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후기바로크(2)

미뉴엣♡ 2015. 7. 11. 05:01

               ●★ Corelli:Sonate for Violin e Basso Continuo in D ★●

 

                                         『 L a F o l l i a 』

 

                            ((Plays by Jordi Savall & the Members))

 

  

                                 ■ 후기 바로크시대 기악음악

                                     (이탈리아 바로크실내악)

 

  

이탈리아의 실내악 : 이시기의 이탈리아 실내악의 가장 중요한 악파는 마우리치오 가차티(Maurizio Cazzati)가 악장을 지낸바 있는 볼로냐의 성 페트로니오 성당을 중심으로 하고있었다. 1670년에 출판된 카차티의 독주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la Pellicana>는 다음과 같은 악장의 배열을 취하고 있다. (1) 알레그로, 12/8박자, 지그풍으로 (allagia, 라르고에 비바체-Largo e vivace라는 이상한 템포 기호를 가지고 있다), 모방양식 (2) 그라베, 4/4박자, 5도와 4도 카논풍의 근접모방으로 이루어짐 (3) 프레스토, 4/4박자(♪=♩), 모방적으로 처리되고있는 뚜렷한 리듬의 주제 (4) 프레스티시모, 3/8박자(♩=♩.), 역시 모방적이면서도 앞부분의 악장들보다 구성이 자유로우며 마지막 종지에는 확대된다. 이러한 네 개 악장의 주제 사이에는 희미한 유사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카차티는 독주 소나타를 쓴 이전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이나 동시대의 독일 작곡가들과는 달리 연주자의 기교를 자랑해 보이거나 바이올린에 의한 어떤 특별한 속임수같은 효과를 이용하는 것을 피하고있다. 그의 신중하고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볼로냐악파 전체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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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lo Crelli 1653-1713) ■

 

아르칸젤로 코렐리 ; 17세기의 음악예술이 가지는 고전적인 면을 완벽히 보여주는 예는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lo Corelli 1653-1713)의 바이올린 소나타이다. 코렐리는 작곡가로서도 그리고 연주자로서도 유명했다.그는 볼로냐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볼로냐악파 거장들의 기법을 완전히 몸에 익혔다. 1671년 이후 그는 대부분의 생애를 로마에서 보냈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다음과 같다..● Op.1 트리오 소나타 12곡(교회소나타) 초판 1681년 - ● Op.2 실내 트리오 소나타 11곡, 샤콘느 1곡 1685년 - ● Op.3 트리오 소나타 12곡, 1689년 - ● Op.4 실내 트리오 소나타 12곡, 1695년 - ☆ Op.5 독주 소나타 12곡(교회 소나타 6곡, 실내 소나타 5곡, 변주곡 1곡) 1700년 - ● Op.6 콘체르토 그로소 12곡 이 곡은 1714년에 출판되었으나 1700년 이전에 자곡된 듯 하다.그 일부는 1682년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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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cangello Corelli(1653-1713) ●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 :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는 17세기 말 이탈리아 실내악의 최고 업적으로 그의 독주 소나타와 콘체르토는 그 후 50년 이상 계속된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어떠한 성악곡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 당시 이탈리아 작곡가들 중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노래에 대한 민족적인 재능을 육성에 가까운 표정적이고 서정적인 성질을 지닌 바이올린에 옮겨놓았다. 마치 이러한 유사성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코렐리는 트리오 소나타에서 신중한 기술상의 한계를 2개의 바이올린에 두었다. 이를테면 연주자는 제3 포지션 위는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아주 낮은 음들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속도가 빠른 경과구와 어려운 이중음도 피하고 있다. 2개의 바이올린은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되어 선율들은 끊임없이 교차되고 음악이 교대된다. 계류음은 성악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린에서도 효과적이어서 음악에 결정적인 계기를 주기 위해 자주 나타난다..

