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전기바로크(2)

미뉴엣♡ 2015. 7. 11. 06:13
♡ Early Baroque(II) ♡    2009/09/0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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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바로크 시대의 음악 ★●

 

 

                                        ■ 교 회 음 악 ■

 

 

종교 음악은 원래 보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세속 음악과 마찬가지로 즉시 그리고 거의 같은 정도로 16세기 후기와 17세기 초의 변혁의 영향을 받았다. 모노디, 통주저음 , 그리고 '콘체르타토' 양식의 종교적인 내용의 가사에 적용되었다. 물론 새로운 양식에 대한 반발도 조금 있었으며 실제로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팔레스트리나식의 르네상스적인 다성음악을 결코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17세기 중기 전만 하더라도 '팔레스트나'는 보수적인 교회양식의 최고 모델이었다. 모든 작곡가들은 팔레스트리나 작법에 기초한 대위법을 작곡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을 구양식(stile antico)이라불렀다. 그래서 17세기 동안에는 두가지 구별되는 양식, 하나는 보수적(stile antico)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stile moderno)양식이 서로 대립되고 있었다. 한 작곡가가 이런 두가지 양식을 사용하기도 했고 때론 한 작품안에 이 두 양식이 공존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몬테베르디는 '스틸레 안티코'나 '스틸레 모데르노' 중 어떤 양식을 이용하든지 똑같은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양식은 바소콘티누오가 종종 덧붙여지고 리듬이 더 규칙적으로 되고 옛 선법이 장단 조성으로 바뀌는등 점차 새롭게 바뀌었다. 요한 요제프 푹스(Johan Joseph Fux 1660-1741)의 유명한 저서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gradus ad Parnassum:파르나수스 산으로의 계단)은 팔레스트리나 풍의 대위법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후 200년 동안 이 관련 과목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교제가되었다.

 

 

                           ■ 그랜드 콘체르토(Grand Concerto) ■

 

그랜드 콘체르토 : 보수적인 로마식 대위법은 영구와 교육을 위해서는 더할나위 없이 값진 것이었지만 17세기 초기의 실제 악곡에서는 가브리엘리와 베네치아 악파에서 유래한 그랜드 콘체르토만큼 중요하지 못했다. 이것은 때로 아주 거대한 규모로 작곡되었다.. 이 당시 작곡가중에는 대단위 가수와 연주가들을 위해서 종교음악을 쓴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이 양식의 대가이며 17세기 카톨릭 교회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오라치오 베네볼리(Orazio Benevoli 1605-72)였다. 1628년 잘츠부르그 대성당 축성식을 위해서 쓴 그의 축제 미사곡은 독창자들과 함께 두개의 8성부 합창을 필요로 하고있다. 각 합창은  세 종류의 서로 다른 기악합주와 결합되어 있으며 자체의 통주저음이 붙어있다. 추가로 제3 통주저음이 합주 전체에 붙어있다. 이 거대한 총보는 53단이나 된다. 1640년대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을 위해 쓴 베네볼리의 그 후 작품들은 다소 지나치게 거대한 잘츠부르크의 미사보다는 한층 더 적절하게 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후기 작품중에는 3-4개 혹은 그 이상의 합창을 위한 시편송 모테트 그리고 미사곡들이 있다.

 

 

                           ■ 소규모 콘체르토(Small Concerto) ■

 

소규모 콘체르토 : 그랜드 콘체르토보다는 소수 성부로된 소규모 콘체르토가 교회의 보통 신도들에게 훨씬 더 친숙했다. 이 때 독창 2중창 3중창이 오르간 콘티누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이 방법을 교회음악에 차용한 최초의 작곡가중 한 사람은 로도비코 비아다나(Lodovoco Viadana 1560-1627)였다. 그는 1602년에 통주저음이 븥은 독창 성부 또는 독창 성부의 다양한 조합을 위한 <100곡의 교회 콘체르토-Cento concerti ecclesiastici>라는 모음곡집을 출판하였다.

 

 

                                ■ 오라토리오(Oratorio) ■

 

