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의 근세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 라는 유명한
철학사상을 남긴바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사상-존재론적 명제하에서 현대 문명사회에서의 행해지는 문화행위, 예술문화공연 관련해서 문화경쟁력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데카르트는 그의 존재론에서 '인간 자아 =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자아=생각=존재} 라는
필연적 3위일체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데카르트의 존재론에 비추어서 21세기 현시대의 모든 문화행위들, 콘서트문화 예술공연문화 상황과 현상에
대한 결정론적 논제, '콘서트 - 공연문화 이젠 경쟁력으로 존재한다' 라는 주제와 데카르트 존재론적 가치와 의미를 은유적으로 비교 적용해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듯하다.. 예를 들면 콘서트, 공연문화에서 문화적 경쟁력의 중요성을 데카르트의 자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개념의 존재론의 가치를 모든 공연문화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 때 콘서트를 비롯해서 하나의 공연문화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경쟁력이라는
기본적 문화적 환경조건이 문화생각 - 아이디어의 틀로서 갖추어져야 된다는 문화적 논리이다. 그것은 굳이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유행어를
재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예술문화 존재론-평가론에 있어서 문화경쟁력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18세기 이후 한국음악사회 서양음악도입 역사
210여년 즈음에 하루 진행되는 콘서트 공연의 수량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증가되는 추세, 확산일로에 있다. 그 예를 보면 서울 문화공연장을
비롯해서 지방 공연장에서의 매일 진행되는 콘서트 - 문화공연수는 적어도 하루평균 20-30 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콘서트 수량적
의미보다는 그 콘서트 공연문화 품질에 대해 문화적 촛점을 맞추어야 할 시점이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와 경제는 서양음악도입 역사
만큼이나 획기적인 급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경제성장 - 문화산업국가이다. 그러한 선진 문화 경제대국 G-20국가로서 외형적인 문화경제 발전상에
비교해서 그 문화적인 질은 정비례되지 못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공연, 진행되는 다양한 콘서트 문화공연의 문화적 퀄리티를
보면 질보다 양이 우세하는 양상으로 이런 상황은 양보다 질의 상황으로 전환되어야 보다 바람직한 문화구조, 현상이 아닐까한다. 물론,
콘서트-공연문화의 양적 수량이 증가하면 그것은 문화소비자에겐 그만큼 문화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의미에서 득이 될수있는 - 애써 다다익선
문화환경조건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여러면에서 문화지식 수준이 높아진 문화소비자의 시각에서 문화 과소비 낭비적 폐해를 초래할 것이다. 어쨋든
오늘의 공연문화 수요와 공급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콘서트, 공연문화 그 수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보면 비례적
상황일까 반비례적 상황일까..? 필자가 보기엔 단연 후자쪽이다. 이를테면 콘서트를 비롯해서 문화공연 폭주시대라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가 홍수를 이루는 마당에서 결론은 한 마디로 '풍요속의 빈곤' 이라는 어쩔 수 없는 반어적 비판적 상황으로, 콘서트-공연문화
일방적인 대량 공급이 아닌 문화소비자의 지적, 눈 높이를 맞추는 차별화된 공연기획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현재 문화예술 무대에서 행해지는 공연문화의
문화적 성격, 카테고리의 범위를 보면 무개성, 무개념적인, 모방적인 문화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공연문화 품질적인 문제, 공연문화 비판적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보다 개성, 주제, 경쟁력이 우선 평가되는 콘서트 문화의 품질개선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콘서트 - 공연문화
경쟁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논리로 그만큼 콘서트-공연문화의 프로그램적인 소프트 웨어, 문화지식적인 아이디어의 비중이 중요하다는 의미로서
향후, 콘서트-공연문화의 품질적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콘서트 생존 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으로 콘서트 예술문화공연의 문화
품질적인 경쟁력, 차별화는 아무리강조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콘서트, 공연문화에서 연주자의 기본적인 연주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떤 개성적 플러스 알파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까지 하나의 콘서트, 구성요소, 문화적 퀄리티의 종합적인 평가의
현장으로서, 결과적으로 그것은 과거시대 아날로그 문화시대 어떤 틀에 박힌 공통관습적인 문화구조에서의 평면적 아이템이 아닌 뭔가 다른 어떤 특별한
크리에이티비티 개념의 복합적 문화팩트, 어떤 창의성이 존재되는 콘서트 문화, 공연문화 아이덴터티가 실존하는 문화경쟁력으로, 선명한 공연문화
소프트웨어적 차별화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물론 미래시대로 갈수록 콘서트, 공연예술에 대한 문화적 기대와 욕구는 점점 상승 그래프를
그리는 문화경쟁력 시대에서 현재 진행되는 공연문화의 문화 경쟁력의 업그레이드화가 시급하고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 경쟁력이 존재론
가치로 대두되는 현시대에 한국음악사회에서의 비교적 지속적인 문화경쟁력을 유지해온 콘서트-음악제, 문화적 프로그램이라면 우선 ☆판뮤직 페스티벌 -
PAN MUSIC FESTIVAL ☆KOREAN MUSIC EXPO<대한민국 창작음악 브랜드화> ☆창악회 ☆국제음악제 ☆대관령음악제
☆통영음악제 ☆엄의경-리스트 온리 리사이틀 ☆최영미 프로코피에프시리즈 리사이틀 ☆박수진 베토벤시리즈 리사이틀 ☆박휘암 프랑스 근대음악시리즈
렉쳐콘서트 ☆진은숙 아르스 노바시리즈 콘서트 ☆서울시향 유스오케스트라--정기연주회<부르크너 심포니 No.7> 등이 비교적 문화경쟁력을
갖춘 컨서트군으로 평가된다. 랭크된 12개 프로그램을 보면 콘서트 역사와 전통적으로 한국음악사회 연주계, 문화경쟁력면에서 A 클라스 레벨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음악사회 연주계 대표적인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그것은 오늘의 주제 "콘서트 예술공연문화 이제는 문화경쟁력으로 존재한다" 라는 타이틀에
보다 긍정적인 가치평가와 그에 준하는 문화경쟁력을 갖는 콘서트의 주체로서 연주자, 연주단체, 연주환경적 요소(의상, 무대예술)는 물론 프로그램
카탈로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콘서트, 공연문화 총체적인 면에서 플러스 알파, 베타적 문화아이템 경쟁력을 갖춘 차별화된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오늘의 논제, 서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르네 데카르트의 코기토 - 존재론적 이론, 그 주제에 부합되는 콘서트의 문화경쟁력,
문화론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음악사회 콘서트 문화에 어떤 상징성으로 평가될 수 있는 문화 리더적 콘서트라는 의미에서 고무적이라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콘서트 공연예술의 문화경쟁력은 시간이 갈수록 절대적인 필요충분적 조건으로 부각되는 문화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나의 콘서트, 공연문화로 살아남기 위해서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했다는 의미로 하나의 콘서트, 공연문화로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선 최소한의 문화적 아이템, 어떤 특별한, 어떤 차별화 - 썸띵 스페셜, 썸띵 디프런트, 썸띵 플러스 알파가 존재되어야 한다는 문화논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제시된 콘서트와 음악제 프로그램이 어느 면에서 어떠한 문화경쟁력을 갖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문화적인 경쟁력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비교된 콘서트, 음악제 관련해서 음악평론가(김춘미, 여세실)에 의한 음악리뷰 기고문((新 쮜리히신문,
http://blog.chosun.com/minuette)), 문헌자료를 통해서 당시의 콘서트 리뷰-연주평을 중심으로 비교분석, 평가, 인용해
보기로 한다.
☆판뮤직페스티벌-Pan Music festival : 1972년(1969)에 한국의 신 해외 유학파 자곡가 그룹에 의해 창립된
신음악 현대음악단체로서 주로 당시 현대음악 범주의 음악음악장르들 관련해서 문화와 지식을 소개, 교육, 전파하는 유명한 음악프로그램,
음악페스티벌이다. 1970년대 당시의 서울음대 작곡과 강석희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회에 음악 컨템퍼러리(Contemporary) 문화 -
새로운 음악바람을 일으키는 어떤 문화 주춧돌 역할로서 20세기 현대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문화운동의 계기가 된 신음악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판
뮤직페스티벌은 명실공히 당시 한국음악사회에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현대음악이라는 장르를 보다 판뮤직 패스티벌이라는 음악제를 통해서 교육적으로
음악캠페인적으로 확산 끌어올린 신음악문화 일등공신으로 볼수있다. 21세기 지금도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은 다른 고전 낭만음악에 비해 그 이해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판뮤직 페스티벌이라는 범음악제가 생겨난 시기1969~1972년 즈음만해도 모더니즘, 현대음악, Contemporary
문화에 대해선 일반대중의 관심밖의 외면하는 문화환경적 상황에서 판뮤직 창립멤버들의 그 당시 열과 성은 오늘날 한국음악사회 현대음악이 존재하기까지
그들의 숨은 공로는 헌신적이었고 높이 칭찬할만하고 음악평론가로서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바이다. 1969년이후 오늘날까지 판 뮤직페스티벌의
콘서트 문화적인 장점이라면 그 당시 음악문화적인 지명도가 높은 수많은 해외 작곡가 연주자들을 초청해서 작곡발표, 연주, 세미나, 강연 등 렉쳐
콘서트를 실행한 것이다. 그것은 간접적인 음악 교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음악교육 효과를 제공한 결과로 오늘날 한국의 세계적인 현대작곡가의 생산,
배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수있다. 그러한 업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 유명한 작곡가의 한 사람이 진은숙이라는 걸출한 현대음악의
대작곡가가 탄생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실례를 보더라도 판뮤직페스티벌 - 범음악제가 갖는 음악문화적인 교육적인 효과는 중요한 역사성을
갖는 한국음악사회의 대표적인 선구적 콘서트문화, 콘서트 음악제이다. 특히 판뮤직페스티벌의 중요한 소프트웨어적 프로그램은 음악전공자 뿐 아니라
음악애호가 문화애호가를 대상으로해서 그들 청중 전반의 참여자들이 함께하는 한국 최초의 현대문화적 뮤직페스티벌로 그러한 면에서 상당한 문화교육적인
효과를 창출한 Pan Music Festival이 갖는 문화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 진정한 모더니즘,
Contemporary, 현대문화를 위한 음악프로그램으로 한국음악사회 현대음악교육의 중요한 메카, 요람으로 앞으로 한국음악사회 현대음악,
Contemporary 문화 발전에 중요한 음악문화적 테스크 포스로 자리할 것으로 본다.
☆Korean Music
Expo<한국 창작음악의 브랜드화> : 한국창작음악의 브랜드화 음악제 제목 부터가 상당한 어의적인 의미를 갖는 Korean Music
Expo.는 한국음악사회 신진 작곡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음악제로 창단 역사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그 음악제의 취지의도 목적은 신진 젊은
에너지를 주축으로 대한민국 창작음악 발전, 특히 실내악 부문의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연주단체 음악제이다. 분명히 한국창작음악의
브랜드화라는 음악제의 주제적 슬로건에서 보듯이 음악제의 문화성과 경쟁력이 기대되는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역동성이 잠재된 젊은 음악제로
보여진다.
☆ACL FORUM in SEOUL<아시아 작곡가 연맹 작품연주회> : 1973년에 창설된 이래 아시아 지역의 작곡가 학자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특히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아권학문적인 문화교류 작곡 - 음악제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문화권 음악문화적인
경쟁력을 갖는 음악제이다. 아쉬움이라면 음악제 창립 초기와 비교할 때 근래의 음악제 상황은 다소 침체된 경향을 보여주고있는 부분이다. 'ACL
FORUM in SEOUL - 아시아 작곡가연맹 음악제' 좀 더 창설 당시의 음악제 모습으로 복귀, 재현을 기대한다.