코렐리가 모든 음악에서 사용한 기본적인 기술상의 수법은 동형진행(sequence)이다. 코렐리는 이러한 구성수법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사용하므로써 오늘날의 청자들에게 인상적일 만큼 선법의 흔적 없이 명확한 조성체계를 이루는 데 공헌했다. 하나의 조에서 온음계적으로 사용되기도하고 5도권에서 하향으로 조바꿈하기도 하는 동형진행은 조성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력한 수단중의 하나이다. 하나의 악장안에서 사용된 코렐리의 조바꿈은 - 딸림조와(단조에서) 관계장조로 조바꿈하는 경우가 제일많다 - 항상 논리적이고 명확하다. 그는 헨델, 비발디, 바흐 그리고 이 밖의 다음세대 작곡가들에 의하여 다듬어지고 확대된 조성구조의 원칙을 확립하였다. 코렐리의 음악은 거의 완전히 온음계적이다. 반음계주의는 사실상 몇 개의 감7도나 가끔 종지에서 음계의 4째음 위에서 6도의 반음이 내려치는 나폴리 6화음에 제한되고 있다. 코렐리의 교회 트리오소나타의 대부분은 당시 칸타타형식인 4개 악장의 배열과 같은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순서로 배열되는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고있다. 이와같은 배열은 17세기말과 18세기초의 다른 작곡가들도 흔히 사용하였다. 그렇기때문에 몇몇 음악사가들은 이것을 바로크 소나타의 표준형이라 보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에는 예외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견해라고 볼 수 있다. 코렐리의 트리오 실내소나타와 독주 실내소나타는 모두 '전주곡(preludio)'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예이다. 그 뒤에는 모음곡에서 고정적으로 쓰이는 두 곡이나 세 곡의 무용곡이 일반적인 순서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후의 지그는 가보트가 대신할 수도 있다. 코렐리의 대부분 트리오 소나타에서 모든 악장이 동일한 조로 되어있다는 것은 17세기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후기 작품에서는 그렇지않다. 다시말해서 장조로 되어잇는 모든 독주 소나타(11곡 중 8곡)에는 관계단조로 된 느린 악장이 하나씩 있으며 모든 콘체르토 그로소에는 대조적인 조로 된 느린 악장이 하나씩 있다.일반적으로 악장들은 주제가 독립되어 있지만 비슷한 주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트리오소나타 Op.3, No.7에 나오는 느린 두개의 악장과 같은 예) 한 악장 안에는 대조적인 주제 즉 '부주제'는 없다. 다음에 계속될 전체적인 음악의 주제는 명확한 종지를 가진 완전한 형태로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 다음에는 동형 진행적인 처리와 근친조로 종지하는 짧은 조바꿈, 그리고 매혹적인 정교한 악구 구성등으로 인하여 이 주제가 계속해서 확대되는 가운데 음악이 전개된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견실하게 전개시킨다든가 혹은 엮어내든가(독일어로 Fortspinnung-실잣는 일이라고 함) 하는 것은 바로크 후기의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것은 후에 고전파에서 주제의 동기들을 발전시킨것과는 달리 원래의 악상에서부터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같은 음악적인 생각들을 부단히 그리고 자유스럽게 흐르게 하는것과 같은것이다. 때때로 코렐리는 이 방법을 앞에 나타났던 어떤 소재의 반복과 결합시키고 있으나 그의 소나타는 고전파의 소나타에서의 완전한 재현부같은 것은 없다. 너무 갑작스런 마침을 피하려는 듯이 한 악장의 마지막구가 두 번 반복되는 경우가 아주많다. 3박자에서 가장 애용되던 리듬의 수법은 헤미올라 종지이다.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에는 두 가지 주요한 유형의 악장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반복되지 않는 대위법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악구의 길이가 매우 불규칙적이다. 느린 템포에서는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의 1악장에서 자주 이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빠른 템포에서 이런 유형의 악장은 교회 소나타의 최초의 알레그로에서 발견되어지며 실내 소나타의 알르망드에서도 매우 자주 나타나고있다. 이것은 자유푸가의 구조로서 베이스가 제 3의 대위법적인 선으로서 참여한다. 바로크풍 교회소나타의 음악적인 중심이 되고있는 이 알레그로 악장은 모방적인 양식을 사용
하는 점과 주제 자체의 리듬적인 특성과 제시부 다음에 나오는 주제의 변형으로 볼 때 칸초나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몇몇 소나타, 예컨데 퍼셀의 소나타 일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악장은 실제로 '칸초나'라고 불리고있다.) 두 번째 유형의 악장은 호모포니적인 경향으로 치우치며 실내 소나타의 무용곡에서는 다소 더욱 규칙적인 악구 구절법을 지닌 2개의 반복부로 되어있다. 첫번째 유형의 악장은 대위법(contrapuntal)으로 두번째는 호모포니적(homophonic)으로 묘사될수잇지만 '대위법적'이라는 용어와 '호모포니적'이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의 모든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코렐리의 음악적 생각은 본질적으로 대위법적인 것이었지만 통주저음으로 인하여 명확히 규정되는 조성적인 화성구조 안에서의 대위법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대위법적 그리고 호모포니적이라고 구분하는 이 두가지 작법이 그의 작품 안에서 결합되고 있다. 더욱이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의 이론적인 구분이 코렐리에 있어서는 전례적인 면에서 볼 때 확실한 근거가 있는것은 아니다. Op.3 - No.2에서 관찰한 바대로 교회 소나타의 제 3악장은 사라방드의 리듬에 의한 서정적인 칸틸레나같은 것이 될때가 있으며 발랄한 마지막 악장은 반복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모방적인 양식의 지그일 때가 매우 많다. 반대로 코렐리의 많은 실내 소나타의 처음 두 악장에서는 교회 소나타의 진지한 성격이 외형적인 형식과 함께 많이 쓰였다. 실내 소나타의 경우 처음 두 악장에서는 프랑스풍 서곡을 닮은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고집스런 점리듬으로 느리게 진행하는 도입부 뒤에는 모방적인 칸초나풍 알레그로가 뒤따른다. 느린 도입부와 푸가적인 알레그로의 결합 후에 일련의 무용곡이 뒤따르는 형식은 이 장르에 널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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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칸젤로 코렐리 : 트리오 소나타 Op. 3-No.2 ■

 