오라토리오 : 로마에서 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는 종교 대화극으로 발산되었는데 이러한 악곡은 이야기와 대화 그리고 명상이나 훈계등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는것으로서 보통 무대공연을 목적으로 하는것은 아니었다. 당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작품을 오라토리오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런 작품들이 설교를 듣고 경건한 노래를 부르기 위한 평신도들의 모임을 위한 교회의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오라토리오의 대본은 라틴어(oratorio latino)로 될수도있고 이탈리아어(oratorio volgare)로도 될수있었다. 17세기 중반 오라토리오를 쓴 거장은 로마 출신의 자코모 카리시미(Gicomo carissimi)였다. 카리시미의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인 <예프타-Jephtha>의 내용을 보면 1650년경 작곡된 오라토리오가 어떤것이었는가를 알수있을 것이다. 라틴어로 된 이 작품은 구약성서 사사기 제 11장 29절부터 40절까지 기초로하고 있으며 여기에 다소 알기쉽게 해석을 하고 또 다른 요소를 추가시키고있다. 해설자(스토리쿠스-storicus) 또는 테스토(testo)가 줄거리를 소개한다. 예프타(테너독창)는 다가오는 전쟁에서 하느님이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주기만 한다면 귀향할때 맨 처음 마중나온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그를 바차겠다는 맹세를 한다. 여기까지는 레시터티브이다. 그 후 암몬인들에의한 예프타의 승리가 적절한 모방효과 와함께 합창 독창 아리아 그리고 이중창등의 콘치타토(concitato)양식으로 상세히 묘사된다. 해설자가 레시터티브로 말하는 다음의 장면은 예프타가 승리감에 차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설명한다. 제일 먼저 맞으러나온 그의 딸로서 예프타는 그 결과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딸의 친구들이 즐겁게 노래(독창 아리아 이중창 합창)를 부르며 그를 맞이한다. 그리고나서 예프타와 딸이 레시터티브로 대화를 나눈다 다음의 합창이 예프타의 딸이 다가오는 자신의 때아닌 죽음을 한탄하기 위하여 친구들과 함께 산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말한다. 그후의 에프타의 딸이 애가를 부르는것을 그리스 비극의 코모스(kommos)처럼 합창이 응답한다.

 

 

                               ■ 루터파 음악의 새로운 양식 ■

 

루터파 음악의 새로운 양식 :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의 여러 카톨릭계 도시에서는 바로크시기의 종교음악이 완전히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고있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특히 뮌헨 잘츠부르크 프라하 그리고 비엔나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루터파의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 활약하던 작곡가들은 17세기 초부터 모노디와 콘체르타토 의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합창 선율을 선율 소재로 이용하기도했지만 전통적인 선율과는 관계없이 작곡할 때도 있었다. 스틸레 모데르노로 이러한 작품을 쓰는 동시에 루터파 작곡가들은 성경적인 시구를 기초로 하면서도 합창선율은 사용하지않는 모테트와 르네상스적인 합창 모테트를 얼마 동안 작곡해왔다. 하슬러와 프레토리우스 그리고 이밖에 17세기 초기 작곡가들은 그랜드 콘체르토 미디엄으로 많은 모테트를 작곡했다. 이 사실은 독일의 음악가들이 베네치아 악파를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것이다. 심지어 이탈리아 마드리갈은 쉬츠의<Cantiones Sacrae>와 요한 헤르만 샤인(Johan Herman Schein1586-1630)의 <Israelsbrunnelein>에서 입증된 대로 독일 교회음악에서 소위 성스러운 내세라 불려질수있는 것을 즐겼다.

 

 

                     ■ 하이리히 쉬츠(Heinrich Schutz 1585-1672) ■

 