☆서울국제음악제 : 1980년 창립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동안 음악제의 조직, 운영면의 문제로 다소 순탄치가 않은 역사과정이 있었지만
문화예술적으로 선진적인 해외 명 연주자를 초청해서 그들의 음악예술과 국내 음악예술과의 어떤 비교 문화적인 차원에서 국제음악제의 효과를 제공한
서울 국제음악제로 창립 당시의 과거와 현재 문화를 잇는 국제무대로 신선한 국제 음악문화 바람을 일으킨 음악제이기도 하다. 바라건대 서울국제음악제
창립 당시의 신선한 이미지를 되찾는 음악제로서 좀 더 음악제 내부적인 이미지 쇄신이 필요로하는 현재의 서울 국제음악제로 대한민국 국제음악제로서
일관적인 음악문화적인 주관이 분명한 창립 당시의 대한민국 국제음악제로서 처음 그대로의 참신한 이미지 부활이 필요해보인다. 이것은 단지
서울국제음악제뿐 아니라 역사가 길지 않은 신생음악제를 비롯해서 현재 진행되는 모든 음악제에 해당되는 필요조건으로 설립초기의 음악제 목적과 취지,
의미가 단기적이 아닌 보다 장기적으로 길게 오래오래 지속되는 음악제로, 어떤 일부 계층을 위한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가 참여해서 즐기는
음악페스티벌의 모습으로 후대의 음악제에 어떤 모델이 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음악축제로 존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서울 판뮤직 페스티벌 1988
● 한국에서의 현대음악
청중의 저변확대가 여전히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현대음악의 문제는 서양음악 문화권을 제외한 나라에서의 음악적 삶이
아직 서양의 고전음악속에 응고되어있지 않기때문에 이 문제는 분명 다른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나라에서 서양의 현대음악은
과거의 유럽음악보다 더 많이 토착화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음반시장들이 이미 일본에서 일어나고있는 예와같이 서구식 문화적 욕구에
대한 상태를 만들지 못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동시에 나타나는 또다른 문제는 한국처럼 하마터면 박물관의 예술품이 될뻔했던
옛 민속음악과 전통예술음악 등 전통고유의 음악을 보호하면서도 얼마전부터 서양문화에 영향을 받고있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 문제와 관련해서 동시대의
개혁과 부분적 상호간의 영향에 대한 질문이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민속음악은 두메산골의 다방까지 확산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TV의 현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느낄만큼 아직까지는 전적으로 그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의 전통음악과 민속음악은
서울국립국악원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전수된다. 이곳은 올봄에 완성된 콘서트홀 바로 옆에 위치하고있으며 이곳에서는 놀이마당이라고불리는
야외무대에서 청중과 함께 활기차게 어울려지는 민속음악과 가면극을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이 전통음악과 민속음악이 마이클재슨과
마돈나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서 무시당하지 않고 계속될수있을까? 유럽의 고전음악은 한국에서 많은 애호가를 가지고있다. 현대의 서양음악 역시
젊은세대로 구성된 청중을 확보하고있는데 매년 현대음악제가 이들을 위해 열리고있다. 올해가 16회째이다.(10월 14일~21일) 이 음악제는
한국의 주도적 작곡가들과 작곡과 교수인 강석희에 의해 창단되었고 <팬뮤직 페스티벌>이라 명했다. '판' 이라는 개념은 한국어로 무대,
놀이마당, 즉흥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희랍어에서 유래된 팬(pan) 이 가지고있는 뜻과 함께 동서양을 연결한다. 이 훼스티벌은
ISCM(국제현대음악협회)의 한국 지부장인 강석희 회장이 이끌고 있으며 서울의 괴테문화원과 함께 1985년 이후로 국립문화원의 후원을 받으며
현재는 새로이 프랑스문화원과 영국문화원이 참가하고있다. 올 음악제의 주된 관심은 이미 언급했던 예술의 전당 개관이다. 이 건물의 건축양식은
고전적 포스트모던스타일이고 얼핏 슈투트가르트의 국립 현대화랑을 떠올리게한다. 홀의 내부는 베를린필의 내부와 비슷하다. 2600석의 거대한
콘서트홀과 400석의 실내악을 위한 홀이 있다. 이 홀은 올 2월에 개관했으며 오페라하우스는 1992년 말에 완성될 예정이다. 그밖에 전시회장과
현대식이면서 극동의 아름다움이 담긴 정원과 홀 내부의 좌석배치는 이미 끝났다. 동서양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이번 음악제는 서양의 연주자와 작곡가
뿐만아니라 동아시아 음악가도 초청되었다. 음악제동안 특기할만한 현대음악 주자들 중에는 Arditti-Quartet(아르디티 현악4중주)와
피아니스트 Claude Helffer(클라우드 헬훼)의 앙상블과 언제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놀라게하는 Trio Exvoco(슈투트가르트
출신들로 구성)을 들 수 있다. 이 두 그룹은 각기 두 종류의 행사를 개최했는데 첼로주자인 Siegfried Palm(지그프리드 팔름)과의
음악회는 지병으로 취소되었다. 그리고 작곡가 Jannis Xenakis(야니스 쎄나키스)를 위한 광대한 음악회가 (그 또한 지병으로
불참)그밖에도 스웨덴의 탁월한 오보주자 Helen Jahren(헬렌 야렌)이 유럽작곡가와 한국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고 Flute의 거장인 일본의
Hiroaki Masunaga가 연주한 일본작곡가의 작품중에서 특히 48살의 kiyotomi Yoshizaki의 작품
himura의<Khyal>이 두드러졌다. <The Realm of Cabala>와 35살의 Akira
Nis-Xenakis의 <Syrmos>는 젊은세대로 구성된 서울심포니에타에 의해 대단히 잘 연주되었고 금관 5중주와 피아노를 위한
<Eonta> 역시 잘 연주됐다. 우리에게 이미 Zurich Grossumunster에서 있었던 음악회를 통해 잘 알려져있는
전자음악작품 <La legende d'Eer>는 Xenakis 전시회와 관련지어 <Kunst Diseo>에서 연주되었는데
대다수의 청중들이 45분간의 진행과정을 참아내지못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54살의 강석희작품<Metamorphosen>(1974년
작곡)은 Arditti 현악4중주와 Flute 주자 Masumaga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이 작품은 연주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음향과
형식면에서 매우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외에 한국작곡가 6인의 작품이 표현양식의 다양성과 함께 전체적으로 수준있게 발표되었다.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진은숙의 3명의 Cello주자를 위한 <Spektra>는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었고 Flute, Clarinet과 피아노를 위한
장정익의 <Goh>는 대단히 면밀하면서도 다양한 소리의 작품이었다. 추측컨대 도데카폰(dodekaphone)으로 작곡된 듯 하다.
Schoenberg의 <달밤의 삐에로>독일 여가수 Helrum Gardow의 연주로 이 훼스티벌의 끝을 장식했다. 이 음악제의 개막은
Goethe문화원에서 <소리와 낱말>이라는 주제로 시청각 비디오가 전람되었는데 그것은 Pierre Schaffer부터
Erustjandl과 Joseff Auton Riedl에 의해 이끌어졌다.
■ 김춘미(음악평론가) - '88 Pan Music Festival ■
■ Andras Schiff Piano
Resital
▒ Ludwig von Beethoven :
● Sonata No.30 in E. Op.109
● Sonata No.31 in Ab. Op.110
●
Sonata No.32 in c. Op.111
● 베토벤 후기 소나타에 대한 절대적 경애심의 표현..
고전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헝가리계 영국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 Andras Schiff 내한 연주가 지난
2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2008년 이후 두번째 내한 연주라서 안드라스 쉬프에 대한 한국 청중의 기대는 지난 12월부터
대단한 반향을 보여온 바 지난 23일 연주회장에서의 그 열기를 다시 한 번 가늠할 수 있는 쉬프 그의 한국 팬 과의 뜨거운 관계를 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유한 명 피아니스트답게 베토벤 소나타 3곡으로 쉬프는 이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녹음 음반, 제작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프로그램은 바흐 이후의 안드라스 쉬프와 베토벤의 음악적인 관계를 조명해볼 수 있는 베토벤을
주제로 한 안드라스 쉬프 주목받는 리사이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베토벤 소나타 N.30 - N.31 - N.32 이 세곡의 소나타는 베토벤
후기(제3기)시대 최고의 작품성이 평가되는 명작 피아노 소타로 그동안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집중 탐구작업에 관해 관조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안드라스 쉬프의 이 번 리사이틀 연주에서 진행상의 특징이라면 인터미션 없이 프로그램 전곡을 연주 진행과
함께 곧 바로 앵콜 연주가 진행된 다소 이례적인 콘서트 진행을 한 사례로 어찌보면 깜짝 콘서트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why 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청자로서 좀 아쉬운것은 그러한 사실을 사전에 예고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쨋든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3소나타 연주속으로
들어가보자.
안드라스 쉬프는 베토벤 보다 바하에 대한 피아니스트로서 긴 역사를 갖는다. 그런 만큼 그러한 쉬프의 바흐 선입견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을 만나보면서 역시 방대한 레퍼토리의 소유자로서 피아니스트적 피아니즘이 생생한 견고하고 치밀한 안드라스 쉬프만의 베토벤
고전적인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낸 연주로 절대적인 베토벤 메니아로서 연주자나 청자 모두가 베토벤에 대한 경애심을 다시 한 번 갖게하는 고도의
철학적인 베토벤의 침묵적인 외침 절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 세 곡의 소나타에서 다소 마이너스적 아쉬움이라면 소나타 N.30
N.31 N.32에서 부분적으로 좀 더 파워풀한 터치, 톤의 형태미가 요구되는 연주상황으로 그것을 피아니스트 연배 탓으로 하기엔 이른 듯
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주의 하일라이트 명연이라면 단연 소나타 N.32 in c Op.111 Maestoso Allegro conbrio
appassionato - 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전 2악장 진행에서 보여준 명연 구조로
특히 피아노 톤의 매우 신중함에서 마치 피아노의 성자, 구도자의 이미지로 보다 절제와 규범적인 tone, taste, technical의
피아니즘적 경향이라 할 수있다. 그럼에도 다소 부분적으로 '신중함이 병인향하여'의 역 효과로 곡 - 연주의 흐름을 저해할 수 있는 연주상황이
있었지만 베토벤 전반적인 연주상황은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과 경애심으로 가득한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해석과 연주의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명
연주로 그것은 연주자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신앙적인 베토벤 친화적인 연주로 그것은 젊은 연주자의 가벼운 베토벤과는 비교되는 심도있는 해석과
논리정연을 읽을 수 있는 베토벤의 내면의 분석을 치밀하게 표출한 연주로 악성 베토벤의 음악적인 품격 품위를 한층 높이 선명하게 보여준 베토벤
경애적인 안드라스 쉬프의 명작 명연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 신앙적인 어떤 지시 제스처가 반영된 철학적인 깊이가
내재된 베토벤의 본성을 쉬프의 연주를 통해서 되돌아 볼 수 있는 안드라스 쉬프의 중요한 베토벤 명연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다.
이번 안드라스 쉬프 내한 연주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음악평론가 데뷔 20여년에 사상 초유적인 이변이 일어났다..ㅎ 그것은 어느
연주회에서든 앵콜연주가 있기 마련인데 그러한 앵콜연주에 한 번도 동석한 적이 없는 필자만의 이력이기도 한 상황에서 이번 안드라스 쉬프 연주에서는
어쩔수없이 인터미션이 없는 프로그램 스트레이트 연주관계로 한 자리에 앉아서 앵콜연주 3곡<베토벤 - 쇼팽 - 바흐>이나 들어본 웃지
못할 사실이다. 어처구니 없기도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음악평론가로서 앵콜을 듣지않는 거부하는 이유라면 한 콘서트의 본 프로그램의 연주적
신선도,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부정적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그리고 한 가지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앵콜연주 참석은 하지않는다. 그리고 현재
한국연주계에서 행해지는 앵콜문화는 21세기 현대 콘서트 문화면에서 시대착오 전근대적인 문제가 있는 비문화적인 앵콜상황으로 그것은 앵콜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는 앵콜문화 현장에서 연주자 관객간에 상호 주관이 없는 앵콜 남용주의가 팽배한 시점이다. 예컨데 '앵콜-encore' 이란 정말
훌륭한 어떤 연주에 대한 청중-관객의 감사표현으로 그에 대한 연주자의 필연적인 답예 과정 표시이다. 그럼에도 요즘 국내외 연주계를 보면 앵콜이
앵콜의 가치를 잃는 앵콜과다, 코미디 현상으로 청중이나 연주자나 무분별한 의미없는 앵콜 과용 사례를 보여주고있다. 앵콜은 앵콜로서 훌륭한 가치가
있는것이다. 보다 제대로 된 앵콜로서그 가치가 평가되고 존재하는 앵콜문화의 합목적성 현주소가 필요하다.
■ 김선욱 Piano Recital
▒ Beethoven : Sonata No.30 in E.