그라베(Grave)라 표시되어있는 이 소나타의 시작 악장은 본문에 설명한 첫번째 유형의 예이다. 베이스의 진행 위에서 2대의 바이올린이 계류음의 연속속에서 서로 만나기도하고 교차되고 분리된다. 뒤따르는 알레그로는 같은 유형으로 된 빠른 악장으로서 푸가적인 응답이 제2 바이올린에서 반진행으로 나타나는데 반면 베이스는 이것을 정진행으로 받는다. 첫번째 제시부 후에는 주제의 두번째 부분만이 재등장하는데 정진행과 전위된 형태 둘 다로 되어있다. D장조 조성은 A장조 B단조 E장조의 잘 준비된 종지를 질서있게 거쳐 다시 D조로 돌아온다. 아다지오도 같은 유형이지만 사라방드 리듬으로 되어있고 열정적인 오페라 2중창처럼 성부들이 서로 교대로 모방하거나 병진행으로 움직인다. 3박자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박에서는 계류음이 많이 나타난다. Op.3-No.2의 마지막 알레그로는 두 번째 유형으로 된 악장이다. 이것은 단순한 알레그로라는 명칭으로 되어있지만 춤곡 지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춤곡과는 달리 첫번째 알레그로에서처럼 푸가적인 개념으로 되어있고 후반부의 주제는 전반부 주제의 전위로 되어있다.

코렐리의 독주 소나타 : 코렐리의 독주소나타는 비슷한 형태의 트리오소나타와 같은 악장 배열과 성격을 지니고있다. 물론 그의 독주소나타에서는 대조적인 구조를 가진 속도가 빠른 추가악장이 정규적인 두 개의 악장중에서 어느것과 항상 결합되어잇다. 더욱이 첫 알레그로에서 트리오소나타의 3성부 음향이 중음주법이 많이 쓰인 독주 바이올린 성부의 풍요한 텍스쳐로 흉내내어진다. 물론 독주소나타에서는 호모포니적인 악장이 트리오 소나타에 비하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렐리가 가장 현저하게 혁신시킨 것은 바이올린을 기술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비록 3포지션을 넘는것은 결코 없지만 어려운 이중음, 삼중음, 빠른 경과구, 아르페지오, 카덴차, 그리고 '모토 페르페투오(moto perpetuo)'에 의한 에튀드풍의 악장들이다. 이러한 독주 소나타들은 코렐리가 기술면에서 제자들에게 어떠한 것을 바라고 있었는가를 잘 이해시켜주고 있다. 그의 교육방법은 18세기 대부분의 바이올린 악파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음악이 후세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듯이 그의 지도 방법은 후세대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동시대인들 중에 몇명과 많은 후계자들은 화려한 연주기교 (bravura)에서는 그를 능가하고 있었으나 그 악기의 노래하는듯한(cantabile) 성질을 이해하고 음악적인 내용에 어울리지않는 단순한 예술상의 묘기를 보여주는것을 피한 고상한 심미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자가 없었다. (활의 기법에 관한 한) 가장 어려우면서 도 제일 꾸준하게 인기있었던 작품으로는 Op.5의 마지막 곡인 훌륭한 24곡의 변주곡이다. 여기에 사용된 주제는 '폴리아'(혹은 스페인의 폴리-Les Folies d'Espagne등의 명칭으로 알려진)로서 16세기초에 비롯된 포루투갈 기원으로 추정되며 로마네스카와 비슷한 베이스를 가졌으며 로마네스카처럼 17세기에 변주곡의 주제로 사랑을 받던 선율이다. 바로크시대 연주자들은 항상 작곡가가 써놓은 음표에 다른 음표들을 추가해야했다. 예를 들면 통주저음은 연주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독창 및 독주선율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기술적 취향, 그리고 경험에 의하여 장식음들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완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분야에 관한 관습은 나라와 시기에따라서 달랐기 때문에 이미 사라져버린 이러한 모든 연주상의 전통을 현대의 학자들이 복원시킨다는 것은 복잡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작업이다.

 

 

                                    ■ 음악연주의 즉흥성 ■

 