하인리히 쉬츠 :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 1585-1672)는 17세기 중기의 가장 유명한 독일 작곡가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쉬츠는 베네치아로 보내졋다. 거기서 그는 1609년부터 1612년 까지 조반니 가브리엘리 밑에서 음악공부를 했고 5성부 이탈리아 마드리갈곡집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그의 첫 출판물이었다. 1617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쉬츠는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코펜하겐의 궁중지휘자로서 수년을 지낸것을 제외하고는 드레스덴의 작센지방에서 전체후(역주 : 신성로마제국 교황 선출권을 가진 귀족..)의 교회 악장직을 맡고있었다. 그는 1628년에 베네치아에 다시가서 이탈리아 음악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쉬츠는 독립된 기악곡은 쓰지않았다. 그는 다수의 발레와 그밖의 무대용 작품과 아울러 최초의 독일 오페라를 작곡하였다고 알려져있으나 그 작품들은 유실되어 버리고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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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리히 쉬츠(Heinrich Schutz) - 「Ego dormio」●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있는것은 거의 모두가 교회음악 분야에 국한되어있으며 현재 보존하고 있는 1619년부터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종류와 수는 대단히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한것은 시편의 독일어 역본에 간단한 4성부 화성을 붙인것이다. (1628)시편을 작곡하는데 있어서 켈빈파의 단순함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신성가곡집 - Cantiones sacrae 1625>의 라틴어 모테트이다.. 이 모테트에서 카톨릭대위법 양식은 진귀한 화성 그리고 <나는 잠들고 내 마음은 깨어있도다 - Ego dormio et cor meum vigilar>의 개시부에서 잠들고 깨어난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같은 마드리갈에서 유래하는 특징등으로 인하여 활기있게 만들어지고 있다. 베네치아악파의 장엄함과 잩은 색채는 쉬츠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면 다성합창과 독창 그리고 콘체르타토 악기를 위한 <다윗 시편곡집-Psalmen Davids 1619> 에서는 그랜드 콘체르토의 웅장하고 다채로운 음향과 독일어 가사의 섬세한 처리가 조합되어있다. 실제로 독일양식과 이탈리아양식의 결합은 16세기말경에 하슬러와 그밖의 다른 작곡가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것을 쉬츠가 완성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완전히 발전된 루터파의 바로크양식 가운데 중요한 한가지 요소가 결핍되어있다. 그는 코랄의 가사를 많이 사용했으면서도 전통적인 코랄 선율을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1636년부터 1639년까지 전쟁으로 인하여 불행하게도 선제후의 예배당의 규모가 축소되었을때 쉬츠는 한명내지 다섯명의 독창자 성부와 오르간 반주를 위한 모테트집인<작은 종교적 콘체르토곡집-Kleine geistliche Konzerte>을 출판하였다. 1636년에는 통주저음 반주가 붙은 여러가지 조합의 독창과 합창을 위한 장송음악(쉬츠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군주의 장례음악)을 작곡햇고 쉬츠의 콘체르타토모테트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1629년과 1647년 그리고 1650년 3부로 나뉘어 출판된 <신성교향곡집-Symphoniae Sacrae)이다. 이 중에서 1부와 2부는 통주저음이 붙은 최다 5성부나 6성부 까지의 성악과 악기를 갖가지로 조합한 작은 합주용이다. 1629년에 출판된 <신성교향곡집>은 몬테베르디와 그란디의 음악적 영향력을 보여주고있다. 이 교향곡집에 나오는 <오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O quam tu pulchra es>는 그란디의 작곡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가지고있다. 그러나 이곡이 그란디의 악곡과 동일한 요소 - 레시터티브, 아리아, 독창, 마드리갈 양식등으로 구성되어 있다하더라도 이곡은 전혀 다르게 배치하고있다. 쉬츠는 사랑받는 여인에게 '오 그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돈호법을 사용한 귀절을 3박자의 아리아양식으로된 일종의 리토르넬로로서 두개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후렴구로 작곡하였다 반면 그녀의 신체 각 부분은 레시터티브 아리오소 또는 마드리갈 양식으로 찬미된다. 마드리갈 부분은 서술적 표현이 풍부하여 레시터티브는 쉬츠가 그의 베네치아 동료들의 대담한 불협화음을 얼마나 자기것으로 소화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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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인리히 쉬츠(1585-1672):「O quam tu pulchra 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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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악(Instrument Music) ■

 

기악도 레시터티브 아리아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바소콘티누오 관습보다는 영향을 덜받았다. 독주악기를 위한 소나타에서 특히 성악의 영향을 볼수있으며 고음악기에 붙는 건반악기 반주에 바소콘티누오 짜임새가 쉽게 적용되었다. 17세기에 주목을 받게되는 바이올린은 자연적으로 독창성부를 모방하려하였으며 독창과 이중창 기법을 흡수하게 되었다. 17세기 전반기의 기악은 양과 질에 있어서서서히 성악과 동일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표준적인 형식은 아직 확립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명칭도 역시 혼돈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작곡 형식에서 몇가지의 기본적인 수법들을 이 시대의 기악에서 구분해볼수가 있을것이다.


1.푸가형 : 계속적인(즉 부분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모방 대위법에 의한 작품 리체르카레 판타지아 팬시 카프리치오 푸가 메르세트 그리고 다른 명칭들로 불리었다.
2.칸초나형 : 비연속적인(즉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모방 대위법에 의한 작품으로 다른 양식과 혼합될때도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17세기 중엽에 교회소나타(sonata da chiesa)로 대치된다.
3.기존 선율이나 베이스에 기초를 둔 작품 파르티타, 파사칼리아, 샤콘, 코랄, 파르티타, 그리고 코랄 전주곡이 여기에 속한다.
4.다소 양식화된 무용리듬에 의한 무용곡과 기타 작품들로 서로 별 연관없이 나열되기도 하고 또는 모음곡 안에 한층 밀접하게 결합되기도한다.
5.독주 건반악기나 류트를 위한 즉흥양식에 의한 작품 : 토카타, 판타지아, 전주곡.. 이러한 분류는 복잡한 기악분야를 파악하기 위한 소개로서 유익하다. 그러나 이 분류가 철저하거나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어떤 주제를 변주하는 수법은 특별히 변주곡이라는 형태의 악곡에서 만이 아니라 리체르카레 칸초나 짝을 이룬 무용곡들이나 무용 모음곡에서도 발견된다..토카타에는 짧은 푸가풍의 부분이 포함될수도 있고 칸초나는 즉흥양식으로 된 간주곡을 가질수도있다. 요컨대 갖가지 형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합되어 있다.