Op.109
Sonata No.14 in c#. Op.27-2
▒ R.Schuman : Arabesque in C Op.18
Kreisleriana Op.16
● 피아노의 어린왕자에서 피아노의 음유시인의 모습으로
2006년 리즈콩쿨 우승이라는 화두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 음악계를 온통 피아노의 물결로 뒤흔들었던 한국인 토종(코리안 드림)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의 어린왕자, 피아노의 천재, 재간둥이, 수 많은 미사적 수식어로 그를 열광적으로 환호했던 김선욱 그의 제2의 음악시대 영국
런던시대를 열기위한 피아노 컨서트 투어를 위해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 이번 리사이틀 투어는 리즈콩쿨, 영국진출 이후 첫내한 콘서트 투어(11월
18일 ~ 11월 27일{고양 - 대전 - 대구 - 서울})형식으로 네 지역에서 진행된다. 지난 2006년 김선욱 한국데뷔 연주이후 그때나
지금이나 열광하는 그의 팬들은 또 한번 피아노의 어린왕자 김선욱과의 기쁜 해후-Rendez vous를 하는 셈이다. 한국의 작은거인 피아니스트
김선욱. 작은 체구의 비틀즈를 좋아하고 안드라스 쉬프 - 라두 루푸를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 김선욱 그는 누구인가 왜 우리 한국인은 피아노의
어린왕자 김선욱에게 그토록 열광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청자 나름대로 각각의 여러가지 답이 나올 듯하다. 그 질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이라면 약관 10대 후반의 나이로 프로그램의 벽이없는 탁월한 피아노 연주실력에 대한 팬들의 무언의 반응이 아닐까한다. 피아노의 어린왕자
김선욱하면 무엇보다도 2006년 김선욱 한국데뷔 연주, 6작곡가의 프로그램에서 18세의 어린나이로 보여준 명작명연의 신드롬, 대단히 높은
연주완성도에 대한 '피아노의 천재' 라는 만인의 평가 그것이었다. 그러한 뜨거운 관객반응에서 리즈콩쿨 우승이라는 영광을 잠시 뒤로하고 영국
진출해서 그 이후 그가 어떻게 변화했나? 김선욱을 사랑하는 모두의 관심사이자 김선욱 그의 한국 데뷔연주{2006년 8월 30일 세종체임버홀에서의
슈베르트-라프마니노프-스크리아빈-베토벤-리스트에 대한 감동연주 아직도 생생한} 부터 줄곧 지금까지 지켜보았던 음악평론가로서의 지대한
관심사이기도하다. 어쨋든 이번 네 지역에서 진행되는 김선욱 피아노리사이틀 컨서트 투어를 통해서 보이는 김선욱에 대한 팬들의 열정, 관심은
데뷔시절이나 그 이후나 한결같은 뜨거운 열기로 뜨겁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는 베토벤 소나타 No.30, No.14 - 슈만의 아라베스크, 크라이슬레리아나. 2작곡가의 4작품으로
단촐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이번에도 베토벤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베토벤 친화적인 피아니스트임을 보여주고있다. 그럼 김선욱 구체적인 연주속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베토벤 소나타 No. 30 in E. Op.109. No.14 in c#. Op.27-2에서 두 곡 모두 베토벤 말년의
작품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김선욱 역시 그 작품성에 준하는 성숙한 연주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안정적인 여유로운 톤의 유려함에서 보다 심미적인
형태미가 한층 높았던 연주완성도를 보여준 진행으로 베토벤의 어떤 철학성을 관조하기에 충분한 연주상황으로 그것은 연주자의 제2의 학습에 의한
대단히 교양적인 가꾸어진 - cultured. 의미적인 연주 조형미로 베토벤의 철학적인 면을 내포하고있다. 그리고 베토벤 14번 소나타 '월광'
베토벤 소나타 No.14. <Moon Light>소나타 작곡이래 수 많은 피아니스트-연주자의 월광은 각각 100인 100색의 다른
월광의 빛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템포와 심미적 컬러면에서, 김선욱 역시 김선욱만의 월광을 그려내기에 충분한 진지한 연주로 중후한 달빛의
의미, 시적인 은유를 표현하는 피아노의 시인, 철학자적인 달관의 모습으로 베토벤의 월광, 김선욱의 월광으로서 어떤 공통의 빛을 보여준 베토벤 -
김선욱 명작 명연으로 평가된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클라이슬레리아나에서도 김선욱 특유의 어떤 제2의 학습효과의 변-cultured 경향을 볼 수
있는 진행으로 톤의 섬세함과 시적인 음향에서 슈만의 피아노적인 문학적인 의미의 작품성을 높이는 주요 요소로 그것은 슈만의 다소 클래식한
고정관념에서 보다 낭만적인 시의 자유로운 운율, 리듬을 듣는 듯한 매우 아름다운 세련된 슈만의 아라베스크 그리고 클라이슬레리아의 미술적인
음악조형성이 돗보이는 연주로 슈만의 음악의 미 특유의 음악적 미술적 이미지를 김선욱은 피아노의 시적인 그림을 그리듯이 파스텔 채색적으로
보여주었다. 김선욱 오늘 연주를보면서 지난 2006년 낭낭 18세의 한국데뷔 연주에서의 청순한 풋사랑의 풋풋함의 미학과는 음악해석적으로, 연주
분석적으로 보다 논리 정연한 어떤 피아노 음악적인 변화와 진화적인 상황을 보게된다. 그것은 이른바 한국의 피아노의 작은거인으로서 성숙한 피아노의
음유시인적인 달관자의 모습으로 이젠 김선욱 그는 데뷔 당시의 피아노의 청순한 어린왕자 이미지에서 한 스텝 업그레드된 피아노의 철학자 피아노의
시인의 모습으로 그 작은 체구에서 그러한 오늘의 명작명연의 주인공으로서, 남녀노소 모두의 열광적인 환호를 달고다니는 이 시대 우리가 사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의 재기 발랄한 모습을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2006년 한국 데뷔연주 무대에서 김선욱 그는
18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한국 피아노 음악계 피아노 문화의 돌풍을 일으켰던 피아노의 어린 왕자의 모습에서 이젠 한국 피아노 연주계의 코리안
드림(해외 유학없이 성공한 연주자)의 표상으로 한국 피아노 음악계의 영원한 희망, 영원한 태양으로 존재할 것이다.
● 'Cultured-Cultivated' 의미적인 명작명연 퍼레이드..
김선욱 이번 연주에서 보았듯이 김선욱 그는 어떤작곡가 어떤 작품에 구애받지않는 테크니컬, 톤, 테이스트가 갖추어진 레퍼토리
다양성의 피아니스트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한 김선욱의 음악적인 선천성과 제2의 학습의 효과의 공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한편으로
우려되는 사항은 지금까지 김선욱에 대한 열광은 2006년 리즈콩쿨 우승이라는 화려한 커튼콜 시대의 잔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평면적인
콩쿨 기록의 전시효과는 영원한 것은 아니다. 음악콩쿨이라는 과정은 음악 인생의 형식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결국 어떤 콩쿨 우승이 연주자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콩쿨우승은 반드시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콩쿨경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콩쿨우승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것 모든 콩쿨우승 연주자에게 중요하다. 콩쿨우승 현재보다 콩쿨우승 이후 '포스트 콩쿨우승' 이 연주자로서 최대 음악이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동서고금 내로라하는 콩쿨우승 연주자들이 도중에 이유없이 도퇴되는 경우는 자주보아온 비극적인 현상이다. 낭낭 18세
피아노의 어린왕자 김선욱 한국 데뷔 연주를 참관했던 음악평론가로서 바라건대 한국 피아노 음악계의 떠오르는 별, 태양으로서 김선욱의 영국
진출이라는 새로운 미래음악 시대에서 J.S. 바흐의 음악사적 족적에 버금가는 김선욱 제 2의 음악시대 - 영국 런던시대 더욱 왕성한 그리고
끊임없는 Creativity, Cultured, Cultivated가 내재된 김선욱 제 2의 음악시대 피아노 문화의 꽃을 피우길 기대한다.
■ Lang Lang Piano
Recital
▒ Lv B e e t h o v e n :
● Sonata Nr.3 in C Op.2
●
Sonata Nr.23 in f Op.57
<<Appassionata>>
● Albeniz : Iberia Book I
●
Prokofiev:Sonata N.7 in Bb Op.83
● 반짝이는 테크니컬, 빛나는 피아노의 수퍼스타..
1982년 중국 센양 태생 피아니스트 Lang Lang, 13세 나이로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노계의 새 별,
센세이셔널 수퍼스타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클래식 음악계 수퍼스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 현재 연주자로서 그
몸값이 가장 비싼 피아니스트로 각광받는 중국의 빛 랑랑. 대단한 테크닉션에서 놀랄만한 스릴을 자랑하는 중국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징
올림픽 개막 축하연주(2008)를 비롯해서 오바마 대통령 노벨상수상 축하 연주(2009)에서 그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차이콮스키 콩쿨우승
이후 미국 커티스 음대에서 수학한 중국의 자랑 그야말로 신세대 젊은 피아니스트 랑랑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현연에서 자신의 연주장면을
아이페드로 직접 소개하는 등 신세대성이 탁월한 피아니스트 랑랑, 그에 대한 언론의 찬사는 끝이 없는듯 하다. 그러한 대중 여론적인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음악평론가로서 랑랑에 대한 이미지 음악적인 인상은 언론의 찬사보도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 사실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중국 문화에 대한 선입관 - 저급적인 대중지향적인 문화로 인식된 중국적인 문화류에 대한 선입견적 문화인식, 개인적인 편향적인 시각을
갖어왔음이 아닐까한다. 그러나 그러한 필자의 고정관념적 문화思考가 이번 랑랑-Lang Lang 피아노 리사이틀을 접하면서 다소 중국문화에 대한
편협성이 해소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랑랑의 피아노 리사이틀 좀 더 세심하게 관조하기로 한다. 우선 프로그램에서 선입견적 존재의
가벼운 랑랑18세(좋은의미-영에이지) 이미지와는 비교되는 다소 의외적인 비중있는 프로그램 구성으로 *베토벤 소나타 No.3 - No.23 in
c Op.57 Appassionata *알베니즈 : 이베리아 1권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No.7에서 다시 한번 피아니스트 랑랑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그의 이 번 내한 연주 프로그램의 성격이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역시 피아니스트 랑랑 차이콥스키콩쿨 우승이라는 경력이 뒤받침 되는
테크니컬면에서 상당히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신세대 테크닉션 피아니스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연주로 특히 베토벤 No.3. No.23소나타에서
기존의 랑랑에 대한 언론평가에 일치되는 대단한 테크니컬의 소유자로 그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파워풀과 심미가 조화를 이루는 연주조형으로 아름다운
역동적인 베토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부언해서 특히 베토벤 소나타 No.23 아파쇼나타 알레그로 아싸이에서의 pp의 여린 서정성, 안단테 콘
모토에서의 감7도화음의 알페지오네의 아름다운 톤 심미적인 경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에서의 ff의 격렬함은 놀랄만한 베토벤의 아파쇼나타 그
표제적인 해석이 높이 평가되는 연주조형성으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의 이미지를 당당하게 보여준 이른바 중국적인 대륙적인 음악캐릭터 그 의미를
실감할수있는 파워풀 통쾌한 베토벤의 구조, 반짝이는 톤, 파워풀한 테크닉에서 보다 베토벤 내재적인 에너지와 젊음이 넘치는 가장 영에이지 후레쉬한
베토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알베니즈와 프로코피에프에서 과연 알베니즈를 어떻게 연주할것인가?? 내심 우려 반 기대 반 관심상황에서 차라리
프로코피에프가 테크닉션 피아니스트 랑랑에 보다 적합한 레퍼토리라는 것을 예측할수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예측대로 프로코피에프는 랑랑의 스프링적인
테크닉션 피아니즘을 최대한 적용해서 베토벤 만큼의 완성도적인 감동은 아니었지만 랑랑의 잠재적 테크닉션적인 연주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프로코피에프에서도 테크닉만이 연주관건이 아닌 음악적인 플러스 알파가 요구되는 매우 난곡으로서의 연주의 어려움이 존재함에도 그러한 부분이 다소
무시되는 부분이 미흡함으로 남는다. 무엇보다도 '알베니즈 - 이베리아' 한 마디로 좀 더 그 작품에 대한 Albeniz와 Iberia가 갖는
음악적인 아이덴터티에 대한 연주 수행적(cultured) - 갈고 닦는 시간이 필요한 레퍼토리가 아닐까하는 아쉬움으로 우선적으로
알베니즈-이베리아의 전설적인 명인 연주자 '알리시아데 라로차'의 연주문화를 비교 연구해 보면 이 작품이 갖는 정신문화적인 피아노 문화적인 해답이
나올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랑랑 - 알베니즈 연주에서 아쉬움이라면 피아니스트가 단지 테크니컬이 전부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알베니즈 부재,
무의미, 무개념적인 연주로 인간의 완성이나 예술의 완성에 있어서 어느정도 연륜이라는 부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랑랑 -
알베니즈 연주에 대한 아쉬운 평가이다. 어쨋든 이번 랑랑 내한 연주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에 대한 좀 더 사실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시 13세 차이콥스키콩쿨 우승이라는 트레이드 마크, 영구불변의 이미지로 잠재된 테크니컬의 뛰어난 면을 그의 베토벤
연주에서 사실적으로 보여주었고 언론에서의 그에 대한 찬사가 허구적인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이미 떠오른 수퍼스타로서의 좀 더
분명한 중국의 예술문화 그 빛을 세계 음악계에 널리 알리는 놀랄만한 테크닉션 대국적인 피아니스트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이른바 랑랑 18세의
순수하고 신세대의 생동적인 보다 젊은 베토벤 연주 캐릭터를 만나보았다. 한 가지 음악평론가로서 부언하자면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준비된 수퍼스타
피아니스트로서 프로그램 레퍼토리 장르면에서 경계성이 없는 좀 더 자유로운 레퍼토리 확장 작업이 필요한 랑랑 오늘의 리사이틀에 대한 2%
아쉬움으로(문화적인 차이랄까 연주 외적인 제스츄어가 과다한 부분이 랑랑 연주의 옥의 티라면 옥의 티로 볼수있다.) 최소한 레퍼토리적인 갭이
존재하지 않는 테크닉션 연주자로 타임지 예언대로 세계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그야말로 21세기적 초 수퍼스타 명 피아니스트로의 그
위대한 명예 오래오래 간직되길 기대한다.
