각각 단지 두 개의 서로 다른 운율 음절을 사용한다.

 

 

                                         ■ 모테트의 가사 ■

 

모테트의 가사 : 일반적으로 모테트의 가사로 쓰인 시들은 문학적으로 질이 높은 시들은 아니었다. 이 시들은 두운이 많았고 틀에 박힌 심상과 표현들이 풍부하였으며 별난 운 체계로 되어있고 변덕스런 연(stanza)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종종 몇개의 모음이나 음절이 모든 성부에서 동시에 혹은 연달아 나타나 강조되어서 가사내용의 유사성을 모음 음향의 유사성으로 강조하여 표현하기도 했다. 프랑스어 모테트 모테투스 트리플룸 모두에 프랑스어 가사를 가지는 모테트를 보면 상성부의 가사와 단순히 편리하고 전통적이며 기악적으로 연주되는 정선율로서의 기능을 하는 그레고리오 테너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연관성이없다. 여기에 나오는 두 가지의 프랑스어 가사는 거의 언제나 사랑노래였다. 트리플룸은 대체로 명랑했으며 모테투스는 대체로 불평을 털어놓는 식이었다. 이 두 가지 시는 일반적으로 예 3.11에서처럼 동시대의 투루베르 작품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프랑스어 모테트는 한 성부 혹은 여러성부에 그리고 시절의 끝에 반복구(refrain)를 포함시킨 것이 많이있다. 이 반복구는 13세기의 다른 노래들 안에 같은 형식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인용의 성격을 띠는 시의 한 행 또는 두 행이다. 다른 작품에서 반복구를 인용하는 예는 13세기 후반의 모테트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주로 프랑스어의 테너를 가진 모테트에 제한되어있었다. 여러 성부들의 결합은 현대의 3중창이나 4중창과 같이 동질적인 앙상블은 아니었다. 모든 성부가 함께 연주된다 하더라도 각 성부는 어느 정도 분리되며 물리적으로는 같은 표면에 존재하면서도 같은 시각적 공간에는 존재하지않는 중세 회화의 인물처럼 혼합되지 않고 병치된 것이었다. 여러 성부들의 조화는 음악보다는 가사의 연관성에 의해 표명되었는데 일치하는 자음들과 성부들 사이에서의 모음의 반향(echoing)에 의해 나타내어졌다. 또 직접적으로 느껴지지않는 더욱 미묘한 수단들 즉, 우리에게 보다는 중세의 청자에게 더 쉽게 파악될 수 있었던 관념들의 상징적인 관련성에 의해서도 표현되었다. 이러한 상징적 조화는 모테투스와 트리플룸 서로 다른 언어로 쓰여진 것까지도 무시할 수 있을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 프랑코풍의 모테트 ■

 

프랑고풍의 모테트 : 초기 모테트에서 모테투스와 트리플룸은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비슷했다. 즉, 이들은 기본적인 리듬선법을 약간 변화시켜 생기있게 진행하며 뒤엉켜있었는데 선율 스타일은 실제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 후의 작곡가들은 종종 상성부와 테너 사이에도 양식상 구별을 두려하였다. 이러한 그 후의 모테트들 1250년부터 1280년까지 활동했던 작곡가이며 이론가인 콜론의 프랑코(Franco of Cologne)의 이름을 따서 때때로 '프랑코풍의 모테트
(Franconian motet)'라 부르기도 한다. 트리플룸의 가사는 모테투스의 것보다 길며 그 선율은 좁은 음역의 짧은 악구안에 있는 다수의 짧은 음표로 이루어지는것으로서 다소 빨리 진행하는 선율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테투스는 비교적 폭이 넓고 호흡이 길며 서정적인 선율을 노래했다. 13세기 중반무렵 모테트의 가장 현저한 특성 중의 하나는 테너의 엄격한 리듬구조였다. 사실상 균형잡히지 않은 악구로 이루어진 트리플룸에서의 자유롭고 신선한 효과들은 더 조직적인 모테투스와 특히 박절이 뚜렷하고 변함없는 테너 동기의 지속과의 대조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13세기말경에 들어서는 테너도 강혹 다른 성부의 양식에 가까운  더욱 유연한 양식으로 씌어졌다.