 

 

                                  ■ 리체르카레(Ricercar) ■ 

 

리체르카레 : 17세기 리체르카레는 오르간이나 클라비어를 위한 매우 짧고도 진지한 악곡으로서 하나의 주제가 모방으로 계속 발전되는것이다. 그 한 예를 1608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오르간 주자로 일하던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의 <크레도 후의 리체르카레-Ricerccar dopoil credo에서 볼수있다. 프레스코발디는 이 작품을 교회 예배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오르간곡집<음악의 꽃-Fiorimusicali>에 실어 1635년에 출판하였다. 이 리체르카레는 <복되신 동정녀 축일을 위한 미사곡-Missa della madonna>(Liber usualis P.40)의 한 부분이다. 제목이 말하듯 이 곡은  크레도 뒤에 연주되도록 되어있었다. 이 작품은 프레스코발디의 오르간 음악의 특징인 고요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반음계적인 선율선을 기술적으로 처리하고 또 화음의 불협화음을 교묘하게 바꿔가고잇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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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 - Ricercar dopo il Credo ●

 

 

                                     ■ 판타지아(Fantasia) ■

 

판타지아 : 단순한 리체르카레보다 규모가 크고 한층 복잡한 형식구조를 가지고있는것은 흔히 판타지아라불리는 17세기 초의 건반악기 작품이다. 이 시기의 지도적인 판타지아 작곡가로는 암스테르담 오르간 주자인 얀 피에테르죤 스벨링크(Jan Pieterszoon Sweelink 1562-1621)와 그의 독일 출신 제자인 할레의 사무엘 사이트(Samuel Scheidt1587-1654)와 함부르크의 하인리히 샤이테만등이 있다. 얀 피에테르죤 스벨링크 'Fantasia a 4' 이 판타지아는 스벨링크의 이 장르의 작품중 아주 전형적인것이다. 5도 아래로 조옮김 된 제3선법의 후가풍의 제시부가 나온후 주제는 선율적으로는 비교적 변화가 없지만 리듬면에서는 간간히확대 또는 축소되면서 진행된다. 이 주제는 계속되는 여러부분에서 다른 대주제와 토카타 풍 음형과 함께 조합된다. 비록 임시표와 반음계적인 진행이 많기는 하지만 음악은 결코 정해진 선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흥연주 형식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그 음악의 기능은 어떤 다른 음악을 준비하기 위하여 선법이나 조를 정하고 탐사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리체르카레-판타지아-팬시-카프리치오-소나타-신포니아 그리고 칸초나 같은 명칭은 17세기 초의 다성 기악곡에 구분없이 붙여졌다. 그러나 작곡가들에게 각각은 무시될수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존중되던 전통과 전례의 표현이었다. 장르라는 개념은 17세기 초에 아주 강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저서들 즉 아타나시우스 키르헤의「Musurgia universalis」(1650)와 미하엘 프레토리우스의「Syntagma musici,Part3」(1618)에 잘 나타나있다. 일반적으로 리체르카레와 판타지아는 지속적인 레가토의 성격을 지닌 란 개 도는 몇 개의 주제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판타지아는 리체르카레보다 더 빌려온 주제와 복잡한 기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수있다. 이러한 곡에서는 푸가에서처럼 주제를 계속적인 모방 대위법으로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푸가라는 말은 17세기 초 독일에서 이런 종류의 작품을 일컬을때 사용하던 명칭이었다. 그리고 킨초나는 한층 더 발랄하고 리드미컬한 선율소재를 가지고있어서 작곡가들은 이 소재의 구분을 여러부분으로 나누어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이것이 프랑스 샹송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올을 위한 콘소트(합주)음악은 17세기초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알폰소 페라보스코' 2세와 '존 코프라리오의 작품이 유명하다. 17세기 중엽 이분야의 주요한 작곡가 존 젠킨스(1592-1678)의 팬시에는 다양한 기법이 쓰였다. 비올과 오르간을 위한 그의 초기 5성부 대위법적인 팬시들 은 간혹 1개 이상의 주제가 제시되지만 리체르카레같은 선율주제를 가지고있고 칸초나처럼 단락구분이 암시되어있다. 두개의 바이올린과 베이스를 위한 그의 후기의 3성부 팬시들은 가벼운 구조와 선율적인 대조되는 양식의 부분들로 곡을 나눈다는점에서 이탈리아의 트리오 소나타와 비슷하다. 또 다른 작품에서 젠킨스는 모방 대위법에 의한 도입부 뒤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무용곡이나 에어가 계속되는 작품에 '팬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있다. 17세기초 영국 실내악의 중요한 형식인 통주저음이 붙지 않은 현을 위한 대위법적 '판타지아'는 왕정복고 이후에도 계발되었다. 뒤를 이은 중요한 매슈 록(Matthew Locke 1621-77) 핸리 퍼셀(Henryy Percell 1659-95)이 잇었는데 1680년경 헨리 퍼셀이 작곡한 비올을 위한 판타지아들은 이 형식으로 씌어진 최후의 중요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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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초나(Canzona) ■