음악연주의 즉흥성 : 선율을 장식하는 일은 중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있다. 장식음들은 언제나 즉흥연주에서부터 시작되었을것이다. 그리고 얼마정도 시간이 흘러간 뒤에는 장식음들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기입되기도하고 혹은 특별한 기호로 지시되기도했지만 (예11.2) 아직까지 그것들은 어떤 자연발생적인 색채를 간직하고있다. 우리는 이 '장식(ornamentation)'이라는 단어를 그릇된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즉, 본질적이 아닌 불필요한 그 무엇을 마음대로 선율에 붙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바로크 시대적인 견해는 아니었다. 장식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꾸미는것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더욱이 보다 더 널리 사용된 장식음 가운데는 - 특히 '트릴과 아포지아투라'같이 - 기보된 음악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우연한 불협화음의 맛을 더해주는 것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기존 선율을 장식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 (1) 기보된 하나 혹은 두개의 음표에 붙여지는 작은 선율형(트릴, 턴, 아포지아투라, 모르텐트 같은것)이러한 것들은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특별한 기호로 표시된다. (2) 음계, 주음, 도약, 아르페지오등을 포함하는 긴 장식음들 이러한것들에 의하여 기보된 선율선의 자유롭고 정교한 페러프레이즈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 긴 장식음(division, diminiution, figuration, graces, 그리고 이 밖의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는)은 느린 선율에 가장 적합했다. 코렐리 독주소나타의 느린 악장에 사용되는 장식음들이 1710년에 출판된 암스테르담의 Estienne Roger의 편집본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것은 보통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장식음이 기입된 이탈리아 악곡에서 볼수있는 몇 가지 예중의 하나이다. Estinne Roger는 이것이 작곡자가 연주한던 그대로라고 주장하는데 이 장식음들이 코렐리 자신의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이것들은 그 당시에 행해지던 선율장식의 일반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바로크 후기에 널리 사용되고 코렐리와 그 동시대인들의 몇몇 기악곡에서 발견되는 다른 종류의 장식음들은 마지막의 6/4(또는 제2전위)화음을 정교하게 확대하는 '카덴차'였다. 코렐리의 독주소나타 Op.5-No3 제2악장 끝에, 카덴차는 고전파시대 낭만주의 시대 협주곡의 길다란 카덴차를 예시해 주는것이다. 이와같이 바로크시대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써놓은 악보에 무엇인가 추가시킬수있는 자유를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악보에서 무엇인가 빼버리거나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사실 가수들의 일시적인 기분에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삭제되거나 다른 아리아로 대치되었다. 프레스코발디는 그의 토카타를 오르간 주자들이 여러 부분으로 나누거나 경우에 따라서 어디에서나 연주를 끝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다..그리고 변주곡, 모음곡, 소나타의 작곡가들은 연주자들이 마음대로 악장들을 생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기악 합주곡집의 표지에는 다른 종류의 악기로 연주해도 좋다는 싸인이 있을 뿐아니라 그 악기의 수량까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작곡론이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의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에 '원한다면'이라는 말을 넣음으로써 한두 개의 바이올린을 추가시켜서 연주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 이탈리아 이외의 합주소나타 ■

 

이탈리아 이외의 합주 소나타 : 이탈리아의 트리오 소나타는 모든 나라의 작곡가들에 의해 모방 또는 응용되었다. 트리오 소나타가 영국의 작곡가인 '존 젠킨스'에게 미친 영향은 이미 살펴보았다. 퍼셀은 1683년과 1697년에 두권의 트리오 소나타 곡집을 출판하면서 당시 유명한 이탈리아의 대가들을 정확하게 모방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는데 그가 사용한 리듬과 선율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게오르크 무파트 <화성적 헌정-Armonico tributo 1682>와 라인켄<음악의 정원-Hortus musicus 1687> 북스테후데(1696), 푹스, 칼다라,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등 여러작곡가들에 의하여 트리오 또는 좀더 큰 규모(악기편성)의 소나타들이 작곡되었다. 푹스와 그라우프너 소나타에는 이탈리아 작곡가들에서 유래된 형식과 양식에 대위법에 대한 독일인의 사랑을 결합한 복잡한 푸가작법의 훌륭한 예들이 몇몇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트리오 소나타중의 최초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쿠프랭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1692년 작곡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도 몇곡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그후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출판되었다. 《여러나라들 : 트리오 작법으로 작곡된 소나드와 심포니 모음곡 - Les Nations Sonades et suites de symphonies en trio 1726》 이라는 표제가 붙은 곡집에는 4곡의 오르드르가 수록되어 있다. 각 오르드르는 여러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회 소나타(sonade)뒤에 모용모음곡(suite de symphonies)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소나드가 코렐리와 다른 이탈리아 적곡가들의 작품에서 분명히 영향은 받고있었지만 그 영행은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있는 선율의 세련미와 장식의 정교한 취향에 의해 시종 독특하다.
쿠푸랭은 륄리와 코렐리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프랑스에서 프랑스음악과 이탈리아음악의 진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있을때 코렐리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자신의 출판물의 제목, 서문 내용등에서 그는 완전한 음악이란 이 두가지 민족적 양식이 결합된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이념에 맞추어 두개의 다른 트리오 모음곡을 썼는데 이 곡들은 <페르나수스 산, 혹은 코렐리 찬가-Parnassus or the Apotheosis of Corelli>와 , 륄리 찬가-Apothesis of Lully>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후자에서 륄리는 파루나수스에서 코렐리와 함께 프랑스 서곡과 뒤따르는 트리오 소나타에서 제1,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것으로 묘사된다. 쿠프랭의 실내음악으로는 이밖에도 하프시코드와 여러가지 악기편성에 의한 12곡의 콩세르(concerts:잘 어울리는 합주라는 의미 이것은 실제로 모음곡이며 콘체르토가 아님)가 있다. 각 콩세르는 프렐류드와 몇 개의 무용곡으로 구성되고있다. 처음의 4곡은 일반적으로 <왕실의 합주곡집-Concerts royaux 1714,1715년 루이 14세 앞에서 연주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져있고 나머지 8곡은 <취미의 융합-les Gouts-reunis>:[{프랑스 이탈리아}양식의 융합(통합)]이라는 제목으로 1724년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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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칸델로 코렐리 소나타 Op.5 - No.3 Adagio(1711) ●

 

 

                                  ■ 독주 소나타(Solo Sonata) ■

 