 

 

                 ■ NAWM 20 Motet;Pucelete - Je languis - Domino ■

 

프랑코양식의 모테트 중 매력적인 예는 <Pucelete - Je languis - Domino>(예3.11)이다. 이 모테트에서는 각 성부가 다른 리듬선법을 사용하고 있다. 테너는 제5선법이며 모테투스는 대부분이 제2선법의 패턴으로 진행한다. 트리플룸은 첫번째 음표가 두 개의 더 짧은 음표로 나누어지는 제6선법의 한 변형으로 진행한다. 이 작품에서 두 상성부 사이의 음악적 대조는 가사의 대조로 더욱 강조된다. 트리플룸은 여성의 매력에 대한 수다스러운 묘사이며 모테투스는 그녀의 연인이 절망하며 부르는 상투적인 탄식이다. 테너의 가사인 'Domino'는 단순히 이 선율의 원천 (성가 <Benedicamus Domino>에서 'Domino'라는 단어에 곡을 붙인것「Liber Usualis」의 124몀참조)을 가리키고있을 뿐 모테투스나 트리플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모테투스의 가사는 음악에 쓰인 제2 리듬선법에 억지로 끼워 맞춘것이지만 트리플룸의 시에는 시작 리듬동기를 자주 반복하는 것이 가사와 잘 어울리도록 음악이 붙여졌다. 확실히 기악 파트인 테너는 리듬적으로 자유롭다. 다양한 프레이징과 조용한 움직임 때문에 테너는 이전의 리듬적으로 엄격한 모테트 테너들이 불쑥 두드러졌던 데 반해 전체 텍스쳐에 융합된다. 이런 테너를 쓴 음악가는 아마도 리듬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기 보다는 종지가 일어나는 선법들을 다양하게 쓰는 데에 더욱 흥미를 느낀 듯하다. 대부분의 악구는 D에서 끝맺지만 G와 C음에서의 종지는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 Motet ; Je languis - Dom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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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룸 :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예쁘고 우아하며 기쁨을 주는 애교있는 아가씨 내가 그토록 열망하는 귀여운 아가씨는 나에게 기쁘고 단정하고 친근하며 연정을 품게한다. 5월의 어떠한 꾀꼬리도 그토록 즐겁게 노래부르는 일은 없노라. 나는 나의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나의 사랑스러운 그녀 아름다운 갈색 머리의 그녀를 사랑하리라. 나의 인생을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대로 다스려온 아름다운 벗이여 나는 탄식하며 나의 자비를 부르짖어 청하노라
모테투스 : 나는 사랑의 병으로 번민하노라 그러나 다른 병으로 죽기보다는 차라리 이 병으로 쓰러지는 편을 택하겠노라 이러한 죽음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기에 아름다운 벗이여 나를 이 병에서 구원해다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나를 죽게하리라

 
13세기말에 이르러서 이 두 가지양식의 모테트가 나타났다. 한 가사는 빠르고 말하는듯한 트리플룸, 약간 느린 모테투스, 엄격한 리듬패턴으로 이루어진 성가 테너(악기로 연주되긴 했지만)로 이루어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세속 노래의 테너를 사용한 것으로서 트리플룸이 선율적으로 가장 중요하긴 하였지만 모든 성부가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유형의 모테트는 몇 명 안되는 지금까지 알려진 13세기의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1270년부너 1300년까지 활동했던 페트루스 드 크루제(Petrus de Cruce, Pierre de Croix)의 이름을 따서 '페트루스식(Petronian)'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그는 하성부와 비교할때 전례없는 속도를 가지며 긴 음들이 더욱 더 짧은 시가의 것들로 나뉜 트리플룸을 가진 모테트를 썼다. 원래 브레비스는 그 이름이 의미하듯, '짧은'음표로서 13세기 중반에는 대략 MM=132 정도였을 것이다. 13세기말에 이르자 그것의 절반에 가까운 음가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14세기의 '박절법의 세분화(metrical inflation)'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미브레비스로 하여금 박의 새로운 단위가 되도록 하였다.

 


               ■ NAWM 19 Motet ; Acun vont - Amor qui cor - Kyrie ■

 

페트루스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는 않지만 이 모테트는 페트루스식으로 되어있다.(예 3.12의 시작부분 참조) 테너는 한결같이 완전롱가(현대악보의 점2분음표)로 진행된다. 반면 제2 리듬선법에 기초한 두플룸은 각 트레비스 당 세미 브레비스(8분음표) 두개를 넘지않는다. 그러나 트리플룸은 리듬선법에서 일탈하여 하나의 브레비스에 2.6개의 세미브레비스를 갖는다. 이전의 많은 모테트처럼 두플룸은 4마디 악구로 구성된다. 그러나 트리플룸의 종지형은 두플룸의 종지형과 일치하지 않아서 음악이 쉬지않고 계속 진행하게한다. 트리플룸 가수가 이렇게 많은 음표들을 부를 수 있도록 하려면 브레비스의 속도를 감소시켜야 한다. 하나의 언어로 된 두 종류의 가사를 지닌 다른 모테트들처럼 이 경우에도 두 가사는 서로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라틴어 가사가 과도한 사랑의 찬양을 담은 프랑스어 가사를 금욕주의적으로 억제해 주고있다.