■ Alexander Melnikov Piano
Recital
● F. Schubert : Wanderer in C Fantasie
Op.15(D.760)
● J. Brahms : Seven Fantasies
Op.116
● D. Shostakovich : Preludes and Fuges Op.
87 No.1-12
● 피아노의 올드보이에서 피아노의 성인(聖人)으로..
동글한 동안(童顔), 크지 않은 아담한 키, 선한 마스크의 전형적인 착한 올드보이 웬지 한국인과 친근한 그 모습의 러시안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 리사이틀이 지난 11월 6일 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이번 리사이틀이 6회째 내한 연주이다보니 한국 팬과는
아주 친숙한 관계의 피아니스트가 아닌가한다. 알렉산더 멜니코프 그의 착한 이미지, 올드 보이 철학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피아노 연주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있다.. 우선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보면 □슈베르트-방랑자 환상곡 Op.15 □브람스-쎄븐 환타지 Op.116
□쇼스타코비치-24프렐류드 & 푸가 Op.87 No.1-12 에서 프로그램과 피아니스트의 어떤 음악적 궁합이 잘 맞는 레퍼토리 구성으로
볼수있다(오늘의 연주 완성도 레벨을 비추어볼 때)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그 날의 프로그램속으로 들어가보면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에서 자신감 충만한
tone의 상황에서 아름답고 섬세한 그리고 유려한 슈베르트의 음감에 접근하는 구조에서 슈베르트의 감상적인 음악언어를 만날 수 있는 서정성 짙은
슈베르트 해석으로 특히 강렬할 땐 강렬하고 섬세할 땐 섬세하게 그것이 분명한 멜니코프의 매우 피아니스틱한 색체에서 보다 슈베르트의 서정성
감상성이 생동적으로 빛나는 이른바 성숙한 슈베르트의 로맨틱 노래를 들려주기에 충분한 노래적인(성악적인) 아름다운 슈베르트 호연이라할 수 있다.
그리고 브람스에서 파워풀한 테크닉, 섬세한 러시안 피아니즘의 실존, 다시 말해서 스케일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연주 패턴으로 그것은 러시안
피아니즘의 마지막 계승자임을 보여주는 분명한 피아니즘 신드롬에서 브람스 심미적인 내면을 읽기에 충분한 감동적인 명연구조로 브람스의 시적인
러브스토리를 듣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더 멜니코프 오늘의 프로그램에서 연주적인 하일라이트라면 단연 쇼스타코비치의 프렐류드와 푸가
Op.87 No.1-12로 볼 수 있다. 이 곡은 이미 멜니코프가 지난 5월에 음반으로 제작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쇼스타코비치 매우 자신감 돗보이는 완성도높은 명연, 그 완성도를 기록하고있다. 우선 쇼스타코비치의 24 프렐류드와 푸가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으로 작곡하게 된 동기로 바흐의 평균율(Well Tempered Clavier)과의 비교가 되는 쇼스타코비치의 불후의
역작이다. 그러한 쇼스타코비치의 불후의 명작을 더욱 명작 반열에 올려놓은 연주가 바로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이 번 연주가 아닌가한다 그러한 사실을
이번 연주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보여준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쇼스타코비치 프렐류드와 푸가의 명연적 완성도라할 수 있다. 그 대작 쇼스타코비치 ;
24프렐류드와 푸가의 *소생(Renewal) - *유희(Play) - *명상(Meditation) - *위엄(Grandeur)..장장 연주 러닝
타임이 60분 이상 소요되는 대곡으로 피아니스트의 강인한 스테미너, 강인한 지구력이 절대적인 역동적인 쇼스타코비치에서 작은 체구의 올드보이
이미지로 그러한 대 피아니스트의 스케일을 보여준다는 사실 대단히 놀랍고도 감동스런 명연주 명장면으로 그야말로 러시안 피아니즘의 진귀명귀가 아닐
수 없는 명연으로 그것은 기존의 연주사적으로 알렉산더 멜니코프 - 쇼스타코비치 24 프렐류드와 푸가 보기드문 명장면, 명작 명연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네 파트로 나뉘어진 쇼스타코비치 24프렐류드 & 푸가에서 알렉산더 멜니코프 그는 마치 피아노의 착한 올드보이에서 피아노의 달인,
피아노의 성인, 피아노의 마법사 러시안 피아니즘의 마지막 계승자..어떤 미사여구적 평가에도 흡족치 않는 이른바 피아노의 위대한 작은 거인,
피아노의 성인, 그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알렉산더 멜니코프 6번째 내한연주, 관객으로서 평론가로서 알렉산더 멜니코프 그의 혼신을 다하는 오늘의
쇼스타코비치 연주에 대해 진정한 부라보 부라보를 외치는 바이다. 그리고 그의 오늘의 연주 문화성 연주완성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 무궁하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산더 멜니코프 이번 쇼스타코비치 연주를 통해서 한국 음악청중과는 더욱 친숙한 관계에 있는 러시안 피아니스트임이 그의
6번째 내한 연주를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진정 한국, 한국청중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가? 무엇이 그를 계속적으로 한국에 내한 연주를
오게 만드는가..? 재미있는 의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이미 한국에 전통적인 그의 고정팬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매번 연주회장에서의 멜니코프를 지지, 후원하는 그리고 열정적으로 환호하는 팬층을 보면(이번 뿐이 아닌 매번 멜니코프 리사이틀
현장에서 볼수있는 열정적인 환호모드 상황) 그것은 그의 연주문화에 어떤 외형적 쇼맨쉽이 아닌 진실한 최선의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영 효과로
멜니코프 내한연주 6년간의 열정, 열열한 한국 팬의 사랑을 보여준 것으로 청중과 피아니스트, 관객과 연주자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보여준
따뜻한 러시안 피아니스트 올드보이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명작 명연의 감동적인 피아노 컨서트 피아노 리사이틀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얼마전 어떤 언론평을 보면 에프게니 키신의 연주를 훔친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라는 헤드라인이 보도 자료로 소개된 바있다. 이러한
헤드라인은 분명히 상업적 대중적 포퓰리즘이 앞선 오류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오늘의 알렉산더 멜니코프 실제 연주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잘못된
표현임을 알게될 것이다.
■ 최영미 Piano
Recital
▒ P R
O K O F I E V
● Sonata No.2
●
Sonata No.3
● Sonata No.8
● 프로코피에프 타악적 개념에서 서정적 피아노문학으로..
최영미 피아노리사이틀이 프로코피에프 전곡시리즈를 주제로 10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라는 리사이틀 주제에서 평론가로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최영미 피아노 리사이틀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듯이 오랫만에 감동적인 프로코피에프 명연을 만나본 피아노
리사이틀로 오랫동안 기억장치에 잊지 못할 명작명연의 장면으로 기록될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최영미 프로코피에프 연주속으로 들어가
보기로한다. '프로코피에프 전곡시리즈 II'라는 소나타 3작품을 보면 우선 1900년대 초기 작품으로서 프로코피에프의 전형적인 작품성격
불협화음, 공격적, 비조성적, 요소가 비교적 완화된 온건한 작품성의 프로코피에프 작품성이라 할 수 있는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No.2 - No.3
- No.8에서 어느 한 곡에서도 어떤 소흘한 면이 전혀 발견되지않는 균일한 연주완성도를 보여준 원숙미가 돋보인 연주내용으로 프로그램 전반적인
프로코피에프 명연적 구조라 할 수있다. 우선 톤에서 명징함과 우아함이 기본적인 경향에서 한층 프로코피에프의 예외적인 심미성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연주 조형성으로 특히 톤의 미적인 상황, 그리고 구조적인 테크닉의 연계성 균형적인 템포라인 등 이러한 연주완성도에 플러스 알파적 요소가 충만된
명연구조로 그것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언어적인 연주해석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중요한 명작 명연으로 볼 수 있다. 특히 No.8 소나타
Andante dolce - Andante sognando - Vivace에서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정적인 톤, 분명한 안정적인 테크닉 균형적인
템포상황, 가히 피아니스트로서 프로코피에프 스페셜리스트, 메니아 피아니스트임을 여실히 보여준 보기드문 세련된 명연으로 각 악장의 악상기호
표현수준은 상당히 표제적인 표현력이 뛰어난 심미적인 표현으로 단연 프로코피에프적 탁월한 명작명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미
프로코피에프는 현존 어느 피아니스트의 프로코피에프와는 비교되는 연주완성도가 매우 높은 프로코피에프의 또 다른 연주조형미를 감상하기에 충분한 어떤
계기를 제공해 준 중요한 명연으로 그것은 프로코피에프 작품의 숨겨진 서정성과 문학적인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연주 해석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8번이 갖는 전쟁 소나타로서 내면적인 문학적인 요소가 표현된, 프로코피에프 작품성에서 피아니즘의 타악적
요소보다는 연애시적인 우아한 서정 심미성이 강조된 프로코피에프로서 피아니스트 최영미 피아니즘의 표제표현의 차별화의 일면을 볼 수 있다.
프로코피에프 시리즈 오늘의 프로그램에서 프로코피에프가 20세기 비조성적인 개념이 지배적인 작곡가임에도 마치 19세기 낭만주의 시점에 와있는 듯한
서정성 뛰어난 표현성짙은 문학적인 표제성이 돋보인 아름답고 우아한 천상의 프로코피에프, 그의 서정미학의 정점을 보여준 프로코피에프 절대적인
명연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최영미의 피아니스트로서 작곡가에 대한 연구분석 또한 탁월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최영미의
프로코피에프 그것은 감성과 지성을 합리적으로 갖춘 해박한 지적인 연주해석으로 이 시대 앞서가는 피아니스트로서 20세기 러시안 명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라는 걸출한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비교음악학적인 예리한 분석 연주작업 피아니스트로서 한국음악계 대단히 고무적인 연주작업 뿐아니라
음악학자로서의 지적 능력을 갖춘 이시대 또하나의 실력자 피아니스트임을 볼수있는 상황에서 작금의 단편적인 프로그램 연주중심 체제의 콘서트문화에서
벗어나는 제2의 제3의 최영미(집중연주 분석작업) 신드롬이 확대되는 연주공간, 연주문화를 기대하는 바이다. 한 작곡가에 대한 집중분석 연주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현 연주계에 우후죽순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연주의 질적인 면에선 여러층의 차이가 있다. 그런면에서 볼 때 이번 <최영미
프로코피에프 전곡 연주시리즈 II>는 연주 - 해석 - 분석 - 연구 연주행위적 모든 면에서 '더 베스트'라는 훌륭한 평가를 분명하게
보여준 진정 작곡가 프로코피에프 - 피아니스트 최영미 A 포인트 명작명연의 관계로 진정한 감탄사 "최영미 부라보 부라보"와 함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최영미 프로코피에프 전곡시리즈 연주에서 보았듯이 그녀의 뛰어난 프로코피에프 명연. 분명히 수년 내 음반제작 성공리에
완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 박휘암 Piano Recital
▒ P a u l D u k a s(1865-1935)
● prelude elegiaque sur le nom de
Haydn
(하이든 이름에의한 슬픈 전주곡)
● Variations
interude et finale sur un theme de Rameau
(라모 주제에의한 변주곡과 간주곡
종곡)
● Sonata pour le Piano(소나타 1899-1900)
1e mouv. Moderement vite
(1악장 절제된 빠르기로)
● 2e movt. Calme, un peu lent,tres soutenu
(2악장
차분하게-약간느리게-매우 무겁게)
● 3e movt. Scherzo Vivement,
avec legerete
(3악장 스케르조 빠르고 가볍게)
● 4e movt.