 

칸초나 : 17세기 초에는 칸초나를 작곡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한 유형은 여러개의 대조적인 부분 - 각 부분은 성악 샹송과 매우 비슷하게 서로 다른 주제의 푸가적인 모방 위에 이루어진다 - 을 만들고 각 부분에 카덴차풍의 플러리시(flourish : 연주자에 의해 덧붙여지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악절)을 넣어서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은 변주 칸초나라 불리는 예9.8에 예시된 조반니 마리아 트라바치(Giovanni Maria Trabaci 1575-1647)의 건반악기용 칸초나에서처럼 단일주제를 계속되는 여러부분 속에서 변형하여 사용한다. 이와 비슷한 구조는 프레스코발디와 그의 독일인 제자 비엔나의 오르간 주자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Johan Jakob Froberger 1616-67)의 많은 건반악기를 위한 칸초나에서 사용하고있다.. 그러나 몇몇 건반악기를 위한 칸초나와 대부분의 합주 칸초나들은 변주기법을 이용하지 않고 주제가 서로 관계없는 몇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때로는 여러개의 몇 마디 정도의 짧은 부분의 짜맞춘듯한..때로는 수가 적으면서도 길이가 보다 긴부분으로 이루어질때도 있다. 한 또는 둘이상의 부분이 원형 그대로 반복되거나 삽입되는 소재 뒤에서 변주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통일감을 주는 요소로서 역할을 한다. 타르퀴니오 메롤라(Tarquio Merula 1594-1665)는 이러한 합주 칸초나를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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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반니 마리아 트라비치(1575-1647)-Keyboard Canzona ●

 

 

                                         ■ 소나타(Sonata) ■

 

소나타 : 메롤라 자신은 이런 작품을 칸초나라고 불렀으나 그 후의 작곡가들은 아마 소나타라고 불렀을것이다. 17세기 초 기악작품에 대한 모든 명칭중에서 가장 모호한 이 용어는 점차로 칸초나와 비슷한 형을 하고있으면서도 특별한 특징을 지니고있는 악곡을 의미하게 되었다. 17세기 초에 소나타라고 부르던 작품들은 보통 통주저음이 붙어있는 한 두개의 선율악기(보통 바이올린)를 위해서 작곡되었다. 전통적으로 합주 칸초나는 거의 언제나 통주저음 없이도 연주 될수있는 4성부로 작곡되었다. 게다가 소나타는 특정한 악기를 위해 작곡되는 일이 많아 악기의 고유한 가능성을 이용할수가 있었다. 소나타는 다소 자유롭고 표정이 풍부한 성격을 가지는 반면 전형적인 칸초나는 르네상스 전통을 잇는 기악 다성음악의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성질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비아조 마리니(Biagio marini1587-1663)가 쓴 독주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최초의 소나타중 한곡을 동시대의 칸초나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과 유사성이 매우 명확해질것이다. 1629년에 출판된 마리니의 <Sonata per il violino per sonar con duecorde Op.8>은 소위 '기악 모노디'라 불리는 초기 예이다. 이곡은 칸초나처럼 여러개의 대조적인 부분을 지니며 특히 마지막 부분은 칸초나의 요소를 찾아볼수있다. 이것은 카치니의 독창 마드리갈 중의 하나를 연상시키는 매우 정서적인 선율로 시작하나 곧 바이올린 특유의 반복 진행하는 음형으로 바뀐다.(예9.9) 반복해서 나타나는 A음 위에 종지와 환상곡적인 부분과 규칙적인 박자에 의한 부분이 교대되는것이 이 작품에 일정한 통일성을 주고잇지만 원형 그대로 반복되는 부분은 없다.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것은 지속음과 빠른 페시지 트릴 이중음 그리고 아페티(affetti)라는 즉흥적인 장식등을 이용하는 바이올린 특유의 양식이다. 17세기 중엽 칸초나와 소나타가 완전히 합쳐지면서 '소나타'라는 용어를 점차 칸초나 대신 사용하게 된다. 이 중에서 많은 곡들이 교회에서 사용될 목적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을 교회소나타(sonata da chiesa)라고 부르기도했다. 소나타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악기편성을 위해서 작곡되었다. 특히 두개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조합한 형태가 널리 사용되었다. 통주저음 위에 두개의 고음 선율성부(성악, 기악)를 조합하는 짜임새는 17세기 내내 작곡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고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소나타를 보통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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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아조 마리니(Bigio Marini 1587-1663) - Sonata ●

 

 

                                   ■ 변주곡(Variation) ■

 

변주곡 : 17세기엔 많은 기악형식에 변주의 원칙이 스며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제와 변주는 르네상스 후기에 애용되던 건반악기용 악곡형식의 연장이다. 이 변주 원칙이 반영되어있는 작품은 'Aria con variazioni, variations super, Veranderung Uber,differencia'등으로 불리지만 변주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있다. '파르티타'라는 용어는 17세기 초에는변주곡들의 집합을 지칭하는데 자주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에야 무용곡의 집합 또는 무용모음곡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작품에는 여러가지 기법들이 사용되는데 그 중 가장 흔히 사용되던것들은 다음과 같다.