독주 소나타 : 코렐리 이후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계속해서 트리오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이 시기의 중요한 관심은 점차로 독주 소나타로 향하고있었다.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는 항상 특별한 보잉(bowing)중음주법그리고 모든 종류의 어려운 악구 연주를 실험하는 것에서 가장 적당한 매개체가 되어있었다.1676년 <스케르치-scherzi>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독일의 '요한 야코프 발터'(Johan Jacob Walter 1650-1717)의 12곡의 소나타집은 이러한 여러가지면에서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모든 것을 능가하고있다.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Heinrich Ignazz Pranz Biber)도 마찬가지로 기교적인 연주자였지만 흥미로운 작곡가이기도 하다. 비버는 교회음악과 기악 합주곡들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그의 이름은 주로 1675년 경에 작곡한 15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잘 알려져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 생애의 이야기들을 묵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독창적인 표제음악 작품에서는 특별한 화성을 쉽게 연주하기 위하여 바이올린 현을 독특한 방법으로 조율하는 스코르타투라(scordatura)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있다
발터와 비버는 모두 그들의 소나타에 토카타와 비슷한 광시곡적인 악장이나 부분들을 자주 삽입시켰다. 또 그들의 긴 악장들을 주제와 변주곡의 형식, 또는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작곡하는 예가 많았다. 성서 소나타곡집에 덧붙여져있는 무반주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비버의 파사칼리아는 바흐의 유명한 d단조 샤콘느가 작곡됨에 있어서 중요한 선구적 역할을 한것으로 여겨진다. 비버와 발터 이후 독일의 바이올린 작곡가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악파들의 영향을 받고 그 기초 위에서 국제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코렐리의 가장 영향력있는 제자 한사람인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Francesco Geminiani 1687-1762)는 런던에서 연주대가 작곡가로서 오랜 명성을 지니고있었다. 1751년 그는 런던에서 <바이올린 연주기법 - The Art of Plating on the Violin>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코렐리와 18세기 초 이탈리아 대가들이 가르쳤던 기술과 해석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제미니아니의 독주 소나타와 '콘체르토 그로소'는 코렐리의 양식을 기초로 하고있으며 그것에 이 곡들이 쓰여진 후기시대의 특징들이 혼합되어 있다.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도 마찬가지로 코렐리의 양식에 의존한것이다. 코렐리의 전통은 18세기 초 유명한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인 프란체스코 마리아 베라치니(Francesco maria Veracini 1690-1750) 코렐리의 또 하나의 제자, 피에트로 로카텔리(Peetro Locatelli 1695-1764)의 악곡등에도 남아있었다. 이탈리아의 모든 대 연주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사람은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1692-1770)였다. 그러나 그의 독주 소나타와 콘체르토는 주로 18세기 중엽에 초기 고전파 양식으로 되어있다.. 프랑스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쓴 주요 작곡가는 장 마리 르클레르(Jean Marie Leclair 1697-1764)였다. 그의 음악은 코렐리의 고전적인 순수성에 독특한 프랑스의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 그리고 완전히 명확한 짜임새와 형식에 유려한 품격있는 장식을 결합한듯한 특히 그의 론도 악장은 미적인 매력포인트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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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푸랭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합에 관하여 ■

 

쿠푸랭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식의 결합에 관하여 프랑스의 음악계에서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식이 나뉘어있었다. 나는 예술문화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것이면 작곡가, 나라에 관계없이 존중한다. 30년보다 이전에 파리에 등장한 이탈리아 소나타로 인해 나도 소나타 몇 곡을 작곡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방이기보다는 존경할 만한 륄리나 다른 선조들의 작품들에 대해 잘 못한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러한 중립성의 권리로서 나는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행복한 별 아래서 항해하고 있다. 이탈리아 음악이 우리의 음악보다는 손 위 이므로 이 책 끝 부분에 여러분은 'L'Apotheose de Corelli' 라는 제목이 붙은 그랜드 트리오 소나타를 볼 수 있을것이다. 자기애라는 약한 불꽃으로 인해 내가 이것을 악보에 옮겨놓았다. 언젠가 나의 뮤즈가 보다 뛰어나게 된다면 비견할데 없는 륄리의 양식으로 이러한 곡을 하나 더 써보려고 한다. 물론 륄리는 이런 곡 없이 자신의 작품만으로도 이미 불멸의 명성을 충분히 이룩하였지만 말이다.

 

프랑수아 쿠푸랭「Les gouts - reunis」(파리 1724)의 서문에서 발췌, C. Palesca역, 프랑스어 원문은 앙드레 쉬프너편「Ouevres completes」제 8권에 수록

 

 

                                       ■ 대합주단을 위한 작품 ■

 