Finale tres lent-Anime
(4악장 피날레-매우느리게-활기있게)
●
la plainte au loin du faune
(목신의 요원한 탄식)
● 인텔렉추얼 피아니스트로서 차별화된 세련된 렉쳐콘서트의 표상..
'프랑스 근대음악시리즈(1)'이라는 주제로 폴 뒤카(Paul Dukas)의 작품을 프로그램으로해서 피아니스트 박휘암 피아노 리사이틀이 8월
29일(pm:3)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다. 일반적으로 폴 뒤카하면 프랑스 근대음악 작곡가로 음악사적으로 '마법사의 제자'의 작곡가로 동서고금 잘
알려져있는 프랑스 근대음악의 명 작곡가이기도하다. 그리고 폴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는
명작으로 특히 그 주제 음악의 명성은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히 그 명작성이 평가되는 영원한 우리시대 명작이다. 그러한 프랑스의 근대음악 명 작곡가
폴 뒤카의 음악을 전 프로그램으로하는 피아노 리사이틀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두 가지 감동을 하게된다 그것은 고전, 낭만 우선적인 편협된
한국음악사회 연주계에도 이러한 지성적인 진보적인 차별화된 피아니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 기획하는 피아니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마법사의 제자'의 신드롬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폴 뒤카의 음악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선 피아니스트 박휘암의 폴
뒤카의 연주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폴 뒤카는 전적으로 후기 낭만주의도 아닌 인상주의에 가리워진 음악적인 애매성이 독특한 작곡가로도 음악사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작품에는 인상주의가 숨쉬고 존재해 있다는 것을 박휘암의 폴 뒤카의 프로그램 레퍼토리 전곡 연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피아노 리사이틀의 한 예로 기록된다. 프로그램 폴 뒤카의 ☆하이든 이름에 의한 슬픈 전주곡 ☆ 라모 주제에 의한 변주곡,
간주곡, 종곡 ☆ 4악장 소나타 ☆ 목신의 요원한 탄식에서 이른바 연주 완성도 면에서 볼 때 어떤 썸띵 스페셜이 아닌 퍼펙트 스페셜이라는 평가가
분명한 명연적 상황으로 tone, tech. taste, tempo면에서 피아노 음악의 지식적인 깊이와 내용적인 깊이가 합목적적인 명연의
파노라마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심미적 경향의 연주 조형성으로 특히 제명과 연주표현성이 일치하는 표현적 인상주의개념이 확고한 연주경향, 음향적
색체감에서 보다 표제적인 이미지가 돋보인 심미적인 연주와 해석으로 그것은 인상주의 언어 색채 이미지가 이미 폴 뒤카의 음악에는 내재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명연주 명장면으로서 피아니스트 박휘암의 피아니즘의 지적인 범위와 피아노 아카데믹의 범위를 평가할 수 있는 매우 감동적인
명연으로 분석된다. 특히 폴 뒤카의 대단원적 대작(명작)이라할 수 있는 '소나타'전 4악장에서의 박휘암의 피아노적 지식적인 내재적인 음악적인
파워는 그야말로 폴 뒤카의 피아노 근대음악의 대 서사시 그것이었다. 진정한 부라보를 연발케하는 박휘암의 폴 뒤카 피아노 리사이틀에 대한
총평이라면 그동안 한국음악계의 공통관습적인 레퍼토리 중심의 피아노 리사이틀의 한계를 벗어나는 지식적인 미래지향적인 리사이틀 콘서트 개념으로
레퍼토리의 다중적인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 근래에 보기 드문 박휘암의 지성과 이성이 겸비된 프랑스적 인상주의적 색채가 뛰어난 전형적인
인텔렉추얼한 피아노 콘서트 현장으로 박휘암의 프랑스 근대음악시리즈 폴 뒤카 프로그램, 명실공히 폴 뒤카 - 박휘암의 플러스 알파의 완벽한 명작
명연의 연주 역사를 남겼다해도 과대적 평가가 아닌 사실적인 명작 명연으로 피아니스트 박휘암 프랑스 근대음악 시리즈(1)연주에 대한 진정한
기립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그리고 한국의 진정 실력있는 피아니스트 박휘암 그의 제(2) 근대음악 시리즈에 대한 높은 열망과 기대감이다.
피아니스트 박휘암의 프랑스 근대음악시리즈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동안 한국 피아노 연주계의 공통관습적인 연주 관행이 얼마나 전근대적인 연주문화를
이끌어왔는가를 새삼 인식하며 박휘암의 프랑스 근대음악시리즈 콘서트를 계기로 좀 더 한국연주계의 콘서트 프로그램의 다양성적으로 확대 개선이
요구되는 콘서트 문화 - 프로그램적 레퍼토리의 업그레이드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서울유스오케스트라 & 부르크너
심포니
R.슈트라우스:틸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장난
A.브루크너:교향곡 No.7 E장조
● 유스오케스트라에서 성숙한 성인오케스트라의 모습으로..
일반적으로 안톤 브루크너의 작품 연주와 해석에서 기존 성인오케스트라에서도 그 연주 완성도를 제대로 표출하기에는 쉽지 않은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관현악의 장대함 숭고함을 표현하기엔 어려움이있는 브루크너 관현악적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그것은 감상자, 청중 또한 브루크너
음악을 감상하기엔 보다 많은 정신적인 집중적 노력이 필요한 심오한 철학적인 관현악적 구조를 갖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브루크너 프로그램은
청소년 관현악단 정기연주 레퍼토리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프로그램 구성으로도 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 콘서트프로그램으로 이번 서울유스오케스트라
정기연주에 많은 청중이 관심을 갖는것 당연한 음악문화적 현상인 듯하다. 그럼에도 과연 브루크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청소년 교향악단으로서
서울유스오케스트라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는 부르크너 연주가 끝나기까지 음악평론가로서 첨예한 연주적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적 우려는
기우였음을 브루크너 연주 한 번에 불식시켜준 서울유스오케스트라 연주력 교향악적 음악순발력 지휘적 리더쉽, 모든것에서 놀라움과 감동으로
서울유스오케스트라에 대한 그동안의 연주신뢰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것이 사실이다..우선 프로그램에서 브루크너 연주, 해석에서도 훌륭했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도 상당한 경험적 연주 노하우를 유감없이 보여준 감동적인 호연으로 지휘자 박태영의 음악 리더쉽이 매우 돋보이는 관현악적
교향악적 음향, 연주진행, 연주 조형성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혼연일체적 교감, 연주 소통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지휘와
오케스트라의 합목적적인 하모니로서 근자에 볼 수 없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안톤 브루크너 음악적 환경, 교향악적 음향언어를 고스란히 보여준
연주완성도, 명작명연의 관계를 만날 수 있는 서울유스오케스트라 청소년오케스트라로서 그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빛내 준 신선한 진실된 명연주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다. 재일교포 지휘자 박태영이 지휘하는 서울유스오케스트라 80년대 후반 창립역사가 결코 길지않은 청소년오케스트라로서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연주에서 주목되는 것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아와의 음악적 싸인이 공통적 일치선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관현악적 음향, 색채에서 나타난다. 그 예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겔에서의 관현악 톤의 유려하고 순수한 신선한 음향은
매우 훌륭한 교향시적인 하모니를 이끌어냈고 특히 현악의 미적형상, 아름다움은 오케스트라의 음향적 최적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연주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희성, 유모 해학성을 표제적으로 보여준 호연으로 이른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향적 생명력, 젋음이 약동하는 청순함, 순수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선명하게 그려준 참신한 명작명연으로 그것은 유스라는 어린나이의 오케스트라 음향이라 하기엔 대단히 성숙한 관현악적인 세련된
컬러로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표제성에 부합되는 연주로 청소년오케스트라에선 보기드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연주와 해석으로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 청자에게 즐거움과 해피함을 안겨준 신선한 명연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 부르크너 교향곡 7번
Allegro moderato - Adagio - Scherzo 전 4악장에서의 연주 조형성은 보다 내면적 심오함이 돋보이는 철학적인 진행으로
어느 성인오케스트라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부르크너의 품격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명연구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서울유스오케스트라 부르크너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부르크너 연주 시작 전에 지휘자가 직접 무대에 등장해서 부르크너 교향곡 네악장의
런닝타임동안 연주 중간에 박수치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 맨트가 있었다. 이러한 예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다행히 유스오케스트라
브루크너 연주동안 콘서트 문화의 폐습적인 해프닝이라 할 수 있는 박수공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심포니 연주에서 박수공해가 출현하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지휘자의 음악적인 센스, 세밀한 교육적인 액션에 대해 일반적인 지휘자와는 많이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지휘자 박태영,
그는 지휘자로서 서울유스오케스트라와의 매우 음악교육적인 지휘자로 그동안 음악회장에서의 박수공해에 대한 고질적인 환경문제를 누누히 지적한 바있는
필자로서는 감동이 아닐 수 없는 시간으로 지휘자 박태영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계기가 된 교육적인 콘서트 현장이기도하다. 바라건대 이러한
행동적인 지휘자가 한국음악사회 지휘계 좀 더 많아져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서울유스오케스트라가 음악적으로 성장하게된 어떤
보이지 않는 음악교육의 효과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서울유스오케스트라 오늘의 연주 전반적으로 볼 때 지휘자 박태영과 서울유스오케스트라 뗄레야 뗄
수 없는 바늘과 실같은 존재, 관계임을 여실히 보여준 서울유스오케스라 오늘의 프로그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브루크너 그 진정한 음악소통적인
감동의 명연으로 기록된다.
■ Ars Nova I & II
● Betsy Jolas(*1926) - 벳시 졸라스
라수스
리체르카레(오를란도 디 라수스 재작곡)
● Isabel Mundry(*1963) -
이자벨 문드리
불규칙한(루이 쿠프랭과 함께)
● Jukka
Tiensuu(*1948)-유카 티엔수
앙상블을 위한 이키시트(Ikisyyt)
●
Texu Kim(*1980) - 김택수
게레레(솔로 하프시코드를 위한 운동학)
● Alfred Schnittke(1934-1998) - 알프레드 슈니트케
하이든풍의
모츠-아트(Moz-Art)
● Georg Fridrich Hass(*1953)-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
토르소-Torso(슈베르트 미완성소나타 G장조에 의함)
● Christophe
Bertrand(1981-2010)크리스토프 베르트랑
마나-Mana(2004-2005)
● Unsuk Chin(*1961)-진은숙
첼로협주곡(2006-2008)
● Ars Nova라는 14세기 옛 음악문화, 21세기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진정한 문화소통의 의미를 제공한 아르스노바 I &
II.
'Ars Nova I & II. - 아르스 노바'라는 콘서트 명칭은 한국음악사회 서양음악도입 210여년의 역사에도
콘서트 제명상으로는 다소 생소한 어휘적 의미로 한국음악사회 연주계에선 그동안 거의 만나 볼 수 없었던 콘서트 명칭, 장르이기도하다. 'Ars
Nova'는 14세기 프랑스 Meaux의 주교 Philippe de Vitry 논문 제명으로서 당시에 유럽 지역에서 유행하던 신음악개념의
음악문화 조류로 서양음악사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어쨋든 14세기 용어를 21세기 오랫만에 콘서트 제명으로 접하게되는것 - 아득한 먼 옛시대
문화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자에겐 매우 행복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르스 노바-Ars Nova'라는 콘서트 제명으로 콘서트를 만나게되는것
특히 마음설레이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진은숙 아르스 노바 I & II는 한국음악사회 연주계 작곡계 전반적으로
신선한 음악뉴프런티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작곡가 진은숙의 음악문화적인 작곡문화, 뉴프론티어적 문화진취성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으로 우리시대 음악 뉴프론티어 작곡가 진은숙의 현대음악의 현대음악을 위한 현대음악으로서 음악정신 문화정신의 열정적인 표출이라할 수 있다.