 

1.선율은 그것이 한 성부에서 다른 성부로 옮겨지고 또 각 변주에서 다른 대위벅적인 소재로 둘러쌓인다 하더라도 원형 그대로 즉 전혀 변화되지 않고 반복될 수 있었다. 이 형식으로 된 곡을 간혹 '정선율 변주곡'(cantus firmus variat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곡을 쓴 17세기 주도적인 작곡가로는 영국의 버지널리스트들 이외 '샤이트와 스벨링크'가 있다.


2.선율 자체가 각 변주에서 다르게 장식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율은 최상 성부에서 지속되고 이를 받쳐주는 화성은 크게 변하지않는다. 이러한 변주곡의 대가 중 한 사람이 함부르크의 오르간 주자인  얀 아담스 라인켄(Jan Adams Reinken1623-1722)이었다.


3.곡 전체를 통하여 지속되는 요소가 선율이 아니라 베이스나 화성의 구조인 경우이다. 로마네스카에서처럼 가끔은 최상 성부 선율도 또한 베이스와 결합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보통 장식음형의 사용으로 애매모호해진다. 세번째 방식의 초기 예로는 <Aria di Ruggiero>에 기초해서 작곡한 프레스코발디의 파르티타세트가 있다. 로마네스카처럼 'Ruggiero' 팔행시 노래부르기 위한 에어곡조 이다. 실제로 이 이름은 아리오스토의 <Orlando furioso>중 "Ruggiere qual sempre fui tal sempre voglio" (44편 61절)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절에 붙었던 음악에서 유래하였다. 에어의 베이스와 화성은 분명히 프레스코발디의 12개 파르티타의 고정요소이며 선율은 여섯번째 변주 (Sesta Parte)에서만 두드러진다. 프레스코발디는 아마도 그것의 본래 기능인 시의 낭송을 위한 방식임을 되살려 첫번째 파르테 또는 변주를 레시터티브처럼 매우 서사시적이고 자유롭게 만들었던것 같다. 10번째 파르테는 당김음 기법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북스테후데나 바흐의 파사칼리아에서 되살려지게 된다.(The Ruggiero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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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Ruggiero theme(a) & Frescobaldi-Partie 12 ●

                               sopra l'aria di Ruggiero, Decima parte(b)

 

 

독일의 중부와 북부에서 작곡된 중요한 바로크 오르간용 악곡은 코랄선율레 기초를 둔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품은 17세기 중엽 이후부터 그 수가 늘어났고 형식도 다양하게 작곡되었다. 그러나 이미 스벨링크와 샤이트의 작품에서그 예를 찾아볼수가 있었다. 1624년 샤이트는 <신보표-Tabulatura nova>라는 제목으로 오르간을 위한 대규모 곡집을 출판하였다. 표제에서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것은 독일의 구식 오르간 테블러추어 기보법 대신에 각 성부를 별개의 보표에 기록하는 이탈리아풍의 현대적인 기보법을 채용했기때문이다. <신보표>에 실려있는 주목할만한 코랄 악곡중에는 <나 당신에게 호소한다-Ich ruf zu dir>의 선율에 기초를 둔 판타지아와 다른 코랄 선율을 기초로하는 몇곡의 변주곡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단성성가 선율에 의한 짧은 오르간곡, 세속노래에 의한 다수의 변주곡,기념비적인 여러곡의 판타지아도 포함되어있다. 샤이트의 작품과 교사로서 그의 영향력은 바로크시대 북독일 오르간 음악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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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음악(Dancing Music) ■

 

무용음악 : 무용음악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무용의 리듬이 성악과 기악, 그리고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불문하고 다른 음악에 스며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에를 들면 사라방드의 특유한 리듬과 지그의 생생한 율동이 무용음악이라고 일컬어지지 않는 많은 악곡에 나타난다. 당시 독일에서 된 곡집에 <폴란드 춤-Polnischer Tanz> <폴라카-Polaca>등의 수많은 작품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이 사실은 폴란드 민요에 근거를 둔 음악이 서유럽에 소개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 모음곡(Suite) ■

 