 

 

                                   ■ Motet ; Acun vont Amor qui cor - Kyr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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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플룸 : 어떤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종종 사랑을 헐뜯는다네 
                                     그러나 충실히 사랑하는 것만큼 더 좋은것은 없다네. 모든 예의 
                                     모든 명예는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지..

                                     두플룸 :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사랑, 육체적인 애정이 만들어

                                     내는 사랑은 [악(惡)없이는 결코 또는 거의 존재할수가 없다네...]

                                     출처 : [중세음악 명곡선집 - Anthology of Medieval Music No.54]

 


13세기가 지나면서 생겨난 모테트의 리듬구조의 변화는 그 화성적 표현 어법의 변화보다 그 규모가 컸다. 1200년대와 마찬가지로 1300년에도 5도와 8도가 강박을 위한 적당한 협화음으로서 인정받았다. 4도는 점점 더 불협화음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3도는 실제적인 협화음의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했지만 세기말에는 게기초보다 훨씬 덜 쓰였다. 협화음정의 변화는 테너 성부의 리듬을 따랐다. 다시 말해 테너의 각 음은 그 윗 성부들과 협화음정들을 이루어야했던 반면 이 음들 사이에서는 성부들이 자유롭게 불협화음정을 이룰수도 있었던 것이다. 테너의 음이 트리플룸의 음에 비해 매우 긴 페트루스 드 쿠르제양식의 작품에는 빠른 선율의 진행과 길게 늘어진 화성적 변화와의 사이에 특유한 대조가 있었다. 1250년이후에 마침꼴은 그 다음 2세기동안 표준으로 남아있게 된 형식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 예가 예3.13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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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의 작곡가나 청중들은 음악의 화성적 혹은 수식적인 면에 대한 관심이 우리보다 훨씬 적었다. 필요한곳에 협화음이 계속적으로 온다면 그 중간중간에 어떠한 불협화음이 와도 허용되었다. 예3.14와 같은 악구들은 13세기 중반의 4성모테트에서는 진귀한것이 아니었다. 강박에서의 불협화음 (*로 표시되었다)콰드루플룸을 만들려고하는 사람들은 이미 씌어진 선율을 머리에 기억해 두어야만 한다. 만일 이것이 하나의 성부와 협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성부들과 협화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라는 프랑코의 규칙으로 정당화 되었다. 게다가 여러 선율선의 무절제한 진행 때문에 여기저기서 항상 불협화음이 손쉽게 일어났다.

 

 

                                                ■ 몽펠리에 모테트의 한 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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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s cantus mensurabilis(ca,1250)에 나타난 정량음악에 대한 ■

                             프랑코의 생각(Franco of Cologne)

 

정량음악이란 길고 짧은 시간 간격(time interval)들로 정량화된 선율을 말한다. 이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measure란 무엇을 말하며 시간(time)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하자. measure란 어떤 정량가능한 선율의 길고 짧음을 보여주는 특성이다. 나는 정량가능한 (mensurable)라고 말했다. 단선성가에는 이러한 종류의measure가 없기때문이다. 시간(time)이란 음양이 없는 실제 음양뿐아니라 그 반대 즉 소위 쉼표(rest)--의 measure이다. 나는 "쉼표는 시간으로 저량화 된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두 개의 다른 선율--하나는 쉼표가 있고 또 하나는 쉼표가 없는--이 서로 비율적으로 맞아 떨어질수가 없기때문이다. 정량음악은 전체적 정량음악과 부분적 정량음악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전체적 정량음악은 디스칸투스이다. 디스칸투스는 모든 부분이 시간적으로 정량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부분적 정량음악은 오르가눔이다. 오르가눔은 전체가 모두가 정량화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르가눔'이라는 단어는 알려져있듯이 정식과 일반적인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있다. 오르가눔의 정식 명칭은 오르가눔 두플룸(organum duplum)으로서 오르가눔 푸룸(organum purum)이라고도 불린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쓰이기로는 정량화된 모든 종교 성가를 가리킨다.