스테판에즈버리-Stefan Asbury지휘, 서울시향오케스트라(SPO) 연주로 <아르스 노바 I & II> 콘서트 리뷰에
있어서 전 프로그램 8곡에 대한 청자(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작곡가의 프로그램 작품배경에 대한 작곡노트를 부분적으로(각주) 인용하기로 한다.
☆벳시 졸라스의 라수스 리체르카레를 보면 16세기 성악곡 칸초나 모테트에서 발전된 기악 음악으로 양식화된 리체르카레 이 곡은 16세기 그
당시 국제적인 작곡가 오를란도 디 라소의 리체르카레를 재작곡한 벳시 졸라의 라수스 리체르카레이다. 리체르카레 라는 어원적 용어가 의미하듯이
16세기 기악음악의 어떤 우아함을 간직한 매우 아름다운 음악의 색과 언어를 찾아내는 매우 아름다운 재작곡 구성으로 류트, 건반음악을 위한
독주곡형태 리체르카레 보다 금관 실내악의 음악의 빛이 한층 돋보이는 리체르카레 조형미로서 리체르카레의 현대적인 미와 16세기 문화의 음악적
대화, 소통의 하모니를 나타내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실내악앙상블(하프, 피아노, 트럼펫, 쳄발로, 타악기 마림바) 리체르카레 명작명연으로
볼수있다. ☆이자벨 문드리 : 불규칙한 (루이 쿠프랭과 함께) : 루이 쿠프랭의 프렐류드를 원곡으로 한 이자벨 문드리의 불규칙한(루이 쿠프랭과
함께) 쳄발로버젼 원곡의 단조로움보다 실내악(바이올린 + 관현악) 버젼의 풍부한 음향에서 오리지널 작품보다 우아함 사색적 철학적 이미지가
플러스된 음악효과로 아르스 노바의 음향적인 새로운 아름다움과 멋을 즐길수있는 고혹적 그윽한 루이 쿠프랭의 음악적 숨결을 21세기 이 시대에
만나보는 감동의 아름다운 아르스 노바 한 장면이다. ☆유카 티엔수의 이키시트에선 금관악의 역동적인 음향에서 유키티엔수의 이키시트(신화적 근원)을
찾아나서는 어떤 현대 음향적인 근원 유토피아를 이끌어내는 현대음향적인 액센트가 대단히 강렬한 작품으로 서울시향 오케스트라연주 또한 그러한 강력한
소리와 표현에 접근하는 매우 이례적인 역동적인 서울시향 오케스트라 호연으로 21세기 현대음악의 모더니즘 문화적인 전형을 보여주고있다. ☆김택수의
독주 하프시코드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에서 우선 김택수는 중앙콩쿨 작곡부문 2, 3위 없는 1위(2006)로 서울대 화학과 전공후 작곡과를
전공한 화학도로 김택수 그의 게레레에서도 어떤 과학적인 수학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상당히 치밀한 분석력을 갖는 작품으로 김택수의 천부적인 음악성이
지배적인 신세대 작곡가로 향후 그의 작곡 향방이 매우 주목되는 젊은 작곡가의 수작으로 수학, 과학, 철학, 현대음악적 모든 요소가 융합된 진정
복합예술 음악학적 작품으로 피아노 쳄발로 줄띁는소리 모든 음악적 소리로도 해석되는 소리의 운동학이라는 표제적 개념으로도 의미 부여할 수 있는
대단한 스케일, 강력한 클러스터적구조에서 현대음악의 어떤 환상, 묘미, 쾌락적 요소를 음미해 볼 수있는 전형적인 현대음악적, 음향적 카리스마가
팽배한 대작으로 김택수의 게레레에서 제2의 진은숙, 볼프강 림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아르스 노바를 통해서 [김택수]라는 한국
현대음악계에 중요한 작곡가를 발견하게된 셈이다. 김택수 그의 무한한 작곡에너지를 기대한다.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하이든 풍의
모츠-아트(Moz-Art)는 모차르트의 미완성 무언극 사육제 선율, 러시아 동요 선율을 차용해서 하이든 심포니 45번 '고별'풍으로 퍼포먼스를
재연한 슈니트케의 하이든풍의 모츠-아트는 하이든 - 모차르트 - 러시아동요 - 현대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아르스 노바로 18세기 과거시대와
20세기 현대의 음악적 문화적 소통을 시도한 다중적인 아르스 노바의 대표적인 예로 시향 앙상블 연주 또한 아름다운 모차르트 선율과 러시아 동요가
세련되게 어우러진 실내악 연주로 하이든 풍의 퍼포먼스적 음악미적 효과가 매우 인상적인 슈니트케 - 서울시향의 명작 명연으로 평가된다.
☆슈베르트/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 : 토르소(Torso) - 슈베르트 미완성소나타 피아노 G장조에 의한 이 작품을 통해서 슈베르트라는 작곡가의
전통낭만적인 이면적인 면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슈베르트가 생존 당시엔 상당히 실험적인 작업에 참여했고 다수의 미완성
작품이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은숙 -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의 음악문화적, 현대음악적 정체성이 평가되는 시점에서 그것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원곡보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의 오케스트라 버젼에서 슈베르트의 또 다른면을 발견하게되는 하스의 토르소에서 슈베르트가
단순한 서정성 성향의 순수 서정파 작곡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서 새삼 인지하게되는 시간으로 관현악 버젼의 광대한 스케일에서 하나의
피아노 소나타가 거대한 교향곡으로 다시 태어나는 감동의 현대 오케스트레이션의 강렬한 음향에서 서울시향의 근래 보기드문 슈베르트 호쾌한 현대
명작명연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하스의 슈베르트 편곡 진행 배열에서 4악장 체제의 장대한 토르소로 변신한 C장조 소나타의 격정과 서정, 현대와
낭만이 공존하는 슈베르트 전통적인 케릭터가 생동적으로 움직이는 역동적인 서울시향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과거의 슈베르트를 다시 현대로 부활시키는
미완에서 완성으로 역동의 슈베르트 토르소를 이시대로 이끌어내는 슈베르트-하스의 합목적적인 진정한 아르스 노바의 음악정체성의 구현으로 특히
현대오케스트라 음향, 연주에서 편작곡의 의미를 보다 새롭게하는 매우 훌륭한 이번 아르스 노바의 하일라이트로 평가된다. 그리고 ☆크리스토프
베르트랑의 마나(Mana)에서 "마나는 운동에너지에서 생겨난다.그 에너지가 더해지고 배가되어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작곡가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작곡 과정의 어떤 초능력 초월적인 에너지 힘이 배출되는 엄청난 음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는 굉음적인
표현에서 현대음악으로서 언어와 성격이 다채로운 음의 표면장력이 강한 작품구조에서 관현악, 타악의 현대적인 음향캐릭터가 강렬, 지배적인
작품특성으로 오케스트라 연주 또한 그에 준하는 긴장감 넘치는 빌투오소적인 격동적인 연주로 볼수있다. ☆진은숙의 첼로협주곡에서, 진은숙의
작곡노트에 의하면 빌투오소에 대한 어떤 시니컬한 반감을 갖어온 작곡가로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연주자를 찾는 대상에도 그러한 빌투오소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보인다. 그러한 예가 이번 '아르스 노바 II'에서 진은숙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게된 알반 게르하르트 선택배경에서 나타나고있다.
그렇다고해서 빌투오소가 아닌 연주자를 선별한다는것은 아니지만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첼리스트는 아니되 그야말로 첼로에
있어서는 내로라하는 연주실력을 겸비한 뛰어난 첼리스트임을 이번 진은숙 첼로협주곡에서 볼수있었다. 왜 진은숙이 그토록 알반 게르하르트 그에게
연주해 줄것을 간청했는가를 알반 게르하르트 그의 진은숙 첼로 협주곡을 통해 잠재된 연주력을 명쾌하게 보여준, 특히 현대적 테크니컬에서 탁월한
연주로 진은숙 첼로협주곡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서 작곡가의 작가적 염원이 반영된 연주조형으로서 진은숙 작품에 대한 가장 잘 준비된 첼리스트가
아닌가한다. 결과적으로 작곡자와 연주자의 음악적인 옵티머스가 최적의 상태에 있는 동과 서양의 문화소통의 한 마당으로 진정한 아르스 노바의
문화적인 미학을 역학적으로 실현한 진은숙 - 알반 게르하르트 명작명연의 관계로 볼수있다. 특히 아르스 노바(Ars Nova)라는 언어학적 의미와
표제적 해석이 뛰어난 작품, 연주로는 벳시 졸라스-라수스 리체르카레, 이사벨 문드리-불규칙한(루이쿠프랭과 함께), 알프레드 슈니트케-하이든풍의
모츠-아트, 게오르크프리드리히 하스-토르소에서 과거와 현대의 진정한 음악소통문화가 실현된 해피 명작명연, 아르스 노바-Ars Nova로
평가된다.
Ars Nova - 아르스 노바 콘서트는 2006년에 서울시향, 진은숙 상임작곡가 감독, 참여하는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장르와 전통적인
클래식 장르를 소통의 문화로 이끌어내는 콘서트 문화작업으로 출발해서 한 해에 봄, 가을 시즌으로 두차례 콘서트가 진행된다. 처음 출발시점부터
아르스 노바라는 14세기 음악문화의 신선한 문화적 신드롬을 일으켜온 아르스 노바, 이제는 어느정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Contemporary
- 현대음악의 친구처럼 가까이있는 음악문화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친숙한 문화로 자리할 것을 기대하며 진은숙
아르스 노바 I & II 총평이라면 우선 콘서트 타이틀에서 음악문화적으로 보다 신선한 이미지를 주었고 진은숙만의 콘서트 문화적 아이디어,
소프트웨어적 레퍼토리가 매우 좋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르스노바 프로그램 진행면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없는듯 한 짜임새있는 구성과 진행으로
돗보이는 현대 고전의 조화로운 콘서트 문화의 의미있는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음악문화적으로 청자에게 관심을 부여한 프로그램은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에 대한 프레콘서트 - 렉쳐콘서트(해설연주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음악 소비자 청중에게 현대음악을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게하는 중요한 음악교육차원의 프로그램으로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중요한 계기가 되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르스
노바가 갖는 콘서트 문화적 경쟁력, 지식문화적인 경쟁력은 매우 탁월한 문화경쟁력으로서 현재 한국음악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콘서트 문화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아르스 노바의 컨서트문화 경쟁력부분은 프로그램, 연주는 물론 프로젝트 자체가 탁월한
경쟁력이고 프로그램 카탈로그 디자인 면에서도 'Ars Nova'라는 타이틀에 부합되는 문화적, 환경시각적으로 뛰어난 경쟁력의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경쟁력면에서 출충한 콘서트문화는 미래 시대로 갈수록 콘서트 문화적인 경쟁력은 국가경쟁력의 필수요건으로
이른바 이젠 콘서트문화 경쟁력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필자가 제기한 바 있는 "음악회(Concert) - 공연문화 이젠 경쟁력으로
존재한다."라는 '음악평론가 여세실 음악론'이 다시 한 번 컨서트 문화론적인 설득력을 얻고있다. 'Ars Nova-아르스 노바' 14세기 옛
문화와 20세기 현대문화의 교집합 관계에서 과거시대와 현대 서로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어떤 소통의 관계에서 보다 아르스 노바의 문화는
현대사회에 보다 긍정적인 문화발전이 이루어질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현대와 14세기 전후 문화의 소통관계적 의미에서 진은숙 아르스 노바 I
& II는 비교적 성공적인 콘서트문화로 음악소비자, 청자의 관심과 열정이 어느 콘서트에서 보다 뜨거웠던 아르스 노바 콘서트 현장으로
현대음악 Contemporary 문화를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준 의미있는 문화 환경적인 콘서트로 부각된다. 이번
진은숙 아르스 노바 콘서트에서 보았듯이 청중과의 클래식 현대와의 문화적인 소통관계가 매우 우호적인 면을 보았듯이 앞으로 아르스 노바 콘서트
문화에서 클래식음악 르네상스 활성화 작업에도 매우 희망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진은숙 아르스노바가 갖는 컨서트 문화적인
차별화 경쟁력이라면 무엇보다도 작곡자 자신이 프레 컨서트 - 렉쳐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것이다. 이 렉쳐 프로그램(해설음악회)은 아르스 노바
콘서트 문화의 중요한 플러스 알파적인 차별화로 그것은 클래식 음악교육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아르스 노바의 플러스 알파, 베타적인 프로그램으로
음악문화적으로나 지식문화적인 교육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언급한대로 여러가지 면에서 진은숙 '아르스 노바 - Ars Nova'는 이 시대의
이상적인 콘서트 문화프로그램으로서 이른바 문화경쟁력면에서 차별화된 문화선진적 문화컨서트, 컨서트 문화의 리더로서 한국음악사회 콘서트 공연예술문화
전반에 콘서트 문화의 표본적 모델로서 자리할 것이다.