모음곡 : 각각 특정한 분위기와 리듬으로 된 짧은 곡들의 단순한 연속이 아닌 여러 악장으로 된 작품인 모음곡은 독일적인 현상이었다. 주제적 변주의 기법 - 이미 16세기의 pavane-galliard, Tanz-Nachtanz, passamezzo-saltarello 조합에서 확립된 - 은 이제 모음곡의 모든 무용곡으로 확장되었다. 이런 종류의 유기적인 음악적 연결은 1617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요한 헤르만 샤인(Johan Herman Schein의 <음악의 향연-Banchetto musiale>중의 모음곡에 들어있는 춤곡들 사이에 존재한다. 어떤 모음곡들은 한 선율적인 아이디어가 무용이 바뀔때 마다 다른 형식으로 재현되는 방식으로 작곡된것임이 분명하다. 다른 모음곡에서 그 기법이 아주 미묘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신 회상하는 듯 한 선율이 사용된다. 샤인이 머리말에서 언급하듯이 모음곡의 모든 무용곡은 조의 결정과 착상에 훌륭하게 부합되고 있다. 이 <음악의 향연>에는 5성부 모음곡이 20편 포함되어 있으며 각 모음곡은 파두아나(paduana), 갈리아르다(gagliarda), 쿠랑트(courante)그리고 트리플라로 된 알르망드(알레망드의 3박자변주)로 구성된다.. 음악은 위엄있고 귀족적이며 활기찬 리듬, 독창적인 선율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당시 독일의 특징인 풍요함과 화려함, 이탈리아의 우아함과 게르만적인 장중함이 조화를 이루고있다. 모음곡에 포함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립적으로 출판되기도 하는 무용곡에 인트라다(intrada)라는것이 있다. 이것은 명칭이 말하듯이 보통 모음곡의 개시 악장으로 역할을 할수도 있는(간혹 3박자로 작곡되는 예도 있지만) 축제 때의 행진곡과 같은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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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류트와 건반음악 ■

 

프랑스 류트와 건반음악 : 프랑스에서는 17세기 초기의 중기에 실제의 발레음악의 편곡을 거쳐 개별적인 무용곡의 특정적인 어법과 양식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 편곡들은 대부분 합주용으로서가 아니라 독주악기-처음에는 류트 후에는 클라브생(하프시코드 프랑스어) 또는 비올(비올라 다감바의 프랑스어)-용으로 적곡되었다. 앙느몽 고띠에(Ennemond 1757-1651)의 작품 우편마차(La Poste)는 류트용으로 편곡된 한 예이다. 이 곡에서 유래된 지그(Gigue)에서처럼 때때로 류트용 편곡은 류트에 독특한 장식음을 건반악기식으로 바꾸어 하프시코드용으로 편곡되었다. 류트주자는 보통 한번에 한 음씩만 연주하기 때문에 적절한 음들을 갖가지 다른 음들에서 소리나게 함로써 선율과 베이스, 그리고 화성에 윤곽을 암시해주어 각 성부에 내포된 연속성을 듣는 사람의 상상력에 맡겨 보완할 필요가있었다. 이것이 스틸레 브리제 즉 부서진 양식(stile brise)이라는 것이았다. 프랑스의 다른 작곡가들은 이 양식을 영국의 버지널악파에서 유래한 변주 기법의 몇가지 특징과 함께 하프시코드에 적용하였다. 그들은 또 장식음(아그레망)의 사용법을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어떤때는 연주자의 기량에 맡기기도 했다. 프랑스의 류트양식은 건반악기 음악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원천이었을 뿐아니라 17세기 후기와 18세기 초기 프랑스의 모든 작곡양식의 원천이 되기도했다.
17세기 초 프랑스에는 류트를 위한 음악이 크게 유행하여 드니 고띠에(Denis Gautier 1603-72)의 작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신들의 수사학-La Rhetorique des dieux> 라는 제목의 고티에의 필사본 모음집에는 고도로 양식화된 12조(한 가지 선법으로한 조씩)의 무용곡이 들어있다. 각 조는 일정한 규칙없이 추가된 것이 분명한 다른 무용곡들과 함께 알르망드 쿠랑트 그리고 사라방드를 포함하고있다. 그러므로 각 모음곡은 실베로 환상적인 표기가 붙은 성격적인 소품들로 구성되는 작은 선곡집과 같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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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니 고티에(Denis Gautier) :「신들의 이야기 」파반느

                              이 프랑스 테블러추어에서 수평선은 현을 나타내는데

                              가징 이랫줄이 가장 낮은 현이다. 플렛표기는 a b c.. 

                              문자로 표시되어 있다. 현대악보 개념에서 보면 아주

                              재미있고 우아한 그 시대 악보문헌을 만날수있습니다.