 

 

                                        ■ 13세기의 기보법 ■

 

13세기의 기보법 : 13세기 리듬의 발전은 기보법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이미 설명했듯이 13세기 전반 음악의 리듬구조는 리듬선법에 근거를 두고있었다. 즉, 각 음표에 고정된 음가가 없고 리듬 선법과 리듬 선법 안에서의 변형은 가사의 운율이나 리가투라의 사용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제 모테트의 발생으로 많은 어려움이 생겨났다. 테너 성부에는 여전히 리듬선법 기보법이 사용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가사가 없다거나 아니면 각 음절이 긴 멜리스마 아래에 펼쳐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테트의 상성부에 기록된 가사는 종종 어떠한 규칙적인 박자에도 맞지않는 경우가 있었다. 더우기 이 가사들은 실레빅하게 즉, 한 음표에 한 음절씩 작곡되었다. 이렇게되면 리가투라는 쓸모가 없엇는데 그것은 리가투라 하나는 한 음절 이상에 해당될 수 없다는 불변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리듬이 요구되었는지 연주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기보된 음의 상대적 시가를 어떻게든 정착시켜야 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여러가지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실제로 사용가능한 체계의 성문화는 콜론의 프랑코의 것으로 추정되는 저서에서 이루어졌다. 1250년경에 씌여진것으로 추정되는「정량음악의 기법 - Ars cantus mensurabilis」에서 하나의 음표와 리가투라 및 쉼표에 관한 규칙이 확립되었다. 이 기보 체계는 14세기초반까지 사용되었으며 16세기 중반까지도 그것의 많은 특징들이 남아있었다. 프랑코의 기보법은 리듬 선법의 기보법과 같이 3분할법에 근거를 두고있었다.


음표는 네 종류가 있었다. 즉, 롱가 두플렉스(longa duplex - 두배의 롱가) ■■ㅣ. 롱가(longa - 긴) ■ㅣ. 브레비스(brevis - 짧은) ■, 세미 브레비스(semibrevis - 브레비스보다 짧은 , 브레비스의 반은 아님) ◆이다. 기본적인 시간 단위인 템푸스(tempus - 복수는 tempora)는 브레비스였다. 롱가 두플렉스는 항상 롱가 두 개의 음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롱가는 완전(3템포라) 혹은 불완전(2템포라)이었다. 브레비스는 대개 하나의 템푸스를 가지고있었으나 어떤 일정 조건하에서는 두 개를 가졌다. 이 경우 이것은 '변화된 브레비스(altered brevis)'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세미 브레비스는 소(小) 세미 브레비스(템푸스의 1/3이거나 대(大)세미 브레비스의(템푸스의 2/3)였다. 세 개의 템포라는 오늘날의 3박에 해당하는 '완전형(perfection)'을 구성하였다. 이런 체계에서는 마디줄(barline)을 가로지르는 붙임줄이 있을 수 없었다. 한 패턴은 완전형 내에서 완성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롱가와 브레비스의 관계를 규정하는 주요 원칙들이 아래에 제시되어 있다. 완전 롱가가 점 2분음표로 기보되어 있다.

 

 

                                                ■ 롱가 브레비스(longa brev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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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에 준하는 원칙이 브레비스와 세미브레비스와의 관계도 규정하였다. 이와 함께 쉼표를 표시하는 기호와 리가투라에서 롱가, 브레비스, 그리고 세미브레비스, 같은 음표를 어떻게 알아볼것인가에 대한 규칙이 확립되었다. 프랑코의 체계에서는 브레비스가 세미브레비스로 나뉠 때 세 개를 넘지못하였다. 페트루스 드 크루제가 4개나 그 이상의 음들이 하나의 브레비스 음가 내에서 노래되는 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가사의 음절들에 대해 필요한 만큼의 세미 브레비스를 썼으며 점으로 이러한 것들의 구분을 표시하였다. 이리하여 세미브레비스보다 짧은 음가가 13세기말에는 실제로 사용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에는 그것들을 표시할 특정한 음표가 없었다. 물론 결국에는 이러한 4개 이상의 세미브레비스 그룹을 조직하는 적당한 기보법과 함께 확립되었다. 13세기의 모테트 양식이 발전하자 또 하나의 기보상의 변화가 생겨났다. 가장 초기의 모테트는 그것의 원천이었던 클라우술라처럼 총보(score)로 씌여졌다. 상성부들이 더 긴 가사를 갖게되고 각 음절이 분리된 음표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작곡가들과 사보가들은 곧 이러한 성부들이 테너 테너 성부보다 훨씬 넓은 지면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테너는 음표수가 더 적고 멜리스마적이므로 리가투라의 압축된 리듬 선법 기보법으로 기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부를 총보에 기록하면 테너 보표에 여백이 많이 생겨서 비싼 양피지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예3.11참조)
서로 다른 가사로 부려졌던 상성부들은 자연히 분리되어 기록되었다. 그리하여 3성부 모테트에서 트리플룸과 모테투스는 마주보는 페이지나 같은 페이지에 분리된 난에 기록하게 되었고 테너는 아랫부분에 가로로 펼쳐있는 단일보표에 기록되었다. 이렇게 같은 페이지나 마주보는 페이지에 성부를 배열하는 법을 성가대악보형(choirbook format)이라 하며 1230년부터 16세기까지 다성악곡을 기보하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 호케투스(Hocket) ■