대합주단을 위한 작품 : 트리오와 독주악기 편성법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있었지만 바로크시대의 소나타(혹은 다른 명칭의 이와 비슷한 악곡)에 사용되던 유일한 음향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반니 가브리엘리 시대로부터 17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통주저음과 3개 이상의 선율 악기군을 위한 칸초나, 무용모음곡, 소나타 그리고 신포니아가 계속해서 작곡되는 상황에서 이 시기의 베네치아 소나타중에는 동시대의 베네치아 오페라 서곡과 유사한 곡들이 있는데, 볼로냐의 작곡가들과 17세기 후기의 이탈리아 작곡가들도 형식과 양식에 있어서 트리오 소나타와 콘체르토와 비슷한 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을 많이 쓴 바 있다.. 소나타는 독일에서 특히 오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악합주용 모음곡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샤인의 <음악의 향연-Banchetto musicale>이후 이 형식으로 된 작품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곡은(가장 전형적인것은 아니지만) 1670년에 출판된 요한 로젠뮐러(Johan Rosenmuller 1620-84)의 실내 소나타곡집으로 이 곡집에 수록되어있는 11곡의 소나타는 각각 신포니아와 그 뒤에 알르망드 쿠랑트 발로(ballo:4/4박자 로된 짧은 경쾌한 리듬이 강한 악장) 그리고 사라방드로 구성되어있으며 때때로 안트라타나 다른 춤곡이 사이사이에 나타나기도 한다. 악기편성은 5개의 현악기(혹은 다른악기) 통주저음으로 되어있다. 베네치아 오페라서곡(로젠뮐러는 대부분의 생애를 베네체아에서 보냈다)에서 영감을 받은듯한 신포니아들이 가장 주목 할 만하다. 이 곡들은 보통 또는 느린 3박으로 된 장엄하고 웅장한 부분이 대조적인 빠른 부분과 교대된다.
17세기 독일에서는 충실한 음향에 대한 민족적인 편애경향이 일반적인 음악생활의 상황과 결합되어서 합주소나타와 모음곡의 반대중적인 형식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음악은 궁정이나 귀족사이에서 만이 아니라 다수의 중산계급에 의해서도 발전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려고 모이는 시민의 모임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um)'은 다소 공적인 성격을 띤 다른 음악적인 조직과 함께 많은 도시에서 찾아볼수있었던 정규적인 기구였다. 동네 악단들(슈타트파이퍼-Stadtpfeifer), 그리고 루터파 지역에서는 교회 음악가들도 대중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고 어떤곳에서는 코랄이나 소나타(투름소나텐-Turmsonaten)가 매일같이 시회의소(Rathaus)나 교회 탑에서 관악기로 연주되고 있었다. 독일의 음악 전통에는 소박하고 대중에게 직접 전달되는 성질이 있었다. 작곡가들은 비교적 큰 규모의 합주를 선호했고 현악기는 물론 관악기의 음향을 좋아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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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레기움 무지쿰'의 야외 연주회 장면(Jena 대학에서) ●

 

 

                                       ■ 오케스트라 음악 ■

 

오케스트라 음악 : 17세기말에 접어들면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음악 사이에 - 다시 말해서 한 성부를 악기 하나만으로 연주하는 합주음악 사이에 양식상의 차이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7세기 합주곡의 대부분에서는 이 점에관해서 작곡가가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분명치않아 상황에 따라서 선택할수가 있었다. 예를들면 트리오 교회소나타는 2개의 독주 바이올린용으로 작곡된것으로 생각되지만 교회에서는 예배당의 크거나 축제일인 경우에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로 연주된 듯 하다. 반대로 '신포니아'라고 지시되어있거나 혹은 베이스 위에 세개, 네개 혹은 그 이상의 선율성부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실내악이 아닌 오케스트라 규모의 연주자들을 요구하는것은 아니었다. 각 성부들이 보강될 필요가있을 때 17세기의 일반적인 기법은 통주저음에 화음을 연주하는 악기의 수를 증가시키고 소프라노에 더욱 많은 선율악기를 추가하는 방법이었다. 통주저음의 사용과 현악기의 수를 규제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없었다. 물론 오페라극장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있었다. 따라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오페라 서곡은 프랑스 오페라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있던 수많은 무용곡과 함께 항상 특별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생각되고있었기 때문에 실내악 여주보다는 오히려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한 양식으로 작곡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는 파리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륄리의 엄격한 지도아래 그렇게 많은 수의 연주자 그룸으로서 전례없는 기교적 완성의 정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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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케스트라 모음곡 ■

 

오케스트라 모음곡 : 륄리의 독일 출신 작곡가들은 프랑스의 음악양식과 함께 프랑스의 연주규범을 자기나라에 도입했다. 그 결과 새로운 형의 오케스트라 모음곡이 1690년부터 1740년까지 독일에서 유행하였다. 륄리의 발레와 오페라의 무용곡들을 원형으로 삼은 이러한 모음곡의 무용곡은 그 수와 배열순서에 있어서 어떤 표준이 없었다. 이 모음곡은 항상 프랑스 서곡의 형식에 따른 한 쌍의 악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서곡(ouverture)이라는 단어가 곧 모음곡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오케스트라 모음곡을 수록한 초기의 모음곡집 중에는 게오르크 무피트<음악의 헌정 - Florilegium 1695,1698>이 있었다. 이 곡집의 제 2부에는 프랑스의 보잉법과 아그레망의 연주체계, 그리고 이밖의 다른 문제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제공하는 소론이 포하되어있다. 또다른 주요곡집은 JKF 피셔의 <봄의 일기-Journal de Printemps 1695> 이다. 서곡이란 제목의 모음곡은 푹스와 텔레만 그리고 J.S 바흐를 포함한 다른 많은 독일의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작곡되었다.

