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예술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가곡>

미뉴엣♡ 2015. 7. 13. 11:59
♡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歌曲 ♡    2015/04/02 15:27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가곡'을 아시나요?

늘 새벽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가곡(歌曲)', '대목장', '매사냥' 등 3종목이 마침내 등재됐다고 합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01년에 처음 등재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모두 11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가곡 연주 장면(출처 : 가곡전수관)
 
그런데 이 사실을 생뚱맞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일 겁니다. '그리운 금강산'이나 '비목'처럼 음악시간에 불렀던, 그리고 가끔 KBS 열린음악회 때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 입은 성악가들이 부르는 가곡이 대체 어디가 대단하다고 인류무형유산으로까지 등재되느냐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등재된 가곡은 이처럼 서양 곡조와 발성에 우리 말을 붙인 어정쩡한 음악이 아니라 적어도 천년은 넘게 이 땅에 이어 내려온 우리의 전통 성악곡으로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가곡은 고려가요인 '진작(眞勺)'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불렸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곡의 흐름을 잘 정리해놓은 것이 바로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웠던 '청구영언'(1724)과 '해동가요'(1769), 그리고 '가곡원류'(1876) 등의 가집입니다.

 

가곡을 소개하는 짧은 다큐멘터리
가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인들이 '풍류방'에 모여 즐기던 노래입니다. 이 풍류방에서 주로 연주된 기악곡이 바로 '영산회상'이고, 성악곡이 '가곡'이었던 것입니다. 19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가곡만을 특별히 '노래'라 칭했고, 그밖에 성악곡은 '소리'라고 하여 구별을 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판소리, 서도소리 등이 대표적이죠?. 이처럼 가곡에만 유독 '노래'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다른 성악곡에 비해 잘 다듬어진 격조 높은 음악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가곡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조시를 노래하되 반드시 관현악 반주(거문고, 피리, 가야금, 대금, 장구, 해금 등)에 맞춰 부르게 되어 있고, 형식도 엄격해서 약 45음절 안팎의 시를 미리 정해진 40여곡의 틀에 맞춰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일반 시조창이 초장, 중장, 종장 3장으로 구성된 데 반해 가곡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가곡은 예나 지금이나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부르기 어려운 매우 어려운 전문 음악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중들은 가곡의 아름다움을 같이 즐기고 싶어했고, 그래서 나온 대중적인 성악곡이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시조창'입니다. 우리네 할아버지들께서 한증막에 앉아 부르던 "청산리 벽계수야~"하던 시조창이 바로 그것이죠. 가곡과 똑 같은 노랫말을 사용하되 관현악 반주 없이 손장단만으로도 부를 수 있게 했고, 음계도 단순화시켜 아무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죠.

그리고 가곡은 '굉장히 느린' 음악입니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가곡 중 가장 느린 게 '이삭대엽'인데 서양음악의 메트로놈에서 가장 느린 빠르기보다 두 배나 더 느리다고 합니다. 이처럼 가곡이 느린 이유는 우리 선조들이 가곡을 수신(修身)의 음악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중음악처럼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철저히 절제하면서 나를 둘러싼 온갖 생명들과 교감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가곡이 요즘의 '느린 문화'(Slow food, Slow culture)를 대표하는 문화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네스코에 등재까지 됐기에, 단순히 우리 고유의 문화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자산이 생겼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느린 문화 캠페인'들과 우리 가곡이 유기적으로 잘 맺어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건 어쩌다 이 가곡을 부를 때 앞에 '전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형편이 됐나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곡이란 단어는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쓰던 바로 그 말인데, 지금은 어쩌다가 서양의 클래식 음악 곡조에 가사를 얹힌 노래로 변질된 것일까요? 

제가 알고 있기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 가곡은  홍난파가 그 출발점입니다. 홍난파(본명 영후)는 경기도 수원에서 팔남매 중 셋째, 차남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 홍준은 국악에 조예가 깊어서 가족들이 모두 거문고나 퉁소 등의 국악기를 잘 다뤘고, 홍난파는 양금을 주로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교회에 나가게 됐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서양성악곡에 가곡이란 이름을 처음 붙인 홍난파
 

국내 서양식 한국 가곡의 출발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봉선화'는 1926년 홍난파가 발간한 <세계명작가곡선집>에 처음 수록됐다고 합니다. 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곡'이란 말을 서양음악에 처음 가져다 쓴 사람이 다름 아닌 홍난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확인할 수 없는 야사에는 홍난파가 처음 서양의 성악곡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곡은 가곡이 아니다, 이거야 말로 '진짜 가곡'이다"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홍난파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만, 책 이름을 <세계명작가곡선집>으로 지은 걸 보면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새벽 우리의 가곡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으론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세계가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런 훌륭한 문화자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근본조차 불분명한 엉뚱한 음악장르에 이름을 뺏기고, 그마저도 존망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해야 하는 꼴이 됐을까 싶어서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일제시대라는, 우리 힘으로는 어찌 해보기 어려운 질곡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후 대한민국 시대가 돼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런 현실이 서글프기 짝이 없네요.

문득 자기네 전통음악을 현대사회에서도 끊임 없이 재해석하고 발전시켜 세계적인 음악의 차별하된 한 장르로 성장시킨 아일랜드,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 브라질 등의 수 많는 나라들이 부러워집니다. 물론 요즘 국악계에 크로스오버 바람이 불면서 현대사회와 교감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우리 음악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깊이 있는 성찰은 부족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과정이겠지요. 아무튼 이번에 가곡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걸 계기로 보다 균형감 있고 깊이 있는 시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전통음악인 삼바에 재즈를 가미해 '보사노바'라는 세계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 '조빔'
 

서비스로 마산에 있는 국내 유일의 가곡전수관을 소개해 드립니다. 가곡예능보유자이신 조순자 선생이 관장으로 계신 곳입니다. 조순자 선생은 1959년에 KBS국악연구생으로 처음 국악에 발을 들여놓았고, 1962년에는 국립국악원에 통폐합되면서 그곳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가곡을 정통으로 배우셨습니다. 이때 초대 국립국악원장이었던 소남 이주환 선생을 직접 사사했습니다. 1970년에 결혼하면서 국악 불모지나 다름 없던 마산에 터를 잡아 '가야국악회관' 등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소남 이주환과 가곡 '태평가'를 부르고 있는 조순자 관장(1960년대)
 

가곡전수관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2006년 9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0월에는 국내 유일의 가곡전용연주장인 '영송헌'도 개관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금요풍류'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우리 음악을 알리는 다양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고, 또 토요일에는 영송헌 아카데미라 하여 일반인들도 국악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계신 분들은 많이 이용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가곡전수관 전경(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2동 631-6번지)

ㅇ 가곡전수관 블로그 : http://gagok.tistory.com
ㅇ 가곡전수관 트위터 : @igagok
ㅇ 가곡전수관 페이스북 페이지 : http://goo.gl/DmbWR


 


 

 

 

 

 

 

 


 

 

 

 

 

 

'문화 *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리 더글라스 <리뷰>  (0) 2015.07.15
International Bach Festival Seoul 2009  (0) 2015.07.15
미뉴에트  (0) 2015.07.08
우리전통국악의 심미성  (0) 2015.07.07
내 마음의 노래~*  (0) 2015.07.07