 

호케투스(Hocket) : '호케투스'라는 말은 형식보다는 일종의 기법을 지칭하는 말이다.호케투스에서는 선율의 흐름이 쉼표의 삽입으로 끊어지고 이 빠진 음들은 다른 성부에서 제시되어 선율이 여러 성부로 분배된다. 그 결과 떨꾹질과 같은 효과가 나며 '호케투스'라는 용어 자체도 같은 의미를 지닌 라틴어 'oche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호케투스의 악구는 종종 13세기 후기의 세속적 콘둑투스와 모테트에서 나타나며 14세기 초기 작품에는 더욱 자주 나타난다. 호케투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악곡들 자체를 호케투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악곡들은 성악일때도 기악일때도 있었다.기악 호케투스일 경우에는 주로 빠른 템포가 쓰였다. 실제로 이론가들은 템포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느린 템포 - 트리플룸의 브레비스가 다수의 더 짧은 음표로 세분되는 모테트의 템포(페트루스 양식의 모테트), 중간 템포(프랑코 양식의 모테트), 그리고 호케투스의 빠른 템포 등이 그것이다.

 

 

                                               ■ 요약 ■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말까지의 시기는 음악사상 독립된 시기로 볼수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Ars antiqua-옛기술' 혹은 작곡법이라는 의미로 현대의 학자들이 14세기의 'Ars nova' 즉, '새로운 기법'과 대조하여 이렇게 불렀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주로 다성음악의 급진적 성장과 다성음악의 세 가지 유형의 생성이 주목할 만하다. 1250년경까지의 노트르담 악파 시기의 오르가눔과 콘둑투스, 그리고 13세기 후반기의 모테트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150년 동안 모든 서유럽의 다성음악은 프랑스 작곡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주요한 기술적 성과는 리듬 선법 체계를 집대성하고  정량된 리듬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기보법을 고안한 것이었다. 이 두가지는 모두 작곡기법의 분명한 이론적 원리가 확립되고 작곡가에게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방법에 대한 더 많은 통제력이 주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예증이다. 음악에 대한 시대 정신은 객관적이었다. 작고가들은 견고한 형식성의 구조 안에서 음악의 모든 요소들이 짜임새있는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였다. 이것은 음악의 모든 본질적 특징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는 이상이었다. 즉 박의 3분할을 비롯한 리듬선법 체계에의 집착 작곡의 기초로서 '성가'에 의존하는것, 음역을 신중히 한정시키는것, 매우 선적인 텍스쳐, 5도와 8도의 초보적인 화성어휘 그리고 관능적인 매력에의 경시 등이다.
13세기 초기에는 실질적으로 모두 다성음악이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당세기말에는 종교적 음악형식과 세속적 음악형식 간의 명확한 구분은 아직 없었지만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가사 모두에 다성음악이 작곡되고있었다. 다성음악 형식의 하나인 13세기 후기의 모테트는 그 당시 문화생활을 반영하는 소우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평성가에 기초를 둔 고정된 형식의 형 안에, 사랑의 노래와 무용선율, 대중적인 반복구 그리고 종교적 찬미가 등 잡다한 모든 요소를 간직하고있는 모테트의 구조는, 견고한 신학적 체제 안에 세속적 이념과 종교적 이념의 세계를 포함하며 조직하고있는 단테의「신곡」의 구조와 비견된다. 그렇지만 13세기말에는 교묘하게 폐쇄되어있던 이 중세의 세계도 해체되기 시작하여 그 내적 결합의 긴밀성과 사건들을 지배하는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해체의 조짐은 모테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즉, 압도적이던 리듬 선법 체제가 서서히 그 세력을 잃어갔으며 성가의 테너는 단순히 형식적 기능을 하는 상태로 격하되었고 화려한 트리플룸이 격상하여 아랫성부들의 반주 위에 불리우는 독창성부의 역할을 맡게되었다. 13세기 후반의 음악은 낡고 구식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을 사용하는 음악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어 새로운 음악 형식과 작곡 방법에 대한 길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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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urtesy : Peter's Photo Odyss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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