 

 

                                      ■ 콘체르토(CONCERTO) ■

 

콘체르토 : 17세기의 마지막 20여년 동안에는 '콘체르토(concerto)'라는 새로운 종류의 오케스트라 악곡들이 나타나 1700년 이후 바로크 시대의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기악장르이기도 했다. 콘체르토는 작곡가들로 하여금 바로크 시대의 여러가지 음악적인 발전과정을 잘 결합시킬 수 있게 되어있는 작품으로 즉 콘체르토 미디엄과 대조의 원리, 견고한 베이스와 정서적인 상성부로 구성되는 구조, 장단조의 체계에 기초를 둔 음악조직, 그리고 각각 독립적인 자체완결적인 악장들로부터 길이가 긴 작품을 이루어내는 작법등을 볼 수 있다. 1700년경에는 세기지 종류의 콘체르토가 작곡되고 있다. 그 하나인 오케스트라 콘체르토(콘체르토 신포니아, 콘체르토 리피에노, 또는 콘체르토 아콰트로)는 단순히 여러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작품으로서 그 양식은 제1 바이올린 성부와 베이스를 강조하고 고나타와 신포니아의 특징인 보다 복잡한 대위법적인 구조를 기피하는 것이었다. 이 보다 수가 많고 후대의 발전으로 보아 중요했던 당시의 다른 두 가지 형은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와 '독주 콘체르토(solo concerto)'였다. 이 두가지는 체계적으로 음향의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콘체르토 그로소에는 소규모의 독주악기군이 그리고 독주 콘체르토에서는 단 하나의 악기가 큰 합주의 음향과 대치되고 있었다. 큰 합주란 거의 항상 현악 오케스트라를 말하는것으로 보통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비올로네 및 통주저음으로 나누어지고있다. 독주 악기군도 보통 현악기였다. 이를테면 독주 콘체르토에서는 바이올린, 그리고 콘체르토 그로소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이 사용되었다.(물론 다른 독주 현악기나 관악기가 추가될수도 있었고 혹은 대체될수도 있었다) 콘체르토 그로소는 원래 대규모 합주단 즉, 오케스트라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것은 독주악기군인 '콘체르티노(concertino)' 다시 말해서 little ensemble'에 대한 반대 의미였다. 후에 '콘체르토 그로소'라는 용어는 이런 다양한 악기군들을 사용하는 악곡에 적용되게 되었다. 독주 콘체르토와 콘체르토 그로소에서는 둘다 오케스트라의 전부를 뜻하는 명칭으로 보통 'tutti(all)' 또는 ripieno(full)'를 사용하고 있다.
독주 악기군을 오케스트라 전부와 대조시키는 관습은 위와 같은 콘체르토가 나타나기 오래전부터 도입되어 있었다. 콘체르토 풍의 악기 편성법은 17세기 전체를 통하여 칸초나와 이밖의 다른 기악합주용 작품에서 그 예가 발견된다. 륄리는 그의 오페라에 나오는  몇 곡의 무용곡에 독주 관악기의 3중주를 위한 삽입부(episode)를 첨가시켰다. 독주악기와 총주(tutti) 사이에 짧은 악구들을 서로 교환하게 하는 관습은 17세기 말에 널리 보급되어있었다. 이러한 작법은 서곡형 모음곡들과 교회 칸타타나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나타와 신포니아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콘체르토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것은 특히 베네치아의 볼로냐에서 개발된 한 혹은 둘의 독주 트럼펫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나 소나타였다. 또한 콘체르토의 여러가지 요소들은 때때로 독립된 기악 소나타로서 오페라극장 밖에서 연주되기도한 베네치아 오페라 서곡에서도 발견된다. 오라토리오, 오페라 아리아는 리토르넬로를 주로 연주하는 전체 오케스트라와 독창자와 반주 및 상호작용하는 콘체르티노로 반주되었다.. 콘체르토는 소나타 및 신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성당에서 미사의 서곡으로서 또는 예배의 어떤 부분에서 연주되었다. 성탄절 미사에서는 파스토랄 양식으로 된 임의의 악장 하나를 추가시키는 예가 자주 있었다. 코렐리의 《크리스마스 콘체르토 - Christmas Concerto Op.6 - No.8》는 이러한 파스토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잘 알려져있다. 바로크 후기의 파스토랄 양식에 의한 악장을 보여주는 다른 예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 Christmas Oratorio> 2부 처음에 나오는 신포니아와 헨델의 <메시아-Messiah>중 제1부의 <신포니아 파스토랄레-Sinfonia pastorale>이다. 이 형식의 최초의 예중 하나인 코렐리의 콘체르토 그로소는 독주와 총주의 대조원리를 이용하고있다. 그러나 코렐리는 독주부분과 총주부분 사이에 양식상의 차이점을 두지않았다. 이러한 콘체르토들은 사실상 소악기군과 대악기군으로 나누어지는 교회 소나타나 실내 소나타에 불과하다. 큰 그룹은 작은 그룹을 그대로 되풀이(echo)하거나 종지부분을 강화하거나 구조상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다. 때론 제1바이올린 성부가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후에 발전된 독주 콘체르토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독일 작곡가들이 쓴 최초의 '콘체르토 그로소' 예를 들면 새로운 장르를 로마에서 처음 접했던 게오르크 무파트의 작품(1701)에서도 소나타의 형식과 양식에 의존하고 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많은 콘체르토에서는 소나타가 가지는 여러 특징 중 적어도 한 가지-이를테면 푸가 혹은 푸가와 비슷한 알레그로 - 를 찾아볼 수 있다. 콘체르토 그로소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많은 작곡가(예를 들면 제미니아니)들이본질적인 면에서 이 형식을 콘체르티노가 음악적인 소재들을 동등하게 지니고있는 소나타로 간주하는 코렐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바뀌어진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리듬과 구조 그리고 형식상의 조직에 관한 이념이 비로소 완전히 실현되었던 독주 콘체르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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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오르그 무파트 : 소나타를 콘체르토로 바꾸는것에 대하여 ■