["콘서트 문화, 이젠 경쟁력으로 존재한다"] 라는 주제에 부쳐서 한국음악사회 과거에서 현재 진행중인 음악제, 콘서트 관련해서 비교적
문화적 경쟁력이 탁월한 콘서트-음악제를 대상으로 {1988년-新 쮜리히신문, 2010년 11월~~2011년 5월까지
http://blog.chosun.com/minuette에 게재된 콘서트리뷰 문헌자료} 그와 연관된 콘서트 리뷰를 중심으로해서 문화경쟁력적인
존재론의 가치, 중요성을 분석해보았다. 하나의 콘서트, 예술공연문화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선 어느 시점, 봄부터.. 라는 어느 일정시기
부터가 아니라 사시사철 늘 갈고 닦는 준비하는 태도, 끊임없는 CULTURED-문화배양 그리고 Something Special 문화정신, 이
시대 절대적인 문화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사실, 21세기 예술 문화론적인 결론이다.
■ 여세실(음악평론가 *
한국음악평론가협의회) ■
ⓐ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 프랑스의
대표적 근세철학자. 방법적론적 회의를 거쳐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원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틴어: Cogito ergo
sum / 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의 명제를 선언하여 근대 이성주의 철학의 정초를 닦았다. 수학자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방정식의 미지수에 x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 x는 필기체)
ⓑ 코기토(cogito ergo sum) : 프랑스 근세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사상으로 [Je
pense, donc Je suis - 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코기토-cogoto'는
라틴어[cogito ergo sum]을 의미한다.
ⓒ Pan Music Festival(판 음악제):1969~72년 서울대학교
강석희 교수를 중심으로 창립된 현대음악축제로 Pan은 '범(凡)'이라는 어휘개념의 광범위한 음악장르를 일컫 는 명사어이다. 판뮤직 페스티벌은
창립이래 한국음악사회에 Contemporary 문화 현대음악-모더니즘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업적을 평가받는 음악제로 이 음악제를 통해서
볼프강림, 게오르그 리게티를 비롯 국내외 유수의 명 작곡가, 연주자들이 소개된 바 있다. 특히 판음악제로 유명해진 한국인 작곡가로는 진은숙,
이영희, 강석희, 이만방, 김정길 전상직 등 한국의 유명 작곡가를 배출해 낸 PAN MUSIC FESTIVAL-판
음악제이다.
ⓓ 폴 뒤카(Paul Dukas, 1865.10.1 ~ 1935.5.17) 프랑스의 작곡가 겸 교수이자
평론가. 파리음악원,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교편을 잡고, 평론활동 외에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교정, 편곡하였다. 대표작으로는《마법사의
제자》,《아리안과... 더보기 원어명 Paul-Abraham Dukas | 국적 프랑스 |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 교사, 평론가.
14세부터 음악을 독학으로 시작하여, 17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 피아노를 마티아스, 화성학을 테오도르 뒤보아, 작곡..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7.20~1374.7.19)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인문주의자. 교황청에 있으며
연애시를 쓰기 시작하는 한편 장서를 탐독하여 교양을 쌓았고 이후 계관시인(桂冠詩人)이 되었다. 성아우구스티누스와의 대화형식인 라틴어 작품《나의
비밀》을 집필하였고, 이탈리아어로 된 서정시 《칸초니에레》로 소네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주요작품 《나의 비밀:De secreto
conflictu curarum mearum》(1342∼1343) 토스카나주 아레초 출생. 아버지 페트라코로는 피렌체의 서기였으나,
귀족옹호파인 흑당(黑黨)으로부터 추방당했으므로 페트라르카는 망명지에서 태어났다. 1311년 피사로 이사하였으며, 그 후 아비뇽으로 갔다.
몽펠리에 및 볼로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아비뇽으로 돌아가 교황청에서 직업을 얻었다. 여기서 시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연애 경험이었다. 1327년 성키아라 교회에서 라우라(Laura:?∼1348)라는 여성을 만나 연애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평생 그녀의 모습을
노래하였다. 30세를 넘길 무렵 그에게 예술적 성숙기가 찾아와 1337년 라틴어 서사시
《아프리카 Africa》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같은 해 로마의 여행에서 자극받은 고대에 대한 애착이 성숙해졌다. 현실 사회에 대한 혐오에서
이상으로 하는 고대의 연구였다. 여기서 이 시인의 인문주의의 밑뿌리를 받견할 수 있다. G.보카치오도 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며, 이후 두
사람의 우정은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기본적인 것을 형성하였다. 1341년 로마에서 계관시인(桂冠詩人)의 영예를 안았다. 이듬해 프로방스에서 그의
사생아가 태어나 주교(主敎)였던 그의 동생 게랄도의 개입으로 그에게 정신적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에 성아우구스티누스와 대화형식으로 자기의
고민을 고백한 라틴어 작품 《나의 비밀 De secreto conflictu curarum mearum》(1342∼1343)을 집필하였다.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는 '라우라'라는 여성을 대상으로한 페트라르카 연애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르네상스
이후, 이태리 마드리갈을 비롯,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를 가사로해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있다. 리스트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또한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를 소제로한 음악사적으로 피아노 음악의 명작으로 기록된다.
ⓕ 아르스 노바 [Ars Nova] 14세기
프랑스음악 전반의 새 경향. '새로운 기법' '새로운 예술'의 뜻으로, 원래는 1320년경 프랑스의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1291∼1361)가 저술한 음악이론서의 제명이다. 13세기의 유럽음악인 '아르스 안티콰(ars antiqua : 낡은 예술)'에
대비하여 14세기의 새로운 기보법을 서술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기욤 드 마쇼이며, 그는 론도·비를레·발라타·카차 등의 세속
다성(多聲)가곡을 작곡하여 인간적·감각적인 숨결을 느끼게 하였다. 부르고뉴의 뒤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 1291년 10월 31일~1361년 6월 9일)는 프랑스의 작곡가이며 이론가이다. 본는 성직자로
1351년에는 모의 주교(主敎)가 되었다. 약간의 모테토 작품과, 정량음악 및 대위법에 대한 이론적 저작이 있다. 후자를 수록한 이론서의 책명
'아르스 노바'에 유래되어 14세기의 다성음악(多聲音樂)에서 의 새 경향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노트르담 악파로부터
13세기까지를 아르스 안티쿠아라고 한다.
ⓗ 루이 쿠푸랭-Louis Couperin : Fransois Couperin(1688~1731)
가계의 선대 작곡가로 16세기 프랑스 빠리에서 활동한 요절한 천재작곡가로 알려진다. 그의 탁월한 쳄발로 빌투오소능력은 사후에도 오랫동안 전설로
전해지고있다. 그가 남긴작품 중 일부는 직접적으로 그 작곡형태를 전해주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속기로만 전해지고있어 쳄발로 능력이 있어야만
해독이 가능하다. <박자없는 전주곡> 역시 푸가풍의 중간부분만 정확히 기보되어있다. 주요 부분에선 오직 음들만 쓰여있고 어떤음들이
지속되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음줄만 표시되어있다. 이 자료는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며 이것으로 창조적 대결을 해보도록 많은이 들을
유혹한다.
ⓘ 리체르카레 [ricercare] : 16, 17세기의 여러 가지 형태의 기악곡 명칭.
이탈리아어(語) ‘탐구한다’는 뜻의 동사 ricercare가 어원으로, 이 말은 의미가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우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푸가의 전 단계를 이루는 모방적 기악곡이다. 모방적 리체르카레는 르네상스시대의 성악 모테트양식을 기악에 적용한 것으로부터 시작,
모테트와 같이 여러 가지 주제의 모방적 처리를 중요한 특징으로 하였다. 여기에는 기악합주용과 오르간용이 있는데, 전자는 가사가 없는 모테트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며, 후자는 16세기 중엽부터 성악 모테트양식에서 탈피, 독자적인 기악형식으로 발전하였다. 16세기에는
다주제(多主題) 리체르카레가 지배적이었으나, 17세기에는 단일주제로 바뀌는 경향을 보여 변주(變奏) 리체르카레 형식이 프레스코발디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 후 단일주제의 유기적 전개와 명확한 형식구조가 발달, 푸가로 이행한다. 18세기에도 리체르카레라는 명칭이 쓰이나
‘고식(古式)푸가’의 의미밖에 없다. 16세기에 전술한 유형과는 달리 연습곡 또는 자유스러운 양식에 의한 즉흥적 성격의 곡에도 리체르카레라는
명칭이 쓰인 경우가 있다. 리체르카레의 전성기는 16, 17세기였으나 20세기가 되자 신고
전주의적 풍조(新古典主義的風潮) 가운데 부활되어
말리피에로, 카젤라, 마르티누,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 토르소(TORSO)토르소 [torso] 목·팔·다리 등이 없는 동체만의 조각작품. : 머리가 있는
토르소 / 부르델의 작품. 인체의 구간(軀幹), 몸체[胴體]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연유된 조각용어이다. 그리스·로마의 유적에서 발굴된
토르소에 조각으로서의 미를 인정한 근대의 조각가들은 토르소에 의하여 인체의 미를 상징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조각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팔·다리나 목이 없는 몸통의 조각은 미완성 작품이 아니다. 더욱이 토르소의 미를 순수화하기 위하여 목이나 팔·다리를 생략하고 인체미의
상징적인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 게레레(GERERE) : "게레레(gerere) : 라틴어 동사 gerere는
지니다, 처신하다, 자신속에 포함하다, 밖으로 들어내다 등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 동사어로, Ars Nova Concert 에서 발표된
김택수의작으로 작품명은 [독주하프시코드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이다.
ⓛ 벳시 졸라스-Betsy JOLAS(1926~*):프랑스 빠리출생, 1940년부터 1946년까지
미국에서 작곡과 피아노 교육 이후, 프랑스 빠리고등국립음악원에서 다리우스 미요, 올리비에 메시앙 등을사사하여 아방갸르트적 경향을 서정적인 자극과
결합시킨 성악곡 작곡에 몰두했다. 그녀의 작품은 윌리엄 크리스티, 클로드 엘페로, 켄트 나가노 킴 카쉬카쉬안, 앙상블 앵떼르콩탕포렝,
런던심포니에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연주자, 연주단체에 의해 연주되고있다. EMI, 에리로 등의 레이블에서 음반이 출시되었다.
탱글우드, 하버드, 예일, 밀스컬리지, UC.버클리, USC 등에서 강의했고 그라모폰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이자벨 문드리-Isabel Mundry(1963~*):독일출신 작곡가, 베를린 에술대학에서 작곡을,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전자음악, 음악학. 역사학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한스 첸더문하에서 수학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강의했고 빠리의 이르캄에서도 연구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첫 상임작곡가로 임명되었고 통영국제음악제, 루체른 훼스티벌, 만하임 국립극장
상임작곡가로 활동, 그녀의 작품은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Breitkopf & Hartel)에서 출판되고있다.
ⓝ 유카 티엔수-Jukka Tiensuu(1948~*):핀란드 작곡가, 하프시코드, 피아니스트,
지휘자로 활동,그의 레퍼토리는 바로크부터 존 케이지, 즉흥음악까지를 자유자제로 넘나든다. 재즈, 바로크음악, 대편성관현악, 독주악기를 위한
전자음악도 작곡, IRCAM과도 공동작업을 하고있다. 그의 작품은 아르디티4중주단 카리크라쿠 앙상블, 앵떼르콩탕포렝, 유카페카사라스테등에 의해
연주되고있다.
ⓞ 김택수-Texu Kim(1980~*):서울과학고, 서울대화학과 졸업후 동대학 작곡과에 입학하여
전상직, 서정은교수 문하로, 2006년부터 서울시향주최 진은숙 상임작곡가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 진은숙 작곡가 문하에서작곡활동, 고학도로서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 수상한 바있고(1988), 중앙음악콩쿨에서 2.3위 없는 1위(2006) 국제 윤이상작곡상에서 중앙일보 특별상을
수상(2009), 2010년 월간 객석이 선정하는 공연예술계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 1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 알프레트 슈니트케-Alfred Schnittke(1934~1988):러시아 작곡가로 모스크바에서
수학, 동음악원 관현악강사로 활동했고 클래식음악 이외에도 60편이상의 영화음악 작곡가로서도 왕성한 작곡활동, 다양식으로 주목되는 광범위한
장르스타일의 작품을 지니며, 특히 콘체르토 그로소(제1번 1977)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되었다. 특히 슈니트케 작품중에는 기돈크레머나 유시
바슈메트, 나탈리아 쿠트만, 므스티브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뛰어난 연주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된 작품들이 많다 9개의 교향곡, 6개의
콘체르토그로소 4개의 바이올린협주곡, 2개의 첼로협주곡, 다수의 피아노협주곡,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3중협주곡을 비롯 4개의 현악4중주곡
등 다양한 실내악곡, 발레음악, 합창곡, 성악곡을 남기고있다.