                        

  

새로운 건반악기의 어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최초의 작곡가는 쟈크 샹피옹 샹보니에르(Jacques Chanpion de Chambonnieres 1601-72) 그는 프랑스의 클라브생 악파의 선두주자였는데 이 악파의 '루이 쿠프랭'(Louis Couperin 1628-61)과 '장 앙리 당글베르'(Jean Hemri d'Anglebert 1628-91)는 특히 언급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양식은 알르망드와 쿠랑트 그리고 사라방드를 무용 모음곡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확립한 프로베르거의 힘을 빌어 독일에 전해졌다. 프로베르거의 원본 악보에는 느린 무용곡 사라방드로 모음곡이 끝난다. 그러나 1693년 그가 세상을 떠난후에 출판된 모음곡에서는 활기찬 지그로 끝나도록 수정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적인 작품(geure pieces)과 무용리듬이 17세기 중기의 건반악기용 모음곡 융합된 모습은 프로베르거의 가장 유명한 악곡중 하나인 황제 페르디난트 4세의 서거를 그린 애가에 잘 나타나있다. 알르망드의 음형과 리듬으로 되어있는 모음곡의 제 1악장이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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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즉흥적 작품 ■

 

즉흥적 작품 : 16세기 후기 이탈리아 건반악기 악곡에서 이미 예시된 또 다른 종류의 즉흥적인 음악은 프레스코발디의 토카타에서도 나타난다. 베네치아악파의 당당한 객관적인 웅대함과 예술적 묘기와는 대조적으로 프레스코발디의 토카타들은 신중하고 주관적이며 신비스럽고 지속적인 화성과 매우 특별한 독창적인 화성 진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프레스코발디의 또 다른 건반악기용 토카타는 베네치아악파에서 사용되던 유형과 관계를 맺고있다. 이를테면 1637년 첫번째 모음집중 3번째 토카타에서 예술상의 기교가 충분히 발휘될수있고 형식면에서 대단히 풍부한 악상들이 연결되어있다. 이러한 토카타의 갖가지 부분들은 따로따로 연주될수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주자가 원한다면 적당한 종지형에서나 어디서나 곡을 끝낼수도 있다. 프레스코발디는 규칙적인 박자에 속도를 맞출것이 아니라 특히 종지형에서곡의 흐름을 늦추는 등 음악의 감각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해도 좋다고 말하고있다. 프로베르거가 쓴 토카타는 구성상으로는 한층 견고하지만 어법상으로는 그만큼 화려하지못하다.그의 작품에서는 자유롭게 흐르는 즉흥적인 악구가 판타지아같은 대위법적인 양식으로 체계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부분의 틀을 마련해준다. 프로베르거의 작품은 그후 북스테후데의 작품처럼 토카타와 후가가한데 합쳐지거나 유명한 바흐의 <d단조 토카타와 푸가-Toccata and Fugue in Dminor>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토카타와 후가를 짝짓는 형식의 모델이되었다.

 

 

            ■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1583-1643) :『Toccata terza』■

 

이 토카타의 특징은 프레스코발디의 많은 다른 작품들처럼 슂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이 음악은 끊임없이 딸림음과 으뜸음 위의 종지로 향하지만 제일 끝부분이 되기전까지는 항상 종지에서 교묘히 빠져나가거나 목표음을 화성적으로나 리듬적으로 또는 계속되는 성부의 움직임으로 종지를 회피하거나 약하게 만들곤한다. 주목할만한 도착점과 바로 이어지는 시발점은 5마디(dominant major), 8마디(dominant minor), 13마디(tonic major), 17마디(tonic minor), 26마디(tonic minor)와 30마디(tonic minor)이다. 양식상의 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것을 느낄수있다. 처음에는 레시터티브와 비슷한 들쭉날쭉한 선율선과 신경질적인 리듬이 나온다. 5마디에는 베이스의 계속진행 위에 계류음의 연속으로 된 찗은 아리오소 페시지가 있는데 이것은 모방악구로 이끌어진다(8-11마디). 토카타의 나머지 부분은 양손이 교대로 한 손은 스케일과 돈꾸밈음(turns)을 다른 한 손은 화음을 연주하거나 손가락에 알맞는 짧은 음형을 서로 주고받는다. 딸림음과 음뜸음의 강조는 이 작품의 목적이 미사에서 뒤따르는 음악을 위해 주음을 설정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 정치적 혼돈에서 평화의 시대로 ■

 

17세기 전반기 동안 유럽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한 상태는 당시 유럽의 음악상태와 어느정도 병행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30년 전쟁, 영국에서의 내란,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프롱드의 동란,등 일련의 시건은 마치 음악의 신구수법 사이에 놓여진 갈등과 초기 오페라와 칸타타가 가지는 실험적인 성격 그리고 오페라 작곡과 기악작곡에서의 용어의 혼란등을 반영하는것같이 생각된다. 웨스트 팔리아조약, 찰스 2세의 왕정복고, 그리고 루이 14세의 즉위는 비료적 안정된 정치적 상황, 그리고 17세기 후반의 눈부신 과학적 학문적 발달을 향한 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널리 파급된 질서에 대한 이상은 음악의 영역에서도 그 이전 시대가 발견해 놓은 것들을 종합하여 비교적 고정된 양식과 형식으로 확립하는 역할을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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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를라모 프레스코발디 : T O C C A T A ■

                                      

                                              ((Plays by Rostropovich & Tach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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