 

"친애하는 독자여러분 : 내가 로마에서 즐겨보았던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운 콘체르토는 나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고 아마도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소나타를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할지도 모르므로 무엇보다도 나는 여러분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1) 소나타는 3개의 악기만으로도 연주될 수 있습니다. 즉, 2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나 베이스비올이 토대가 되는것, (2) 소나타는 4-5개의 악기로 연주될 수 있습니다. (3) 여러분은 소나타를 다양한 음향과 색다른 면이 있는 풀콘체르토(concerto pienie)로 듣고싶으시면 이런 방법으로 3개의 합창단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3개의 바이올린이나 2개의 바이올린 첼로나 비올라 다 감바의 3성부로 구성되고 중복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합주(concertino)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주 될 것입니다. 이 성부들에서 튜티를 의미하는 'T'자가 써있는 곳에서는 두 독주 바이올린과 다른 다수의 바이올린이 더 큰 규모의 합주(concerto grosso)로 중복될 수 있습니다. S자가 써있는 부분은 추가된 악기들은 쉬고 독주로만 연주하는 작은 규모의 합주를 의미합니다. 중간 음역인 비올라는 같이 연주되는 큰 규모의 합주와의 비율에 따라 중복 될 것인데 'S'자가 써있는'곳은 제외되는데 이 부분에서는 중복되지 않고 독주로 연주해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적절한 다양성을 얻을 수 있도록 이 모든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Armonico tributo」(잘츠부르크 1682) DTOe XI/2 Vol22(빈1904) p.118에 있는 이탈리아어 원문 C. Pelisca역.

 

 

                       ■ 주세페 토렐리(Guiseppe Torelli 1658-1709) ■

 

주세페 토렐리 : 세기가 바뀔 무렵 콘체르토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한 작곡가는 주제페 토렐리(Guiseppe Torelli 1658-1709)로서 그는 볼로냐 악파 말기의 지도적인 인물이었다. 중요한 발전의 단계는 6개의 콘체르토 그로소 6곡의 독두 콘체르토 모음집인 토렐리의 Op.8(그의 사후 1709년 출판)에 들어있는 바이올린 콘체르토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은 세개의 악장(빠르게-느리게-빠르게)으로 되어있으며 이 배열방법에 후대 콘체르토 작곡가들이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레그로는 푸가양식으로 되어있는데 반 하여 가운데 악장은 두개의 비슷한 아다지오와 그 사이에 끼어있는 짧은 알레그로로 구성된다. 간결한 리토르넬로에 있는 토렐리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알레그로의 주제는 부드럽게 펼쳐진 독주부분의 바이올린 특유의 음형과 두드러진 대조를 이룬다. 토렐리의 Op.8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알레그로 악장의 형식이다. 각 악장은 리토르넬로로 시작하는데 1개 이상의 동기가 전체 오케스트라로 발전된다. 그 후 독주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보통 튜티(tutti)에 나온 소재와 관련이 없다. 그 후 어떤 교대가 여러번 등장하며 시작 리토르넬로와 실제적으로 동일한 마지막 튜티가 으뜸음으로 나옴으로써 종지가 된다. '리토르넬로'라는 용어는 성악음악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후렴구를 나타낸다. 실제로 형식은 론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콘체르토에서는 처음의 마지막을 제외한 모든 리토르넬로가 다른 조성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다.리토르넬로 구조는 토렐리, 비발디와 동시대 작곡가들의 콘체르토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악장에 전형적이다..그러나콘체르토는 친숙한 음악의 반복과 조성의 다양성 및 안정성을 결합시키고 있다. 전형적인 구조는 'Op.8 - No.8 Finale'에 잘 나타나있다. 콘체르토 분야에서 토렐리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이탈리아의 다른 작곡가들 특히 베네치아 출신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0)와 이탈리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에바리스토 펠리체 달라바코(Evaristo Felice dall'Abasco 1675-1742)에 의해서 확대되었다. 제미니아니와 로카텔리가 쓴 콘체르토 그로소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일반적으로 로카텔리의 독주 콘체르토는 고전파 시대의 콘체르토에서 이 요소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예시하는 고도로 기술적인 악구들을 도입하고있다. 바로크 후기의 이탈리아 콘체르토를 쓴 가장 위대한 대가는 '안토니오 비발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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