ⓠ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Georg Friedrich Hass(1953~*):소리와 화성을 제한하는
평균율에 한계를 느끼고 배음과 소리의 분석적으로 다루며 미분음과 비전통적 조율을 통한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고있다. 소리의 내부세계를 탐구하는
창의적 연구자로 알려져있다. 뒤파이, 멘델스죤, 스크리아빈에 대한 독창적인 편곡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비엔나 모데른, 베니스 비엔날레
등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연주되고있다.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바젤국립대학에서 강의, 오스트리아의 파쉬바흐 시골집에서 작곡작업.
ⓡ 크리스토프 베르트랑-Christophe Bertrang(1981~2010):프랑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 1996년부터 스트라스부르크 음악원에서 이반 페델레 문하에서 작곡수업, 이반 페델레, 파스칼 뒤시팡, 볼프강 림 등과 같은 깊은
음악적 교류, 그의 작품은 조나단 노트, 마르크 알브레히트, 등의 지휘로 앙상블 앵떼르콩탕포랭, 아르디티 4중주단, 스트라스부르크오케스트라
등에의해 연주되었다. 앙상블 앵땡콩탕포랭, 루체른 훼스티벌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본 베토벤 페스티벌,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 스트라스
부르크오케스트라 등에서 작품 위촉받는 작곡가로서 29세의 젋은 나이로 요절.
ⓢ 진은숙-Unsuk Chin(1961~*):서울대학에서 강석희, 1985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1988년까지 죄르지 리게테에게서 사사, 2001년 도이체 베를린심포니 초빙작곡가로 위촉되어 작곡한 바이올린협주곡(2002)으로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 이듬해에는 생존 작곡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아놀드 쇤베르크 음악상을 수상했다. 진은숙의 작품은 전세계의 수많은 페스티벌과
콘서트무대에서 연주되고있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생황협주곡(2009)>, <첼로협주곡(2009)>,
<로카니(2008)>,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 <칼라 (2005)>,
바이올린협주곡(2002), 앙상블과 전자음악<씨>(1997-98), <기계적환상곡(1994)>, <말의 유희
(1991~93)> 등이있다.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로 활동. 진은숙의 작품은 세계최대출판사 부지앤혹스(Boosey &
Hawkes)에서 독점출판되고 있다.
ⓣ 벳시 졸라스의 라수스 리체르카레 : "이 작품은 오르란도 디 라수스의 테마와 페시지로 구성된 하나의
음악극이라 불릴 수 있다. 작곡가자신은 이 곡을 라수스의 전체 작품에 대한 항공사진에 비유한 바있다. 때로는 어느 하나가 때로는 다른 하나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관악기들은 16세기의 앙상블 음향을 연상시키지만 타악기와 피아노는 오히려 라수스-변장놀이를 하던 "어린애같은 즐거움"을
떠올리게한다. 이곡에 나오는 모든 음은 라수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라수스느 결코 이 곡을 쓴적이 없다. 이는 제목의 이중적 의미에서도 드러난다.
리체르카레에서도 그 당시 최고로 정제된 예술형식이었으므로 제목은 리체르카레라 붙여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졸라스가 붙인 이름은 <라수스
리체르카레> 리체르카레의 원 뜻이 찾다, 탐색하다, 선택하다 임을 떠올려보자. 작곡을 하는동안 벳시 졸라스는 자신만의 라수스를
발견했던것이다." <벳시 졸라스 - [라수스 리체르카레] 작곡노트 인용>
ⓤ 이사벨 문드리 : 이사벨 문드리는 자신의 앙상블곡<흔들거리는 시간>1악장에 루이 쿠푸랭의
<박자없는 전주곡> 12개 중 하나를 가져다 곡의 토대로 사용했다. 이때 그녀는 여러 관점에서 이들을 해독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내어
변형시켜야만 했다. 맨먼져 쿠푸랭의 필사본들에서 여러 판본들 중 하나를 가져다놓았다. "나는 마치 쳄발로 주자인양 음악내적인 표시들을 따라가며
이 음악의 내적 구조에 부합하는 리듬을 찾아갔다. 그 다음 단계는 쳄발로의 음향을 17개의 악기로 구성된 실내앙상블의 것으로 옮겨놓는 일종의
편곡 작업이었다. 직접 만지고 느끼는 과정이 지난 후, 다음 단계에서는 이 역사적 모델에다 나 자신의 고유한 작곡 관점을 부여했다. 그렇게 하여
역사적으로는 뚜렷이 들여다 보이지만 텍스트나 음향면에서는 쿠푸랭을 멀게도 가깝게도 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탄생했다." 이렇게 두 시대 오늘과
과거는 흡사 시대의 천칭처럼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균형감으로 서로 소통하고있다. <이사벨 문드리 - [불규칙한 (루이 쿠푸랭과 함께)]
작곡노트 인용>
ⓥ 유카 티엔수 : 이키시트 :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나는 악곡에서 나타나는
음악현상이 음악적 매개변수들의 조합으로 체계적으로 기술되고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나는 그 역명제의 성립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있다.
즉, 음악을 음악을 만드는행위 - 내게 있어서는 작곡-가 그 음악적 매개변수의 통제를 통해 실현가능한지 그렇다면 어떻게 얼마나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있다. 이번 작품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위한 첫번째 연구로 나는 문제를 단순화하여 접근 하기로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음악적 선분(양 끝이 있는선, 또는 시작과 끝이 있는 선 선적인 움직임)을 모티브로 선택하였는데,(음악에 있어서 선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이는 선분이 비교적 단순하게 매개변수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고 따라서 통제 역시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음악적 선분은
이곡에서 알페지오 음계 글리산도 등의 제스쳐들을 통해 구체화되며, 이런 점에서 이 곡은 제스쳐에 대한 연구로 전환된다.." <유카 티엔수
- [이키시트] 작곡노트 인용>
ⓦ 김택수의 게레레(gerere) : "게레레(gerere) : 라틴어 동사 gerere는 지니다,
처신하다, 자신속에 포함하다, 밖으로 들어내다..등 여러의미로 해석된다. 그 동사의 과거분사에서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움직임이라는 뜻의) 제스쳐 라는 단어가 나왔다. 김택수의 게레레는 그 하나의 제스쳐로 시작한다. 상행하는 움직임의 제스쳐는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 음들을 지니고있다. 그 음들은 여운을 남겼다가 잠시 사라진다. 곡의 기초가 되는 이사건은 다른 많은 속성들과 가능성들을 내포하고있다. 이
제스쳐에는 방향과 크기도있는데 방향은 뒤집어질수있고 크기도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 둘다 변화가 가능하다. 이 제스쳐 또한 특정템포로
움직이며 어느정도 시간을 채우는데그 과정에서 방향과 크기는 확장되거난 촘촘해지기도하고 트레몰로까지 빨라지거나 정적으로까지 느려지기도한다. 하나의
선적인 형태가 전체 음향으로 융합될 수도 있고 전체음향이 선적형태로 변화될 수도 있다. 하나의 클러스터(음향덩어리)에서 한음이 뽑아져나와 다른
클러스터가 되는 '빼나가는(substractive) 선율'이 만들어진다. 사건들은 서로 결합되고 몇배 늘어날수도있지만 축소되기도하고 서로
맞물리면서 차례로 해결되어갈수도있다. 이 모든 일들이 독주하프시코드 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kinematics>에서 벌어진다. 이때
역사적인 방법들과 변화된 전제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아래 위가 뒤바뀌는 가치의 전도, 뭔가가 뒤로 읽히는 역행, 개별진행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전체 사건을 만들어내는 폴리포니, 아주 제한된 원 재료에서 하나의 작품을 발전시켜 가는것은 브람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용되는 작곡의 기본원리보다 작곡가 김택수의 시도를 통해 이런 전통적인 방식은 변화된 의미를 얻게되었다". <김택수-[독주하프시코드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 작곡노트 인용>
ⓧ 알프레드 슈니트케 : 하이든 풍의 모츠아트(Moz-Art) : "1783년 모차르트는 사육제
무언극에 붙일 곡을 썼다한다 그런데 남아있는것은 오직 제1 바이올린성부 뿐이었다. 알프레도 슈니트케는 기돈 크레머가 이곡을 무척 연주하고싶어
했음을 기억해냈다. "그에게 (그리고 그로인해 내게도 역시) 이곡은 어떻게든 끝내야하는 것이었다. 이곡은 아주 가벼운 코메디아 텔라르테풍의
모방이며 끝나는건 러시아의 어린이 설날 노래이다.(..) 여기서 아름다운것은 진짜 모치르트의 테마를 그대로 가져다 쓴것이고 추한 것은 (테마를
비틀어 겹쳐놓거나 모든 페이지에 불협화적인 삽입구를 집어넣은식으로) 내가 만들어붙인것이다. 요즘 우리가 그렇게 끔찍하니까" 그렇다면 여러양식을
넘나들며 유머로 가득한 모치르트를 편곡하면서 하이든이 찾은것은 무엇일까? 그는 언젠가 고별이라는 아이디어에 독특한 형상을 부여한적이
있었지." <알프레드 슈니트케 - 하이든풍의 모츠아트(Moz-Art) 작곡노트 인용>
ⓨ 크리스토프 베르트라낭 :
마나(Mana) :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에게 '마나'는 이간이 자연 어디서나 마주하게되는 초인간적인 힘을 뜻한다. 그것은 특정 존재와
사물에 내재해있으며 원주민들이 이들의 강력한 물리적 힘을 이용해 다른것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의 초자연적 능력은 신성함괴 신비함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전사들이 잔인한 의식을 몰두할때 얻고자 찾아다니는 일종의 전류처럼 활동한다. 그러니까 마나는 에너지의 형태로 흐르고있는
것이며 이것이 곡의 작곡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을 오케스트라 곡이라 부르는 것은 그리 적절치 않다. 차라리 77명 음악가를 위한 곡 혹은
거대한 규모의 실내악곡이라 말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성부들이 극단적일 정도로 빌투오소하게 다뤄지고있기 때문이다. 곡은 마치
집단적인 광란이 벌어지듯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않고 내달린다. 음향면이나 음향블록을 구성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마나>에서 모든
악기주자들은 독주자처럼 연주할 것을 요구받는다. 각 파트의 어려움은 결코 외적인 효과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은 이작품을 관통하는 의도된
광란에 모든 참여자들이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데 있다." <마나>는 운동에너지에서 생겨난다그 에너지가 더해지고 배가되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 에너지는 빠른 움직임, 제스쳐, 속도, 활기찬 리듬으로 축적된다. 작곡가는 말하길 화성적으로 볼 때
<마나>는 나의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다. 게다가 악기를 타악기로 둘러싸인 두 그룹으로 배치함으로써 음들이 공간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닐 수 있게되었다..
<크리스토프 베르트낭 - [마나] 작곡노트 인용>
ⓩ 진은숙 : 첼로협주곡 : "진은숙의 첼로협주곡에서는 세개의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 그 하나는
그녀의 어린시절, 기억속에 남아있던 판소리이고 유럽에서 사회적 이상에 맞서는 근대적 개인의 부상을 보여주는 독주협주곡이라는 장르이며 나머지
하나는 함부르크 음대시절 그녀의 스승이었던 죄르지 리게티이다. 19세기 독주협주곡은 전적으로 예술적 자기표현의 매체였다. 거기서는 항상 위대한
빌투오소들이 사건의 중심에 놓이며 그것을 지베해왔다. 수많은 청중의 박수갈채는 그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했고 그들의 음악적 파트너들은 그 연후에야
대접을 받았다. 진은숙은 이처럼 화려한 거장성과는 정반대 지점에서 자신의 첼로협주곡을 시작한다".. <진은숙 - [첼로협주곡] 작곡노트
인용>
◎ 김춘미 : 음악평론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론>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음악학> 교수 역임.
◎ 여세실 : 음악평론가. <한국음악평론가협의회> 음악이론, 음악학, 프랑스어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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